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지난주에 시작했던 『갈라파고스』를 다 읽지 못하고 있는데, (다 읽지도 않고 쓴 페이퍼를 보고 이 책을 산 moon님께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오늘 출근길 버스안에서 오랜만에 읽다가 이 부분을 보고 뿜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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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웨이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열여섯 살 때 내가 어땠는지 지금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흥분되면 정말 죽을 맛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몇 차례 오르가슴을 느껴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한 차례 오르가슴을 겪은 뒤 다시 10분쯤 지나면, 어땠을 것 같은가? 또 한 번 하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숙제할 것은 많은데!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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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열여섯 살, 이 그렇단 말이지, 응? 무척 마음에 드는 '또 한 번 하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라는 문장. 게다가 바로 그 뒤에 숙제할 것이 많다니! 하하하하. 아니, 그러니까 응? 숙제를 좀 하고, 그리고 나서 오르가즘을 느껴야지. 나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르가즘을 느끼려던 찰나에 아, 숙제!, 하고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텐데. 사람이, 응, 할 건 하고 쾌락을 누려야지. 숙제를 하고, 그리고 흥분을 해도 하란 말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뭐, 자기 재량껏 하기에 달렸지만.
숙제할 것은 많은데, 를 보며 버스 안에서 실실 쪼개다가 갑자기 하루키의 해파리 생각이 났다.
『하루키 일상의 여백』은 곳곳에 유머가 가득가득한데, 여기서도 숙제에 대한 말이 나온다. 해파리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해파리라면, 내가 개미핥기 공주였을 때 인간 남자를 사랑해서 왕국에서 쫓겨나가지고 인간의 모습을 가진채 개미를 핥아먹고 있을때, 아빠가 소개시켜 주려고 했던, 바로 그 생명체인데. 해파리랑 결혼하면 다시 개미핥기 공주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이건 아침에 하는 미친소리)
어쨌든, 해파리와 숙제는 바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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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집이 해체될 무렵이 되면, 여름 방학도 슬슬 끝장이다. 파도가 높아지고 해파리도 나온다. 숙제도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해파리는 물론 숙제를 도와 주거나 하지 않는다.(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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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는 왜 숙제를 도와주지 않을까? 그건 숙제는 자기가 해야하기 때문이다. 해파리가 도와주지 못해서가 아니다. 왜 해파리가 도와주기를 바라는가! 숙제는 각자의 몫.
이경자의 『황홀한 반란』에서도 숙제는 나온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희미한데, 남편이 있는 여자가 병원에 갔다가 자신을 진찰했던 의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또 그 의사를 찾아가서는 쪽지를 건네는데, 그 쪽지에는
'선생님은 제게 풀지못할 숙제에요.' 라고 써있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내용인데, 밑줄을 그어놓거나 적어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기억에만 의존한 것이니 패쓰.
어쨌든,
오르가즘도, 해파리도, 숙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이 사회의 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