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 어느 요일이 가장 지치고 기운 빠질까? 새로 시작하는 월요일일 수도 있고, 일주일의 정점을 찍는 수요일일 수도 있다. 매주 그런건 아니겠지만, 매번 그런건 아니겠지만, 내겐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가까스로 이끌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하루는 보스턴 시내로 쇼핑을 하러 갔다. 아시마는 조단 마쉬 백화점 지하에서 고골리가 탄 유모차를 끌며 몇시간에 걸쳐 가진 돈을 모두 다 쓰면서 쇼핑을 했다. 여러 가지 티스푼을 샀고, 올이 가는 면으로 만든 베갯보와 색깔이 있는 양초, 끈이 달린 비누를 샀다. 약국에서 시동생에게 줄 타이멕스 시계와 사촌동생들에게 줄 빅펜 볼펜을 샀다. 어머니와 이모들에게 선물하려고 자수용 실과 골무도 샀다. (p.61)
이 책속의 아시마는 인도의 캘커타가 고향인데 결혼하고 신랑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아직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이 동네가 아시마에게 그리 편하지는 않다. 친정에 갈 생각을 하고 이런저런 선물을 고르는 아시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그녀는 신나고, 지치고, 친정에 갈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지하철은 붐볐고, 쇼핑백들과 유모차와 손잡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서 있었더니, 어떤 여자아이가 자리를 내어주며 앉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고맙다고 대답한 아시마는 정말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쇼핑백은 모두 다리 뒤로 밀어 넣었다. 고골리처럼 아시마도 졸음이 왔다. (p.61)
어어, 졸면 안되는데, 그러면 안될것같은데!!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집 생각을 하였다. 부모님 아파트 창문의 까만색 철창을 떠올렸다. 그리고 미국식 유아복과 기저귀를 찬 고골리가 천장에 매달린 팬 아래, 기둥이 네 개 달린 부모님의 침대 위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어머니의 편지대로, 요전에 계단에서 넘어져 이가 하나 빠진 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신다면 기분이 어떨지 애써 상상해보았다. (p.61)
아시마, 정거장을 놓치지마요! 정신 똑바로 차려!
아시마가 눈을 떴을 때 지하철은 서 있었고, 문은 그녀가 내릴 정거장에서 열려 있었다.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의 가슴은 쿵쿵 뛰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좀 나갈게요." 이렇게 말하며, 꽉 차있는 사람들 사이로 유모차와 함께 자기 몸까지 밀며 나왔다. "저기요!" 그녀가 간신히 사람들을 통과하여 플랫폼에 발을 디딜 무렵,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이거 놓고 가셨는데요." 아시마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순간 지하철의 문은 '쾅'하고 닫혔고, 천천히 굴러 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지하철의 맨 마지막 칸이 터널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제 플랫폼에 남아 있는 사라은 고골리와 아시마뿐이었다.(p.62)
아, 지하철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을까? 그 모든 시간들이, 그 모든 노력들이 이렇게 지하철과 함께 떠나가버리는걸까?
아시마는 유모차를 끌고 매사추세츠 로로 다시 걸어 내려왔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엉엉 울며 걸었다. 그곳으로 돌아가서 구입했던 것을 모두 다시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은 오후 내내 스스로에게 화를 내면서, 이제 캘커타에는 스웨터와 붓만 덜렁 들고 돌아가게 생겼다고 혼자 속을 끓였다.(p.62)
나는 안그래도 지쳤는데 이런 먹먹한 글을 읽고 나자 눈물이 핑- 돌았다. 더이상 읽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책장을 덮고 눈을 감았다. 새로 돈을 가져가서 새로 물건들을 산다고 해도 처음 살 때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을텐데. 그 모든것들에 그렇게 마음을 쏟아부었는데 그렇게 허탈하게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다니. 그것이 아시마 본인이 깜빡했기 때문이라니. 나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아시마에게 이 날은 지친 하루였겠구나.
달콤한 도넛츠가 먹고 싶었다. 커피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집근처의 던킨 도넛츠로 들어간다. 도넛츠와 커피를 함께 먹어가면서 나는 다시 책을 펼친다. 아무리 지친 글도 열량 높은 도넛츠와 함께라면 그리고 향긋한 커피와 함께라면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 바로 뒤에 이런 글이 나올줄이야!!!!
그러나 아쇼크(아시마의 남편)가 집에 와서 지하철공사 분실물 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다음날 쇼핑백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티스푼 하나 없어지지 않았다. 이 작은 기적으로 아시마는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원칙과 함께 예외도 존재하는 케임브리지라는 곳에 대해 어떤 끈끈한 감정까지 느끼게 되었다.(p.62)
아, 그러면 그렇지! 역시 이 세상은 살만한거였어. 얼쑤. 그리고 잠깐, 나는 결혼을 하는것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