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추석연휴에 '스티븐 킹'의 단편집을 읽으면서 방 한구석에서 무서움에 오싹해가지고 나는 이제 스티븐 킹의 책은 안읽을테야, 라고 굳게 다짐한 적이 있었더랬다. 물론 무서운 소설도 읽지 않겠다고. 얼마나 무섭던지! 그리고 그때이후로 뭔가 책을 읽고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잘 지켜온 모양이다. 그런데, 으윽, 나는 이 책을 읽게 됐다.
이제 막 2권의 첫 부분을 시작했는데, 아, 난 이 책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 그러니까 읽을 때는 그다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1권의 첫 부분, 조나선 하커가 드라큘라 백작의 집에 찾아가 그 곳에서 머무르는 장면들에 대해서는 좀 지루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무슨 드라큘라가 벽을 타고 다닌단 말인가! 그게 무슨 드라큘라야 스파이더맨이지. 중간에 읽기를 그만둘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포기하고 나면 다시는 읽을 것 같지 않아 읽다보니 1권의 절반을 지나서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마이클 더다'는 그의 책 『고전읽기의 즐거움』에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는 무수한 유사 영화, 속편, 복사판 패러디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온 공포 소설 중 가장 무서운 것의 하나로 남아 있다. 대중문화는 이 소설의 흡혈귀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약간 키치의 인물로 만들어 놓았으나 -"나는 네 피를 마시고 싶어."- 스토커의 오리지널은 정말 악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오싹하다. (p.292)
어젯밤, 타이레놀을 한 알 먹고 열한시가 되기 전에 잠들었다. 타이레놀을 먹기 전까지 좀 고통스러웠는데 먹고 나니까 자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열두시 사십분쯤 나는 헉, 거리며 깼다. 악몽을 꿨다. 꿈 속에서는 드라큘라 백작이 나왔다. 꿈 속에서 나는 그가 드라큘라임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긴장하고 있었다. 깨고 나서 꿈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가 문제였다. 나는 다시 잠이 들기 어려웠던 것이다. 열린 창 밖으로 자꾸만, 책속의 박쥐가 나타나 내 방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박쥐는 굉장히 크고 -마치 영화 『지퍼스 크리퍼스』의 괴물처럼 생겼을 것 같았다!- 무서워서 나는 그 박쥐를 막아낼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까무룩 잠이 들라치면 가위에 눌렸다. 아 씨. 괴로워 ㅠㅠ 나는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 창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창문을 닫으면 바람이 들어오지 않을거고, 그렇다면 더울텐데. 나는 다시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정말 무서운 밤이었다.
브램 스토커는 이 작품 이후 작품성이 그 절반 정도 되는 소설조차 쓰지 못했다. 공포 소설 중 최고작을 썼으므로, 다른 소설을 더 쓸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마이클 더다', 『고전 읽기의 즐거움』中 p.295)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나는 나의 악몽과 가위눌림이 『드라큘라』를 읽다 잤기 때문인지 혹은 오만년만에 먹은 진통제 탓인지 내내 생각해 보았다. 진통제의 후유증이 악몽일 수 있을까? 내가 악몽을 꾼 건, 책 때문인걸까? 나는 오늘 밤, 이 책을 마저 읽을 건데, 그렇다면 또 악몽에 시달리게 될까? 무섭다.
그래도 다 읽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