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소설들
“너무 큰 사랑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거 아세요, 마레스코 씨?”(p.111)
마레스코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사실은 나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너무 큰 사랑이 아이를 죽일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겠으나 마레스코가 아이에게 보인 사랑이 아이를 죽일만큼의 사랑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의 유치원 선생은 계속 이렇게 얘기한다.
“콜랭은 지나치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아이의 정신은 아버님이 주시는 모든 것에 의해 마비되어 있어요. 전 저녁때 콜랭을 데리러 오실 때마다 아버님을 관찰해요. 그러다간 아이가 애정에 질식하고 말 겁니다.”(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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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사랑이 상대를 질식시킬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아는 바다. 왜 어느 시에도 그런 구절이 있지 않던가.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또 ‘니콜 크라우스’는 자신의 책 [사랑의 역사]에서도 ‘덜 사랑해주세요!’ 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던가. 나 역시 지나친 사랑은 도로 가져가줘요,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중의 한명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경계가 애매하듯, 많이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랑이 ‘지나친 것’의 경계도 애매하지 않은가.
이 소설에서 아버지인 마레스코도 아들 콜랭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세 살배기 아들이 엄마를 자꾸 찾는데 엄마는 여기에 없다. 엄마는 그를 두고 떠났다. 아이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에게 엄마를, 엄마의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발을 사서 머리에 쓰고, 스폰지 공을 가슴에 채워 콜랭에게 ‘엄마의 사랑’도 주는 ‘아 빠’ 였던 것이다. 그럴수도 있지, 나라면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하겠지만 그럴수도 있는거 아닌가, 하는데
어느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어, 이건 정말 지나쳐. 애정이 지나쳐서 불행을 불러올 것만 같아, 선생이 괜히 그런게 아니었어, 아, 설마...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남은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런데 정말, 정말 모르겠다. 대체 어디쯤에서, 대체 어느 부분에서 나는 그의 사랑이 지나치다고 느끼게 된건지, 대체 어느 구절에서 그의 사랑이 지나쳐서 불행을 가져올 것 같다고 느끼게 된건지 정말 모르겠는거다. 어떻게 이렇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럴수도 있는 사랑이 지나친 사랑이 되어버린거지.
이 소설을 ‘좋다’고 말하기엔 마음이 많이 불편하지만 독특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여기 아주 아름다운 소설이 있다. ‘아름다운’이라는 단어는 사실 이 소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게 아닐까. 제길, '아름다운' 이라는 말 말고 대체 또다른 어떤말을 써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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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한적하고 나른하다. 한적하고 나른한건 지루한 것의 좋은 표현인 듯 한데 이 소설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름답고 조용한 이 소설은 그러나 그 속에 가슴 아프고 시린 일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이 책의 책 날개에 가득한 찬사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표현하고 싶은 딱 맞는 문장을 발견했다.
“그토록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도 이렇게 평화롭다는 사실이 놀랍다. 평화롭고,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산문체의 미덕.”(Die Zeit, Germany)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도 그 말이다. 어떻게 그 잊지 못할 강렬한 일들을 이렇게 평화로운 문장들 속에 표현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 팔을 들어 그녀의 어깨에 얹은 다음 그녀의 몸을 내게로 바싹 끌어당겼던 것이다. 그때까지 어머니를 제외하고 그 어떤 여자에게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중략)분명 아버지에게는 내 행동이 집중력을 흩어놓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pp.120-122)
이 문장들이 포함된 몇장에 걸쳐진 그 감정을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그 날의 눈부심, 그 날의 땀, 그 날의 긴장, 그 날의 행복, 그리고 그 날의 원망.. 나는 분명 무언가를 느끼는데, 그래서 이 몇장을 읽으면서 아주 강하게 마음이 움직이는데, 이런걸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데, 전할 수 있는 말들을 찾을 수가 없다. 대체 나는 전할 수 없는 말을 작가는 어떻게 표현해낸걸까.
게다가 오오, 세상에 이런 문장이 튀어 나온다. 나를 자지러지게 한 장면.
결국 두 남자는 거의 고함을 지르다시피 앞치마를 휘두르며 합창을 했다. 설거지용 솔은 냄비를 두드려서 장단을 맞추는데 쓰였다. (p.247)
두 남자, 앞치마, 합창, 설거지, 장단 으윽.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문장이 아닌가! 이건 그러니까 나의 로망, 모든여자들의 로망이 아닌가. 앞치마를 입고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두.남.자.’
이 소설은 지독하게 아름답다. 소설이란 이런게 아닌가 싶다. 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하는 그런 소설이다. 나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그저 이렇게만 말하련다.
말 도둑 놀이, 나를 믿고 이 책을 한번 읽어봐요. 정말 후회하지 않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