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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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진실은 어떤 고통은 반드시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하는 속도로 말하고 싶어하는 분량만큼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애란이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문학이란 말하는 이에 특화된 것이라며 바로 저렇게 말했다. 소설가이니만큼 문학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런데 저 문장이 특히 좋아서 나는 김애란의 책을 부랴부랴 사서 읽었다. 그렇다면 김애란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하는 것도 역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김애란의 작품을 통해서 나를 만났다. 더 정확히는 모순된 나, 내적 갈등에 휩싸이는 나, 를 본 것이다. 그리고 결코 '선하지 않은' 나를 말이다.


선하지 않은 나, 는 나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기도 할것이다. 정확히는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 혹은 중산층 근처에서 맴도는 사람들 말이다. 대표적으로 나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의 경우는 내가 번 돈으로 여행을 갈 수 있고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번 돈으로 강남에 집을 살 수 없고 명품백을 살 수 없으며 일류 호텔에 숙박할 수도 없다. 내 주변엔 대부분 나랑 비슷한 경제적 형편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고만고만한 사정을 가지고 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얼마전에 친구를 만난 나는, 그 친구에게  대출 받아 집을 사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껏 살아보니, 전세를 살다가는 삶이 업그레이드 되기 힘들더라, 2년있다 전세보증금으로 다시 전세를 구하려면 집값이 올라 내가 살 집은 다운그레이드가 된다, 대출 싫다고 돈 모아서 집 사려고 하면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집값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팍팍 올라버린다, 그러니 대출을 받아서 일단 대출금을 갚아 나가면, 더이상 계약 기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운이 좋으면 내가 있는 대출 다 갚은 후에 내 집값은 오를 수도 있지 않냐, 는 것이 내가 말한 취지였다. 친구 역시 요즘 집을 사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대출을 끼고 사는것 말이다. 


주변에는 집을 산 친구도 있고 그리고 집을 산 친구를 시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니가, 나랑 형편이 비슷한 걸로 생각했는데 어떻게 니가, 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정말 있다. 다른 사람의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다른 사람들의 슬픈 일에는 진심으로 공감도 해줄 수 있고 위로도 해줄 수 있지만, 좋은 일에 축하는 조금 다른 얘기다. 나랑 비슷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나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것 같다 싶으면,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든거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돈에 관련된 것이다. 집, 차, 연봉. 



누군가 '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대체적으로 돈에 관련된 것이다. 부족함 없이 잘 산다, 여유롭게 잘 산다는 말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 잘 사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거나 그리고 그 잘 사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잘 살지 못하는 것을 감추고 싶어한다.


이 책 속의 첫번째 단편 <홈 파티> 가 바로 그 '자랑'과 '감춤'에 대한 얘기다. 비슷한 경제적 형편과 문화적 자본을 가진 자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면서 값비싼 찻잔을 자랑하지만, 그런데 못사는 사람들이 집도 없고 차도 없으면서 왜 명품백을 가지고 있을까, 한심하게 여기며 험담한다. 이때 그 집에 초대받은 가난한 연극 배우는, 그것은 자신의 가난을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한다. 사실 나는, 명품백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가 감추고 싶어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시선이 신선했다. 그리고 그것이 맞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가지고 다니면서 드러낼 수 있는 소품으로 가방만한 게 어디있을까. 그것은 과시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감춤이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이 작품 <홈 파티>는, '이디스 워튼'의 <징구>를 생각나게 한다.


<숲속 작은 집>은 내가 가장 안타깝게 그리고 가장 찔리게 읽은 작품이다. 주인공 부부는 동남아의 근사한 숙박업소를 예약해 거기에 한달간 머무르는데, 거기에서 메이드에게 팁을 주는 문제로 신경을 쓴다. 이만큼은 적을까 혹은 많을까, 그렇게 팁을 두고 갔더니 방이 더 깨끗해지는 걸 보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 줬다고 더 신경쓰냐, 하는 실망감까지. 신경써줘 고맙다고 신경써달라고 돈을 준거지만, 그런데 돈을 줬다고 신경 쓰다니, 하면서 실망하는 인간이 바로 나 아닌가. 나는 이 작품에서 '모순된 나'를 만났다. 나는 자본주의가 사회악이라고 생각하고, 자본주의만 뿌리 뽑아도 세상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한편, 내가 돈 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본주의에 가장 길들여져 있는게 또 내가 아닌가 말이다. 돈 쓰는 일은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가. 돈 좀 더 쓰고 좋은 비행기 타자, 돈 좀 더 쓰고 좋은 호텔 가자고 내가 나에게 얼마나 많이 말하는가. 그리고 백화점에 가 결제를 할 때 신나거든. 이렇게 돈 쓰는 걸 좋아하는 내가, 그런데 자본주의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란 인간은 얼마나 모순적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 작품속에서 아내는 호텔 메이드를 '메이드라고 부르지 말자'고 남편에게 제안한다. 그건 어쩐지 좀 아닌 것 같으니, 우리라도 그렇게 부르지 말자는 거다. 남편은 그렇다면 뭐라 부르냐, 묻고,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아내는,


-그냥 '청소해주시는 분'은 어때? -p.79


라고 말한다. 이내 남편은 풋, 하고 웃어버리는데,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건 너무 설명적인데다가 비경제적이고 음, 이런 얘기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살짝 기만적인 느낌마저 들어" -p.79


나는 아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지만, 그러나 메이드를 '청소해주시는 분'이라고 부르자는 것에 기만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어떤 호칭은 그리고 어떤 지칭은 멸칭이기도 하지만, 그걸 가리는 것이 때때로 기만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남편은 '섹스를 섹스라 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이 떠오른다'(p.80) 고 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메이드라 부르지 말고 '청소해주시는 분'이라고 부르자는 아내의 말은, 내게는 기만적으로 느껴졌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물론 그 안에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는 하겠으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나'가 있는 것 같은거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나라고 없을까? 사실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부르고 혹은 어떻게 지칭하는지에 과연, '깨어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없었을까? 나는 순수하게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바꾸거나 금지하려고 한걸까? 



<좋은 이웃> 에서도 역시 나를 만났다. 화자는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자기보다 더 경제적 형편이 낫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기분이 몹시 나빠지는데, 가끔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누군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졌을 때, 이를테면 더 좋은 집에 산다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을때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나는 김애란의 이 책을 읽으면서 김애란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소설이고 문학이니 뜻하는 바가 있을테니 말이다. 김애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나로서는, 사람들은 그렇게 선하지 않다, 는 것이었다. 쿨한 사람은 없고 쿨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것처럼, 선한 사람은 없고 선하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거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사람중의 하나이고. 


사실 가장 많이 나에 대해 떠올린 건, SNS 에서 누군가를 보며 그 사람의 경제적 능력에 대해 떠올렸던 나다. 그러니까 러시아였나 폴란드였나, 어디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삼십대 초반의 여성이 도심 한가운데 높은 곳, 거실에서는 통유리로 도시 뷰가 보이는 집에 사는 거다. 그녀는 그 집에서 살면서 피부 관리를 받으러 가거나 늘 여행을 다녔다. 나는 이십년이상 일했지만 저런 집은 감히 꿈도 못꾸는데, 내가 앞으로 이십년이상 더 일해도 저런 집에 살지는 못할텐데, 그런데 도시뷰는 내가 얼마나 꿈꿔오던 곳이던가!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젊은 나이에 저게 가능했을까, 하면서 공간과 돈에 대해 생각했던 내가, 이 책에서 자꾸 보였다. 이것은 이상하다, 부조리하다, 왜 열심히 돈 버는 나는 저런 집에 못살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이)는 저 사람은 저런 집에 살까.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얼마나 부조리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 그러면서도 자본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내가 또 있지 않은가. 그런 한편, 전세 기간이 되어 다시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 같은 수준의 집을 전세로 얻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던 지인도 생각났다. 왜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데 살 집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나. 역시 자본주의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 라고 생각하다가도 어김없이 그 안에서 즐기고 있는 나를 만나는 거다. 그리고 그런 내가, 김애란의 책에서 보였던 거다. 여기에는 그녀의 과시가, 그리고 그 부(rich)로 인한 다른 어떤 것의 감춤이 있었고, 드러난 부를 보고 부러워하는 (나의)질투가 있다.


오, 신이시여..



나는 모순된 나를 만나는 것이 괴롭다. 몹시 괴롭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모순된 나를 자꾸 보게 된다.

김애란은 문학이 하는 일은 화자가 말하고 싶은 속도로 말하고 싶은 분량만큼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무언가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 세상을 바꾼다, 라고 했다. 김애란이 문학에 대해 하는 말에 동의한다. 그 말은 다 맞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혹은 '삶'을 읽으면서, 결국은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 문학이 하는 일인 것 같다. 나는 모순된 나를 만나고, 그리고 괴롭다. 김애란이 보여준 어떤 이들의 민낯이, 그런데 가끔 나의 민낯이기도 해서 수치스럽다. 활자로 나의 수치를 들여다보게 하는 일이 문학이 하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까 문학이 하는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나는 김애란의 이 작품들 속에서 과시하는 이도 그리고 질투하는 이도, 그리고 선한척 하는 이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수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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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6-04-2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사랑스러우십니다. 그게 쉽나요~

다락방 2026-04-22 12:43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나이에 사랑스럽다니, 역시 저는 짱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4-2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모순된 나’를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많이 발견한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듯..... 저는 모순된 나를 찾지 못해서 고통의 읽깈ㅋㅋㅋㅋㅋㅋㅋ

메이드를 ‘청소해주시는 분‘이라고 부르는 거.. 전 진짜 남편한테 공감했어요. 너무 기만적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청소해주시는 분 운운할 때 실제로 제가 책 읽다가 현웃터짐ㅋㅋㅋㅋ 아니 왜 섹스를 섹스라고 못 하느냐고! ㅋㅋㅋㅋㅋㅋ 전 제가 남편이었으면 아마 끝까지 메이드라고 불렀을 걸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김애란이 말하고자 한 게 바로 그거, 인간은 선하지 않다... 같은데 그래서 저는 이 책 읽으면서 답답했던 거 같아요. 그래 알았어, 근데 그래서 뭐 어쩌자고! 이런 심정. 근데 다락방 님도 거기 동의하신다고요? “선한 사람은 없고 선하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은 있다” 저는 그래도 사람은 치졸하고 못났어도 선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이건 인간 혐오자인 저랑 인간 사랑자인 다락방 님 의견이 갈리네요?! 신기방기 ㅋㅋㅋ

다락방 2026-04-22 13:12   좋아요 1 | URL
저는 메이드를 ‘청소해주시는 분‘ 이라고 부르자에서 진짜 모순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기만이라고 생각했고요. 이거야말로 ‘선하게 보이고 싶은 나‘의 대표적 모습이 아닌가 싶었고요. 오히려 멸칭이 아닌 메이드를 멸칭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메이드를 그냥 직업적 지칭으로 생각하고 부르면 되는데, 그걸 오히려 더 약자라고 생각해버린 것 같고요. 그래서 기만으로 느껴지고 그 말이 더 싫었던 것 같아요.

저도 잠자냥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래서 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제 제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뒤가 잘 안보이고요. 그런데 어쩌면 그 뒤는 독자의 몫일지도 모르겟고요. 그래서 저도 별 다섯을 줄 수는 없는 책이었어요. 그리고 이 책에서 신형철이 김애란을 사회학자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그 사회학 이라는 부분에서는 김애란이 그런 면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그쪽으로는 역시 황정은이 최고이구나, 라고 생각했고요.

저는 ‘선하고자 하는 나‘가 인간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잠자냥 님 댓글 읽고나니, 선한 사람... 이 없진 않은것 같고요. 저는 선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런데 선한 사람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런데 선하기만한 사람은 없지 않나, 라고 또 한편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한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사람도, 어딘가의 누구에게는 또 끔찍한 사람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선한 사람은 존재하긴 할것입니다. 구체적 예가 떠오르진 않지만 말이죠. 선한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독서괭 2026-04-26 12:10   좋아요 1 | URL
와 두분 평이 갈리는 지점이 재밌어요!! 근데 모순이 없는 사람이라니 잠자냥.. 역시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인 거야

잠자냥 2026-04-2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수하는 직접 읽으시오. 🤣

다락방 2026-04-22 13:57   좋아요 0 | URL
건수하는 직접 읽으시오 2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23 00:56   좋아요 0 | URL
????? 🙄

잠자냥 2026-04-23 08:35   좋아요 0 | URL
다락방 1등 알림 페이퍼에 “김애란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고 건수하 님이 댓글 단 줄 아뢰오~

건수하 2026-04-23 08:43   좋아요 0 | URL
아 여긴 댓글 안 달았는데 여기 갑자기 있길래…. 근데 안 읽고 싶어서 고민인 거였어요… 😂

잠자냥 2026-04-23 08:56   좋아요 0 | URL
그냥 읽지 마시오.🤣

건수하 2026-04-23 09:16   좋아요 0 | URL
엊그제 회사 도서관 반납에 있는거 두고왔는데 오늘 가보니 대출중.. 일단 밀리에서 다운로드했는데 밀린 책들 많음 ㅎㅎ

잠자냥 2026-04-23 09:56   좋아요 0 | URL
저도 밀리에서 읽었습니다. 밀리에서 읽기 좋은 책.....(아주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6-04-22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내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난 듯한 느낌이 들어 참 불편했었어요.
그래서 계속 곰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근데 계속 소설이 떠올라 잊혀지지 않는다면 이건 내게 있어 가장 좋은 소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저는 별 다섯!^^
(그래도 제겐 <비행운>이랑 <바깥은 여름>이 좀 더 좋았기도 했습니다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쭉 읽고나니…김애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우리네들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저는 주거공간 부분이 참 많이 와 닿았었는데 다락방 님의 리뷰에서도 구체적으로 잘 표현된 부분들이 많아 완전 공감했네요.ㅋㅋ
그리고 특히나 선한 사람의 정의 부분에서 시선이 오래 머무네요. 다락방 님의 정의가 어쩌면 김애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과 비슷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구요. 저도 선한 사람일지라도 내면 속엔 자신도 모르는 어떤 계산된 마음, 그리고 악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스릴러물을 너무 읽고 있는 탓일지도?ㅋㅋㅋ)
어쩌면 살아온 인생의 무게가 저절로 교양과 매너를 장착하게 되었고, 또 어쩌면 자제력이란 게 훈련되어졌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나는 선행이랍시고 베푼 행동이나 말이 분명 상대방에겐 폭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긴합니다. 제가 실제로 그런 일을 겪어 당황한 적 있었거든요. 약자에겐 그 선행이 결코 선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더라구요. 소설을 읽으면서 지난 내 모습과 현재의 모습 모두 다 비춰져 참 부끄럽고 난감했었고 속 편하지 않았는데 이런 소설이 또 많이 나와야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지난 번 댓글에서 황정은 작가님도 언급해주셨는데 황작가님 같은 사람도 분명 있어야 하고, 다른 작가들도 여러 다른 요소와 각도로 ‘사회학자‘라고 불리는 소설가들이 많이 배출되고 소설도 많이 나왔음 좋겠어요.
리뷰 너무 좋아서 좋아요. 더 많이 누르고 싶은데 한 번만 눌렀네요.ㅋㅋㅋ

다락방 2026-04-23 15:56   좋아요 1 | URL
책나무 님,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선한 동기를 가지고 한 행동이 과연 선한 결과를 불러오는가, 선한 결과를 불러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선하다고 볼 수 있나. 이건 되게 복잡한 문제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선한 행동을 많이, 아주 많이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선한 사람이냐, 라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망설여지게 되는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선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선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인간에게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은 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인간의 선한 마음이라는 것은, 측은지심일 때,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만 발휘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이 책 속에서 화자들은 여행갈 경제적 여유가 있고 또 메이드에게 팁을 줄만큼의 여유도 되지만, 그러나 그에 기대하는 바를 가지고 있고, 또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장애있는 아이를 가르치는 나, 에 심취해있지만, 막상 그 아이네가 집 사서 이사간다고 했을때 어쩐지 속이 상한 내가 있고요.

학원에서 일하던 제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학원 학부모들도 얘기하다보면 임대주택 아이들을 무시한다고요. 그런 현실의 반영이 김애란 책에 다 녹아있는 것 같았어요. 나보다 월등히 잘 살면 질투나 시기할 엄두도 못내지만, 나랑 비슷한 줄 알았다가 나보다 조금 더 잘사는 것 같으면 마구 질투하고 시기하는 약한 인간들을 그대로 녹여냈달까요.

사실 저는 김애란의 이 책 보다는 김애란의 인터뷰가 더 좋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2026-04-23 2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괴롭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따뜻한 순간을 기억나게 하는 게 문학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읽는다고 모두 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다락방님이 괴롭다고 쓰신 이 글이, 오히려 소설과 문학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 인간을 얼마나 더 인간답게 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에는 항상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해요. 점프하기 전에 약간 긴장되는 그건 순간이구요. 특히 한국 소설은 더요.

다락방 2026-04-24 22:59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의 댓글을 읽다보니, 역시 가장 중요한 일은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자, 이런 이야기야, 하고 펼쳐주면, 그 이야기를 읽고나서 그 뒤는, 독자가 생각하고 행동할 몫인거죠. 그리고 모든 독자에게 같은 종류의 자극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누군가 엉엉 울었던 작품이 저에게는 아무 감정도 주지 않을 수 있고요. 그러나 모두를 울리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누군가에게, 그것이 단 한 명이라도 어떤 영향을 미쳤다면, 또 그정도라도 문학은 제대로 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김애란을 좋아한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문학에 대해 말하는 김애란은 좋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소설을 써주어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은, 문학에 대한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쓰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런데 막상 저는 문학에 대한 신념..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네요. 흐음..

얼음장수 2026-04-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읽는 내내 찜찜한 마음이었는데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아요.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도, 누군가를 구김없는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것도,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손님인 되는 것도 일정 수준의 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처절한 모순과 역설이네요. 시집과 소설을 읽고 주식 어플을 확인하고, 주식 방송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고, 매일이 매순간이 모순인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26-04-28 20:27   좋아요 0 | URL
오, 얼음장수 님도 비슷한 마음이셨군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게 옳은 것인지 그리고 어떤게 더 정의에 가까운지, 사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행동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제가 실제 삶에서 취하는 행동은 자본에 찌들어서 그걸 즐기는 나인 것이지요. 그걸 볼 때마다 제가 지향하는 바와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보통의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소설이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모순적이지 않게 살고 싶은데, 매순간 모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