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그것들이 과연 옳다거나 진실이라거나 혹은 진심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크게 잘못 알고 있는건 아닐까? 문제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니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거야, 사실은 이래.' 라고 말해봤자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에겐 저마다 '믿고 있는' '각자의' 판단과 진실이 있으니까.
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냈지만 숨길 수 없는 예술에의 열정을 이제 막 드러내려는 남자, 게다가 딸들의 든든한 지원까지. 그렇게 새로운 악기를 배우게 됐지만, 그가 배우는 것이 정말 악기에 그치는 걸까? 젊은 남자 선생이 악기를 연주하고나면 왜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는걸까?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집안의 지하실에 사는 남자는 충실한 하인들이 갖다 주는 음식들을 먹고 시중을 받는다. 그들처럼 인간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는 좋은 하인들을 두었다는 사실에 감동하면서. 그러나 그 하인들은 정말 그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을까?
전쟁이 끝났는데도 전쟁때 자신을 괴롭히던 간수에게 여전히 묵종하는 친구에게 이제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보지만, 그의 귀에는 닿지를 않는다.
'로맹 가리'는 이런 작가였던가! 이토록 서늘한 아니, '어찌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해 얘기하는 그런 작가였던건가. 그동안 나는 로맹 가리를 만나지 않고 대체 뭐하고 살고 있었던 걸까.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라는 단편을 조금 난해하게 넘겨 시작하고 나면 뒤이어 나오는 단편들은 정말이지 다들 놀랍다. 가슴이 꽉 막히는 것도 같고 한숨을 쉬어 보게도 된다. 한 편 한 편, 나는 로맹가리에게 반한다. 그가 말하는 인간은 잘못 알고 있거나, 엉뚱한 믿음을 갖거나, 자신의 신뢰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나는 앞으로 '로맹 가리'의 책들을 더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로맹 가리는 나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했다면,
'우디 앨런'은 영화 『또다른 여인』에서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 동생은 당신을 싫어해요." 믿을수도 없었고, 믿기지도 않았던 얘기를 듣고 그녀는 그럴 리 없어, 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로부터의 삶을 돌이켜 보니 생각이 달라지고, 자신을 사랑한다 생각했던 남편이 바람피는 것도 보인다. 그녀는 동생에게 찾아가 너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우디 앨런은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여러번 얘기했구나.
「매치 포인트」에서-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사실은 젊은 내연녀를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모를 뿐더러,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상상도 해보지 않겠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은 그 순간부터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닌가. 애인도 있고, 그 애인을 사랑하는 내가 다른 남자에게 끌릴리가 없지, 다른 남자와 섹스할 리가 없지. 그녀는 그녀 자신을 몰랐다.
의도적으로든 혹은 그렇지 않든 우리는 타인이 나의 어떤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거기서부터 나 혹은 상대의 '잘못 아는'것이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터부』(알라딘에 이미지가 없어요-)는 각자 자신의 과거를 숨긴채-그건 명백한 실수였다고 해도 '살인'과 '누드사진에 대한 협박'이었다- 사랑하는 상대를 찾고 행복도 찾는다. 그러나 한쪽-여자-의 과거가 먼저 수면 위로 드러난다.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그동안 자신이 알아왔던 여자 이외에 다른 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자신에게도 그런 면이 있음을 알기에 그녀를 비난하거나 내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제부터 마음에 걸려서 견딜 수가 없었어. 문득 생각난 것이지만, 너무 사랑을 하고 있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알고있겠지, 케이트, 당신의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한 거야. 어떤 일이든 도움이 되어 줄게."(하권, p.286)
어쩌면 내가 나에 대해 혹은 타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자 할때 듣고자 할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