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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의 기본적인 생각과 이 책속의 애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정확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에선 일치하는데, 그는 살아생전 무슨 일을 했든 이미 죽은 사람을 누군가는 사랑했었다는 걸로 애도하고 싶어하고, 누군가 한명은 당신을 기억한다, 고 애도하고자 한다. 주변에서는 그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원망만 받다가 죽었다면? 이라고 언제나 반박하곤 하지만, 애도하는 사람은 그래도 그에게는 어느 한사람 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아주 어릴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한 사람에게는 사랑받기도 했을 거라는 거다.
한 사람안에 좋은것도 나쁜것도 다 들어있다면(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애도하는 사람의 말은 맞다. 그리고 이미 죽은자에 대해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고 애도하는 거라면 이건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나와 일치하는 부분은 바로 여기, 상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말,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말은 가능한 하는게 좋다, 는 쪽이다. 참지 말고 숨기지 말고. 싫어한다고 원망한다고 하는 것 보다는 좋아한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잊지 못한다고 말하는 쪽이 듣는쪽과 말하는 쪽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러나 내 생각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늘 그렇게 살아온다고 했으면서도 그게 잘한건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가 없다.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감정이 짝사랑이 아닐까. 아주 오래전 대학 다닐때,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적이 있다.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에도 둔감한 나는 상대의 작은 변화는 좀처럼 눈치 채지 못하는 편인데, 이 친구는 만나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원래 살이 찐 타입이 아니긴 했지만 볼 살 만큼은 통통해서 제법 귀여웠는데, 정말이지 말 그대로 홀쭉해져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디 아프냐, 대체 왜 그렇게 살이 빠진거냐고 묻는 내게 그 친구는,
짝사랑을 앓고있다고 답했다.
짝사랑? 짝사랑 때문에 앓고 있어? 그게...살이 빠지는 일인거야? 그래?
상대는 같은과 선배라고 했고, 그 선배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그 선배가 참여한 동아리에도 들었다고 했다. 시사토론인가 하는 동아리였는데 사실 갈 때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그의 얼굴을 보러 가는 거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너는 그 선배와 친해? 아니. 연락은 하는 사이야? 동아리 모임 한번 빠졌더니 왜 빠졌냐고 전화는 한번 왔었지. 왜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않아? 그 선배는 여자친구가 있어. 그래서 이제 동아리도 안나가려고.
오! 이런 빌어먹을 짝사랑 같으니라고!
짝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이 짝사랑이 혼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골병들게 만든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도 남자가 썸머를 혼자 좋아하기 시작하는 그때, 썸머는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남자는 집에 돌아와서 온갖 감정의 기복들을 겪어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게 인사를 건넸지, 나를 좋아하는거 아닐까? 아, 왜 이런 행동을 하지? 우리는 끝났어. 타인이 보기에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그녀와 나 사이는 끝났다고 괴로워한다. 오- 스투핏 짝사랑. 이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한건 아마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가 다 하고 있는 고민을 그가 하고 있어서. 내가 겪었던 감정과 상황을 그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서. 영화속에서 결국 그가 썸머와 사랑을 시작했을 때는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어 주고 함께 춤 춰주지 않았던가!
사실 짝사랑의 고민은 끝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건 날 좋아하는게 아닐까? 이렇게 행동하는 건 선을 넘지 말라는걸까? 문제는 상대는 전혀 의미 없이 던지는 말과 행동에 끊임없이 집착한다는 거다. 짝사랑에 빠져있는 친구들이 상대의 한마디 말로 고민을 털어 놓을때, 나는 대체 그 의미없는 말에 왜 그런 생각을 하는거냐고, 그건 그저 지나가는 말이라고 몇번 대꾸해준 적이 있는데, 나 역시 타인으로부터 그런 말들을 들을까 두려워서-착각은 아름다운 거니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한적이 여러번이다. 역시 '어쩌면 실현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만드는 상대보다는, 삼겹살을, 소주를, 순대국을, 오이지를 짝사랑하는 쪽이 백번 낫다. 그러니까 나로 말하자면,
말하긴 뭘 말하냐. 관두자. 하아-
자학의 밤을 보내고 났더니 아침에 라디오에서는 이 노래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자학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은 사람에게 좀 가혹한 노래가 아닌가. 자학의 밤을 보낸 사람에게 이런 노래를 들려주는 라디오는 옳은 행동을 한것이 아니다. 자학의 밤을 보낸 사람에게 출근하라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되는거다. 자꾸 이러면 정말 죄다 불질러 버릴테다.
그때, 짝사랑을 앓고 있는 그 친구에게 나는 왜 '사랑이 너를 찾아올거야'라고 말해주지 못했을까? Love will find you.
결국 이놈의 라디오가 겁났나보다. 내가 이 세상을 불지를까봐. 그래서 결국은 이런 노래로 마무리를 했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