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겐 열일곱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각자 다른 곳에 살고 있고, 각자 생김새가 다르며, 각자 나이도 다르고, 각자 어머니도 달랐다. 이 부분을 읽는데 슬픔이 밀려왔다. 나는 그러니까, 그런 기분 이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의 열 여덟번째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가 있는 곳으로 가서 간신히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지만,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여자가 된 기분. 열 여덟번째 아들을 낳고 싶었지만 택도 없을거라는,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어 돌덩이처럼 내려 앉는 기분. 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마란따는 끈질기게 프로포즈하는 남자를 거절했다. 그 남자는 자살했다. 그 뒤로 매일 집에 들러 구애하는 남자도 거절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서 늙어가도 여전히 그녀의 집에 들락거린다. 조카와는 애무놀이를 즐긴다. 조카는 고모를 욕망하고 고모와 결혼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아마란따는 이제 젖가슴이 처지고 늙어가는데도 여전히 처녀성을 간직하고 있다.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도 하면서, 조카를 욕망하게 하면서, 그녀는 처녀로 늙어가고 있다. 나는 그러니까, 그런 기분이었다.
아마란따가 된 기분. 나때문에 죽을정도로 괴로워하는 남자도 없지만, 이 남자 저 남자를 떠돌면서 결국은 쓸쓸히 혼자 늙어가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슬펐다. 이 책을 읽는데 나는 이 책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이 책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이 되었다가, 그렇게 녹진녹진하게, 그렇게 푹 젖어서, 그렇게 물에 젖은 휴지처럼 내 방구석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렇게 일요일을 맞이했다.
도무지 회복되지 않는 기분을 가지고 일요일 오전, 스팸을 사러 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는 육덕진 음식을 먹어야겠어, 안그러면 나 죽어. 그리고 밥을 많이 먹을거야, 라고 말했다. 남동생은 왜그래, 늘 많이 먹었으면서. 라고 얘기했다.
점심에는 처형하고 놀겠다며 찾아온 제부와 탕수육을 먹었다. 간짜장의 양파만 집어 먹고 있었더니 남동생은 탕수육 많이 먹어, 육덕지게 먹겠다며, 한다. 나는 꾸역꾸역 탕수육을 씹었다.
저녁에는 제부랑 여동생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순대국을 먹으러 외출했다. 뜨끈하고 매콤한 순대국을 배터지게 먹고 여동생의 손을 잡고 걸었다. 이렇게 모든 육덕진 음식들을 먹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웃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걷다가 여동생에게 머리를 기댔다. 여동생은 나를 안아줬다. 그리고 말했다.
"왜 순대국 한그릇을 다 비우고도 힘이 없어?"
그러게. 나 분명 다 먹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육덕진 음식들을 다 해치우고서도 살 빠진 것 같은 기분. 살이 빠질리 없는데 어쩐지 쪼옥 하고 살이 빠져 버린 그런 기분.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그렁그렁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러나 이를 악 물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는 그런 기분.
그래서 오늘 아침에 오자마자 나는 일과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 일하고 결혼해야지. 일은 내게 상처를 주지 않을거야. 일을 하면 돈이 들어오니까. 돈이 들어오면 또 육덕진 음식들을 먹을 수 있으니까. 일과 결혼하면 나는 젖은 휴지처럼 던져지지도 않을거야.
가슴속에 담은 많은 사연들을 누구에게 토로할까, 누구에게 말하면 위로 받을 수 있을까, 이 친구에게 말해볼까, 저 친구에게 말해볼까, 애매하게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말하고 났는데 그 숱한 대화들 속에 한 친구가 포춘 쿠키 점괘 싸이트를 링크해준다.
http://brdc.co.kr/cherry/momo/cookie/cookie.html
오, 나는 왜 친구들에게 말하려고 했던가. 이백개의 메신저 쪽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단 하나의 포춘 쿠키! 나는 이 점괘로 큰 만족을 얻었으며 꽤 훌륭한 결론까지 얻어냈다. 우울했던 내 기분은 사라졌고, 나는 앞으로 이 말대로 살리라 결심했다. 일과 결혼하겠다고 바꿨던 메신저 대화명은, 이 포춘 쿠키의 점괘로 금세 바뀌어 버렸다. 내가 잠깐 미쳤었나보다. 누군가의 충고가 떠올랐다. 일과 결혼하면 섹스도 키스도 없을거라는. 나는 섹스와 키스따위는 여태 포기하고 살았던 것 처럼 포기하고 살려고 했었다. 그런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짜 잠깐 돌았었나보다. 일하고 결혼을 왜 한담. 흥!
친구는 이 포춘 쿠키의 점괘가 꽤 잘 맞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만 들었을때는 시큰둥 했다가 내 점괘를 보고 절대 신뢰 하기로 했다.
일하고 결혼 하지 않을거다. 그리고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