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손님과 어머니]로 유명한 '주요섭'의 작품중에 『추물(醜物)』이란게 있다. 이 작품속의 여자주인공은 언청이로 굉장한 추물이라 사람들의 놀림을 받는다. 그런 여자가 하루는 물장사와 관계를 가져 임신을 하게 되는데, 오죽하면 사람들은 저런 추물에게도 남자가 있구나, 하고 또 놀려댄다. 그런 놀림 속에서 여자는 반드시 예쁜 여자아이를 낳아 보란듯이 살아보겠다고 결심에 결심을 하는 것이다. 아! 그런데 운명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그녀는 바라던대로 딸을 낳았지만, 그 딸 역시 언청이었던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추물이 추물을 낳았구나!'라고 또 놀려댄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며 '저것이 자라나면 또 그러한 쓰라린 인생을 보내겠지.' 란 생각으로 그 아이를 죽일 생각도 했다가 그래도 크면 좀 인물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중학생때 이 작품을 읽다가, 이 작품이 전해주는 슬픔과 아픔과 잔인함과 비뚤어진 유머에 꽤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래서 그 당시에 이 작품을 두번이나 읽었고, 친구들에게도 만나기만 하면 혹시 이런 작품을 아느냐며 줄거리 얘기하기에 바빴다. 정말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내가 요즘 읽은 창비세계문학의 단편집 스페인,라틴아메리카편의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를 읽다보니, 이 주요섭의 [추물]이 생각나는 작품들이 몇개 있더라. 아프고 무섭고 슬프고 쓸쓸하고 잔인한 소설들.
-'이그나시오 알데꼬아'의 『영 산체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방은 지하실의 겨드랑이처럼 찝찔하고 시큼하고 달착지근한 냄새를 풍겼다.(p.34)
그러더니 다시 이런 구절이 나와서 본격적으로 슬프게 한다.
빠꼬는 누이동생이 억세게도 운이 나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예쁜 구석이라곤 오직 목소리뿐이었다. 이따금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슬퍼졌다. 못생긴, 아니 어쩌면 지독히도 못생긴 얼굴에 촌스러운 몸뚱이. 뱃살은 불룩하게 부풀어올랐고 엉덩이는 펑퍼짐하다 못해 거의 네모에 가까웠다..... 자기가 못생겼다는 것을 의식하는, 못생긴 여자. 자신의 추한 외모에 굴욕당한 여자. 자신의 추한 외모 때문에 절망한 여자. 그는 가난한 여자에게 예쁘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좋은 직업은 물론 심지어 성공적인 결혼에 이르기까지 여자의 삶을 향상시킬 모든 가능성은 미모에 달려 있었다. 못생기고 가난한 여자는 가난하고 힘없는 남자에 비견되었다.(p.47)
친구의 아들은 이제 막 다섯살이 되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보고 예쁘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나만 예쁘다고 했다. 내가 놀랐던 건, 나는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인 남자들에게는 예쁘다는 말을 듣는 여자사람이 전혀 아닌데, 다섯살짜리 어린 남자아이가 나에게 예쁘다고 했다. 나는, 그러니까, 어린 아이에게 먹히는 얼굴인건가! (물론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다른 어린아이들은 안그랬다. -.-)
그래서 나는 이런 구절, 못생긴 여자들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에 대해서는 한없이 슬퍼진다.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오라시오 끼로가'의 『목 잘린 암탉 』
사실은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추물을 생각했다. 이 작품속에서 '마치니 페라스 부부'의 첫째 아들은 태어난지 20개월이 된 어느날 밤, 끔찍한 경기를 하고 나더니 바보가 되었다. 둘째 아이는 18개월째에 첫째아이와 똑같은 경기를 앓고 바보천치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 태어난 그들의 쌍둥이 아들들은 차츰차츰 두 형의 전철을 되풀이했다. 그들은 지능과 정신, 본능까지도 잃고 만 바보 4형제가 되었다. 집안 분위기는 침울해지고, 부부는 서로를 원망하는 가운데, 이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생기려는지 막내 딸아이가 태어난다. 혹시 오빠들과 같은 증상이 일어날까 부부는 전전긍긍하지만 네살이 될때까지 그 딸아이게는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딸아이는 이 부부에게 마냥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이 소설이야말로 가장 충격적이고 무서운 결말을 가지고 있어서 내내 [추물]이 생각났고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도 생각났다.
이 단편집 속에 실린 단편들이 슬프고 아픈건 단순히 [추물]을 생각나게 하기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창비세계문학에서 가장 먼저 스페인,라틴아메리카 편을 골라집게 된건 제목 때문이었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그래서 이 책을 펼쳐서는 사실 이 제목의 단편을 가장 먼저 읽어보았다. 이 제목을 접했을 때 내가 기대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게 무엇이었든, 이런 시작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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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띠노,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어서 그들에게 가서 전해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그렇게 말해줘. 제발 죽이지 말아달라고."(p.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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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게 가장 관심을 받았던 이 제목에는 어떤 깊은 은유나 비유가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처음부터 대놓고 직접적으로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라고 할 줄은 몰랐다는 말이다. 자,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이렇게 외친 이 남자는 결국 죽었을까?
이 단편집 속에서 내가 좋아했던 건 '후안 호세 아레올라'의 『전철수』다. 이 책의 각 단편마다 시작하기 전 작품해설이 쓰여져 있는데, 이걸 읽고 나면, 얼마전 Jude님이 리뷰에 쓰셨던것처럼 스포일러를 만날수도 있고, 또 해설이 의도한대로 읽게 된다. 그래서 나는 몇편쯤 해설을 먼저 읽었다가는 안되겠구나 싶어서 작품을 다 읽고 해설을 읽는다. 그렇게 읽으면 해설은 때때로 내가 놓친걸 얘기해준다. 그래서 내용 자체만으로도 좋았지만(사실 내용은 유머로 받아들이면서도 힘들고 한숨이 나온다), 해설을 읽으면 끄덕끄덕 하게된다.
작품에서 서술된 상황은 관행적인 질서와 존재에 대한 일체의 논리적,현실적 개념에서 벗어나 과장되고 그로테스크하고 터무니없는 세계로 들어간다.(중략) 우선 여기에서 비유와 전형은 부조리와 한계를 지닌 보편적 인간조건과 현실을 가리키며, 기차여행은 인생여정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겉만 그럴싸한 현실의 환상에 사로잡힌 터무니없는 기획의 집행자, 전횡적 권력에 의해 우연과 기만에 내던져진 여행자라는 멕시코인의 존재방식의 표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p.224)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을 꼽아보라면 '아우구스또 몬떼로소'(아유, 이름이 왜이렇게 어려운거야 ㅜㅡ)의 『일식』과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검열관』인데,
『일식』은 단 한장짜리 단편으로 상대가 나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하고있다가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는 신부가 나온다. 신부는 원주민 마야족을 대하며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감을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격렬하게 피를 뿜게'되는데, 이 한장이 던지는 메세지가 의미심장하다. 이 작품이 던지는 메세지는 내가 퍽 좋아하는 바다. 그렇다면,
『검열관』은 어떤가!
이 단편집중 내가 최고로 삼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인데, 일전에 나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을 읽으면서, 무인도에 떨어진 아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달라지는 가를 보고, 인간이 서로 다투고, 자신이 상대의 위에 서려고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본능인건가 싶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검열관은 그 『파리대왕』을 생각나게 하면서 사실은 아주 많은 부분을 영화『타인의 삶』을 생각나게 한다. '후안'은 자신이 보낸 편지가 검열되는건 아닐까 내내 고민하다가 아예 자신이 검열관이 되어 그 편지가 검열되어 보내지지 않는걸 막고자 한다. 처음에는 검열관으로서의 일이 자신의 편지를 보내기 위함이니 안심하다가, 그는 점점 더 그 일에 빠져들게 되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승진을 하게 된다. 그러다 점차 업무에 심취하게 된 나머지 그를 검열국까지 오게 한 숭고한 임무를 망각하기까지 한다. 이제 그에게 닥쳐올 사건은 무엇일까.
자, 이 작품의 해설을 보면,
작가의 정치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 『검열관』에서는 아이러니를 통해 모든 대상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권력의 본질을 파헤친다. 권력은 그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조차 삼켜버린다. 강박적으로 업무에 매달리던 검열관의 터무니없고 불합리한 최후는 정부의 억압적인 통치방식에 대한 통렬한 풍자다.(p.252)
이런 작품을 읽게 되다니, 참 고맙고 좋기는 한데, 사실 이런 작품을 쓸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사회적 배경이 씁쓸하다. 왜 권력과 정부는 작가들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게 만드는걸까. 이런 글을 쓰면서도 아프지 않았을까.
스페인,라틴아메리카 편을 끝내고 어느 나라를 시작할까 하다가, 갑자기 또 피츠제럴드에 대한 사랑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미국을 선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