
이 책의 앞부분에는 남자와 여자가 비 오는 날 공원을 함께 걷는 장면이 있고, 뒤쪽에는 늦은밤(새벽이었는지도)에 거리를 함께 걷는 장면이 있어서 나는 함께 걷기 시작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다시 들추어 보았다. 걷는걸 행복하게 느끼는 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이리저리 들추어보다가 나는 엉뚱한 부분을 보고 웃어버렸다.
그의 손이 그녀의 팔을 따라 미끄러지더니 손을 잡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마사지했다. (왜 마사지를 해..)
"손이 꽁꽁 얼었소."
"알고 있어요. 나는 항상 손이 차가워요."
"그러면 내 호주머니에 넣어 보시오."
그가 절반은 농담조로 말했다. (이런건 농담으로 말하지마, 병신.)
"그럼 당신 손은 어떻게 하고요?"
그녀는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도발적으로 말했다.
희미한 빛 속에서 닥스의 눈이 반짝였다.
"무슨 방법이 있겠지."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자기 손과 그녀의 손을 나란히 놓고는 한 손씩 차례로 눌렀다. 그는 털이 부숭부숭한 자기 손과 섬세하고 매끄러운 그녀의 손을 비교해 보았다. (p.118)
털이 부숭부숭...털이 부숭부숭....아....싫어..........나는 털이 부숭부숭한 손을 떠올리다가 걷는것에 대해 찾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아이쿠야, 털이 부숭부숭이라니. ㅜㅜ 싫어 싫어, 털이 부숭부숭하지 말아요. ㅠㅠ
나는 남자와 여자가, 그것도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그러니까 서로 호감을 품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걷는게 무척 무척 좋다.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그리고 내 현실에서든. 남자와 여자가 함께 걷는 것 만큼 낭만적인게 또 있을까? 아, 또 있다. 벤치에 함께 나란히 앉기.
오늘 드라마를 봤다. 처음부터 본것은 아닌데 어쨌든 대충 내용은 알고 있었고, 텔레비젼을 켜자마자 그 드라마가 방송중이었는데, 아이고, 좋아라, 바른생활 김석훈이 부하직원 김현주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려고 망설이는 장면이 나오는 거였다. 나는 주저앉아 이 드라마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 못하는데 (텔레비젼을 잘 못본다..좀쑤시고 집중도 안되고..), 이 말을 썼다가 지우고 저 말을 썼다가 지우는 김석훈이 너무 좋은거다! 나는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남자가 정말 너무 좋은데, 그러니까 바로 이런 모습을 때때로 연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김석훈은 김현주가 최근에 울었다는 것, 힘들어 했다는 것, 술에 취했다는 것들 때문에 걱정이 된다. 그래서 괜찮은지 묻고 싶다. 이 말 저 말 다 써보다가 결국 그는 업무적인 내용을 보내버리고 만다. 그 문자메세지를 받은 김현주는 당연히 일 때문인줄 알고 김석훈에게 전화를 하고, 그 둘은 밤 열두시, 순대국집이 문 닫을 시간에 만나기로 한다.
꺅 >.<
순대국집. 순대국집. 김석훈은 드라마에서 무려 순대국집 아들이다 ㅠㅠ 감동 ㅠㅠ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 순대국을 먹으러 밤 열두시에 김현주는 나간다. 김현주에게 김석훈은 그저 직장 상사이고 (아직은) 순대국집 아들이다. 김석훈에게 김현주는 그저 부하직원인데 요즘 자꾸 걱정되고 생각난다. 김석훈은 순대국집 문을 닫을 시간이지만 김현주를 위해 순대국을 끓이고 밥을 한다. 멋져.. 김현주는 순대국집에 와서 순대국을 맛있게 먹는다. 다 먹었는데 김석훈은 김현주에게 나가자고 한다. 나가서 좀 걷자고.
걷자니...좋아. ㅠㅠ
밤 열두시 넘어 만났다. 그리고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좀 걷자고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새벽에, 걷자고 한다. 물론 김석훈은 많이 걸어 좀 피곤해진 상태로 김현주가 오늘밤만큼은 잘 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게다가 나란히 걷지도 않고 둘 사이에는 어느정도 거리도 있었지만, 나는, 그 새벽에 함께 걷는 김석훈과 김현주가 너무 좋았다.

기획 : 이대영
제작 : 문성광, 권용한, 송원석
극본 : 배유미
연출 : 노도철
방송 : 토,일 저녁 8시 40분
순대국에 소주를 함께 마실줄 아는 여자가 나오는 것도 너무 좋고, 출판사와 서점이 배경인것도 좋고,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좋고, 편집장인 남자가 나오는 것도 좋고, 순대국집 아들인 남자도 좋고, 그러니까 나는 이 드라마를 그 전에도 잘 안봤고 앞으로도 또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좋구나~ 이러면서 보고 있는데, 으윽, 이 남자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얘는 극중에서 18살로 나오는 아이이고, 실제로는 박유천(믹키유천)의 친동생인데, 이 아이가 등장하는 씬을 오늘 처음 나는 보게되었는데, 오, 나의 과거의 연인을 닮은거다! 생김새와 발음이 약간 새는것이... 게다가 극중에서 타인에게 꽤 깍듯하게 예를 갖추어 말하는데, 그러면서 장난끼가 넘친다. 비슷해..아, 이 아이가 잠깐 나오는 동안 나는 또 추억속으로 빠져들었네.
그놈은...잘 살고 있겠지? 참...못생긴 놈이었는데...........
김석훈이 자꾸만 자꾸만 김현주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싶어했으면 좋겠다. 김현주가 자꾸만 자꾸만 순대국에 소주를 먹으러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둘이 자꾸만 자꾸만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와중에 김석훈이 김현주에게 보낸게 문자메세지여서 정말 다행이다. 카카오톡 이었으면 나는 텔레비젼을 발로 차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 드라마는 순대국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걸었기 때문에, 그리고 문자메세지 때문에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