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아이에게 완전 푹 빠져있다. [위대한 탄생]이란 프로그램을 보는것도 아닌데, 얼룩말님 서재에서 이 영상 보는 순간 눈에서 하트가 ......
키 큰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적이 없었는데, 나는 이제 키 큰 남자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게다가 츄리닝(트레이닝복이라고 쓰면 어쩐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으니까)입은 모습이, 와, 진짜... 저렇게 큰 키로 츄리닝을 입고 애교작렬하니까, 와 진짜, 도무지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노래가 끝나고 임정희한테 누나라도 불러도 돼요? 라고 묻는다. 으윽- 나라면 이렇게 답했을거다.
그냥 너라고 불러도 돼.
자, 그렇다면 이 아이는 이제 됐다, 저여자는 나한테 넘어왔어, 라고 생각하고 나한테 잔뜩 웃어주겠지. I'll give you all of my money. 나는 그에게 나의 모든걸 투자한다. 나는 내 모든 돈을 그에게 투자하고 그는 승승장구, 세계적인 아이돌로 유명해져서 정상에 우뚝 선다. 내가 내 모든 돈을 들여서 그에게 바란건 오직 하나, 나에게만 웃어주는 것.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고, 사실 그는 정상에 서기 위해 나를 이용한 것 뿐. 이미 유명해져버린 이 아이는 이제 젊고 예쁜 여자배우와 핑크빛 루머가 돌고 나를 잊는다. 나는 가진걸 모두 잃은채 내동댕이쳐진다. 모든걸 잃었다고 깨달은 순간,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내동댕이 쳐졌다고 깨달은 순간, 그 순간 비가 쏟아진다. 그러나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문다.
여기서 내 머릿속 생각 1부가 끝난다.
이제부터 2부.
시간이 흐르고 나는 이렇게 내팽개쳐진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네이비씰로 활동하다가 회의를 느끼고 퇴역한, 그래서 이제는 한가로이 싸움의 기술을 전수하며 살아가는 재이슨 스태덤을 찾아간다. 나는 그에게 싸움의 기술을 알려달라고 한다. 내 눈은 젊은 아이돌에 대한 복수로 이글거린다. 비오는날 먼지나게 때려줄테다! 나는 매일 재이슨 스태덤을 찾아가고 매일 하나씩 기술을 배운다. 나의 볼살은 쏙 빠지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다. 나는 늙었지만 눈빛만은 살기가 가득하다. 싸움의 기술을 터득해서 복수로 향해 한걸음씩 더 다가갈때쯤, 재이슨 스태덤은 나에게 말한다.
우리 잠깐 걷죠.
나는 영문을 몰라 그와 함께 걷는다. 그는 나를 올림픽공원으로 데려간다. 우리는 함께 걷다가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그는 내게 묻는다.
왜 복수를 하려는거죠?
나는 이 사람이 다 알면서 대체 왜 이런걸 묻는지 몰라 대답을 못하고 그저 침묵한다. 그러자 그는 말한다.
당신이 항상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고다녀서 내가 언젠가 한번 빌려달라고 한적이 있죠. 나는 그 책을 다 읽고 돌려주면서 당신에게 물었었어요. 왜 홀든을 좋아하냐고. 그때 당신은 홀든이 평화주의자라서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아이를 다치지 않게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라고, 싸우면 얻어터지기만 하는 평화주의자라고.
맞다. 그랬다. 나는 홀든을 그래서 좋아한다. 네, 그랬죠, 라고 나는 재이슨 스태덤에게 대답한다. 재이슨 스태덤은 계속 얘기한다.
이 복수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를 때려서 기절시키면 당신 마음이 좀 나아질 것 같아요? 분명 그 때문에 좋았던 시간도 있었잖아요? 웃었던 적도, 행복했던 적도 있었잖아요?
아...이남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걸까. 나는 이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 나는 왜 복수를 하려는가. 그를 때리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하는 이 일이 옳은일일까. 나는 이래도 되는걸까. 나의 머릿속은 갈등과 고민으로 넘쳐난다. 나는 매일매일 싸움의 기술을 배우러 가는 대신, 매일 매일 올림픽 공원으로 나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꾸만 재이슨 스태덤이 내게 한 말을 곱씹어본다. 그래, 이제 나는 내 삶을 그저 살아가는게 낫지 않을까. 복수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며칠째인지도 모르는채로, 그리고 지금이 몇시인지도 모르는채로 올림픽공원, 늘 앉아있던 벤치에 앉아있는데, 어느틈에 재이슨 스태덤이 내 옆에 와 앉는다.
사흘이에요.
네? 뭐가요?
당신을 보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시간이요.
.............
싸움 배우러 오지 않은지 3일이 지났어요. 오늘로 4일째죠. 나는 당신에게 연락해봤지만 당신은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4일째인 오늘까지 당신을 보지 않으면 난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죠. 당신의 집에 찾아가봤고, 당신이 자주 가는 삼겹살집도 가봤어요. 마지막으로 들른데가 여기에요. 여기서도 당신을 보지 못하면, 나는 다시 네이비씰 요원으로 복귀하려고 했었어요.
정신이 멍해진다. 그가 하는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받아들일 수 있을 때쯤 비가 내린다. 우리는 둘다 우산이 없다. 그 비를 벤치에 앉아 쫄딱 맞는다.
다 젖었네요. 옷 갈아입으러 갑시다.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 비 한방울도 맞지 않게 해줄게요.
우리는 함께 일어나 손을 잡고 걷는다. 앞으로는 싸움의 기술을 배우지 않고 그와 함께 비를 피해야겠다고 나는 결심한다.
끝.
등장시키려고 했으나 아쉽게 등장하지 못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대신에 내가 선택한 건 진짜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 였다. 1부의 끝, 내가 좌절하며 손에 든 책은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였다, 라고 끝맺으려다 더 극적인 결말을 내기 위해 선택을 포기.
재이슨 스태덤이 나에게 함께 걷죠, 라고 말하게 되는건 사실 내 책장에서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라고 걱정하며 얘기를 해보려던 이야기로 진행시키려 했으나, 내 방에 와본적이 없으니까 패쓰.
젖은옷을 입고 함께 돌아간 나와 재이슨 스태덤. 우리는 뜨거운 밤을 보내는데, 그때 재이슨 스태덤이 내게 말한다. "당신때문에 읽었던 산드라 브라운의 책(맞다, 이 책)을 보면 '제대로 해봐, 씬' 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잖아? 제대로 해봐." 서투른 내게 재이슨 스태덤이 말하는 장면을 삽입하려다가, 에로로 급전환될까봐 패쓰.
이 책을 읽은 남동생은 다 읽고 나서 나의 곰스크는 무얼까, 하더니 요즘엔 술 마시러 나가면서 '이것이 나의 곰스크야' 라고 말하고, 내가 무언가 먹어댈때마다 '그것이 누나의 곰스크니?' 라고 말한다. 2부의 마지막, 재이슨 스태덤이 내게 "나는 당신의 곰스크가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을 넣으려다가 분위기가 너무 바람직해져서 패쓰.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적절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책을 넣는것이 가장 완벽한 선택인것 같다. 잘했다.
- 이 페이퍼는,
다락방님 때문에 알라딘을 탈퇴할 수 없다고 속삭이셨던 님과, 자살론 페이퍼는 안쓰고 40자평으로 퉁칠거냐고 하셨던 님과, 혼자 와인을 마시노라니 다락방님 생각이 났어요, 라고 말씀하셨던 님에게 바칩니다.
아울러, 이 세상의 모든 군바리들과 이 세상의 모든 아이돌들에게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