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혐오 기사를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그걸 보자마자 너무 놀랐고, 그래서 댓글을 보았는데, 댓글이 다 한중혐오시위를 찬성하고 있어서 더 놀랐다. 순간, 내가 지금 싱가폴에 와서 감을 잃은건가? 라는 생각도 했다. 이게.. 맞는 시위인거야? 사람들은 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거야?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시사인을 읽었다. 시사인의 타이틀을 보고 읽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그 혐오시위에 맞서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다문화 학생이 전체의 절반을 좀 넘어가는 학교의 한 학생은, 한중혐오시위를 '한심하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아, 어딘가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고 또 어딘가는 나쁜 것에 맞서려고 하는구나 싶어서 역시 세상이 그렇게 쉽게 똥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영란'의 [일본에서 국문학을 가르칩니다]를 읽으면서, 나는 일한혐오를 다시 만난다. 시사인에서도 재일교포에 대한 혐오의 역사를 언급하긴 했지만, 이 책에서 또 만나는거다. 모든 책들을 언제 만나는지는 그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운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사인을 읽고나서 집어든 이 책에서 이렇게 일한혐오를 만나다니.
일본에서 거주하던 재일 여성들이 글자를 제대로 배우면서 전쟁반대 데모를 기획했는데,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그녀를 혐오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극우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후레아이관으로 몰려들었고, 그녀들은 헤이트 스피치의 표적이 되었다. 인종 차별주의자들은 '일본 정화' 라고 쓰인 횡단막을 선두로 "재일은 거짓말쟁이", "꺼져라, 꺼져라! 너희가 꺼져라! (한)반도로" 라는 플래카드를 든 채 "뒈져라, 죽어라" 마치 살인을 암시하는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일본에는 이를 막을 법이 없었다. '표현의 자유'라는 논법으로 버티는 인종 차별주의자들 주장을 살인 방조죄가 될 만하다고 반론하며 시민단체와 당사자들이 힘을 모아 2016년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을 이끌어넸다. 그 법이 가결되는 순간에 그녀들은 법정에 있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한 큰 동력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글자를 배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전쟁 반대 데모나 헤이트 스피치에 맞선 행동을 그녀들은 '축제'로 표현했다. -p.140
재일교포에 대한 혐오가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아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딘가에서 바로 우리를 향한 혐오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면, 살고 있는 곳에서 당장 꺼지라는 말을 듣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중국인을 향한 혐오를 시위까지 이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걸까. 우리를 향한 일본의 혐오는 잘못됐지만, 그런데 우리가 하는건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걸까? 아니면, 일본인들도 우리를 혐오할 만하니까 했지, 라고 생각할까. 자, 이어서 보자.
일본 사회에서 헤이트 스피치의 뿌리는 깊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전후까지는 한일 외교 문제가 기폭제가 되어 발생했다. 예컨대 한반도를 향한 불만이 일본 각지 조선학교 여학생에 대한 폭언과 폭행 형태로 드러났다. 여학생들은 조선 민족을 상징하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등하교 한다는 이유로 타깃이 되었다. 민족 혐오와 여성 혐오가 복합된 폭력 사건이 줄을 이었다. -p.140
바로 우리가 겪었던 일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으로부터 겪었던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같은 짓을 하고 있나. 어떻게.
[증오하는 힘]의 저자이자 시민 활동가인 모로오카 야스코 변호사는 200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헤이트 스피치가 급속히 퍼져나갔다고 말한다. 2002년 월드컵, 2003년 한류드라마 붐을 통해 관심 밖에 있던 한국 문화가 일본 사회를 관통하면서 헤이트 스피치가 강하게 가시화됐다는 설명이다.
2013년 즈음 극우 단체가 인터넷 공간을 벗어나 명백한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출판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4년에 일명 '헤이트 책'이라고 불리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속속 올랐다. '혐한 책'들이 넘쳐나는 상황에 자성을 촉구하는 헤이트 스피치와 배외주의에 가담하지 않는 출판인 모임이 결성되었고, [NO 헤이트! 풀판 제조자의 책임을 생각한다]라는 책이 출간되는 등 한동안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p.141
이러다가 한국도 중국인을 혐오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가득한 책이 출판되는건 아닐까.
고영란의 이 책을 읽다가 아쿠타가와상에 대한 놀라운 일을 알게 되는데, 아, 나는 너무 순진한 독서가였구나..
일본어 소설가로서 안정된 삶을 원하는 소설가 지망생은 아쿠타가와상을 꿈꾼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후보가 되고 수상까지 이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신인은 좋은 편집자를 만나 같이 뛰어야 한다. 후보작에 오르도록 소설 분량을 조절하고 적절한 시기를 골라 게재해주는 편집자를 만나 그들이 요구하는 상품성 있는 글쓰기 수업을 견뎌내는 인내와 열이 없이 '개천에서 용나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유명 문예지의 노련한 편집자 눈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 -p.95
뭐야... 내가 아쿠타가와상 탄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니엇지만,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냥 잘 썼다고 주는 상이 아니었어? 그 전에 기획되어야 하는거였어? 우리 신춘문예는 그냥 원고 보내면 되는거 아닌가? 그 원고 심사위원들이 다 읽어보고 오호라, 이것 좋구먼, 하고 뽑히는거 아닌가요. 아쿠타가와상은 정말 만들어지는 거구나. 좀... 실망스럽네요..
그리고 이런 작가의 생각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표준어라는 이름으로 학교 교육을 통해 전파되는 국가어를 명확히 인식하고 두 개 이상 언어를 상황에 맞춰 분리 사용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 특히 강제적 교육이 필요하다. 만약 외국 생활이 길거나 외국어 공부를 오랫동안 한 사람이 모어와 외국어를 마구 섞어 사용한다면 과도한 자기 연출이거나, 조절하기 어려울 정도로 언어 능력 편차가 상당하거나, 양쪽 언어 경계를 의식하는 생활환경이 아니거나, 외할머니처럼 학교라는 공간에서 언어 규범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p.133
정말 그런가, 생각하며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이 네가지의 경우로 압축하는 건 좀 억지스럽다. 김미소는 이런 경우를 '코드 믹싱'이라고 하지 않았나.
"오늘 원래 3시에 보기로 했는데 못 봐서 잔넨(유감) ㅠㅠ" 해외에서 한국인과 대화하거나, 해외에 오래 산 한국인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언어 간의 경계를 몇 번 뛰어넘었는지 의식조차 못 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코드를 섞어 말하는 걸 ‘코드믹싱(code-mixing)‘이라고 부른다. - 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P82
흐음. 김미소가 말한 코드 믹싱은, 고영란이 지적한 네 가지 원인중 세번째, ' 양쪽 언어 경계를 의식하는 생활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걸까? 하여간 계속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주장이다.
고영란은 일본에서 국문학, 즉 일본의 국문학인 일본문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이다. 지금처럼 외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공부하던 시절에 일본에 간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고생했던 일이 담겨있기도 하고 그리고 현재에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담겨있기도 하다.
2018년 쉰 살이 되는 해에 1년 동안 연구 휴가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대학 에드워드 마크 교수가 자신의 대학원 수업을 합동 강의 형식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3월 말부터 6월까지 봄 학기 체류, 숙소는 워싱턴대학이 제공한다는 유리한 조건이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마야 보도피벡 교수는 8월 말에 '1968'을 주제로 한 국제 회의에 초청해주었다. 안식년이라면 자신의 연구실이 있는 헤이그 캠퍼스에서 원하는 만큼 머물라고 했다. 2019년 1월부터 3월 말까지는 대학원 시절부터 연구 교류를 꾸준히 해왔던 시카고대학 마이클 보더슈 교수께 부탁해 시카고에 머물기로 했다. 각 대학 체류 기간을 3개월 이하로 한정한 것은 따로 장기 체류 비자를 받기 싫어서였다. 일본에서 비자 문제로 충분히 고생했기에 더는 비자를 받으려고 특정 나라의 입국 관리 부서에 머리룰 숙이고 싶지 않았다. 한국 여권으로 가능한 관광 비자만으로 최대한 즐겁게 공부하자. 2018년의 목표였다. -p.248~249
이 부분을 읽는데 미친듯이 부러웠다. 아 정말 좋겠다. 세계 여기저기서 여기로 와, 숙소 제공해줄게,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하는게 너무나 부러웠다. 학교에서 연구하라고 1년의 시간을 준 것도 부러웠다. 그래서 내 젊은 시절이 후회가 됐다. 고영란이 받았던 것 같은 이런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게 중요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창 시절이 있어야 했잖아. 나는 왜 그게 없나. 나는 왜 학창 시절 공부를 하지 않았나. 고영란이 연구 휴가를 받았다는 쉰 살에, 과연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한국에서 열심히 돈 벌고 퇴근하면 소주 마시고 있겠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나저나, 요즘 박정민이 대세던데.. 그 눈빛 운운하며..
나는 인스타에서 그 영상 보고 ,뭐야, 화사는 춤 추는데 왜 박정민은 가만있는거야? 하고 좀 기분이 나빴더랬다. 그런데 곧이어 박정민 찬양하고 따라하는 영상들이 연달아 올라오는거 보고, 하- 내가 여기서도 감을 잃었나 싶어졌네. 나는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어떤 설정같은 것인가... 눈빛 찬양 천개 봤는데 매력은 모르겠고 살짝 불쾌한 1인.... 내가 T 인건가? 아이 돈 노.
어제 책 읽으러 마트 갔었다. 정확히는 마트의 bar.

(나는 사진 속 저 두 직원은 알고 있고 오른쪽 분과는 하이! 한다.)
평일 다섯시까지 해피아워라서 맥주 한 잔을 시켜서 마시고 있다가 네시 오십분을 넘겨서 한 잔 더 마실까 말까, 마실거면 지금 시키자, 하고 한참 갈등하다가 다섯시 되기 바로 전에 한 잔을 더 주문했단 말이지. 그렇게 한 잔을 더 받았는데, 나에게 맥주를 준 남자 직원이
"오늘 기네스 안마셔?"
물어보는거다. 일단 나는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서 놀랐는데, 왜냐하면 나는 이 직원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거든. 나에게.. 기네스 따라준 적 있어요? 아이 돈 리멤버. 여자 직원 한 명하고는 지나다가 '하이' 하기도 하지만, 이 남자 직원.. 나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렇지만 내가 여기 와서 가끔 기네스 마신건 사실이다. 하여간 기네스는 해피아워 적용이 안되고 늘 같은 가격이기 때문에, 해피아워에는 적용되는 맥주 마시자, 싶어서 다른 거 마시고 잇었던 거였다. 그래서 나는 답했다.
"해피아워잖아."
그랬더니 직원이 빵터져서 소리내 웃더니,
"맥주는 해피아워 아닌데?"
하는게 아닌가. 뭐라고? 나는 너무 놀라서,
"다섯시까지 해피아워 아니야?"
물었고, 그러자 직원은,
"해피아워는 와인만 적용돼."
라는게 아닌가.
"앗, 와인만 해피아워 였어?"
"응! 맥주는 아니야."
내가 넘나 당황한 표정으로 오 마이 갓, 하면서 "나 몰랐어!" 했더니 직원이 또 빵터져서 웃고.. 나도 같이 웃고... 나는 기네스를 원했어! 라고 절규 한 번 해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제기랄 이제 기네스만 마셔야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기네스 안좋아했는데 여기와서 좋아하게 됐다. 하여간 신기하다 이런 것들. 내가 달라지는 것들.
어제 실컷 먹고 잤다. 오늘 체중계 위에 올라가면서 당연히 올라갔겠지, 나의 큰 체중.. 했더니 하하하하 역시 올라가잇었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아프지 않으려면 잘 먹고 잘 자야지. 계속 먹고 계속 잤다. (맥주 너무 많이 마신건 비밀).
그리고 오늘은 오후 수업이 하나 있어서 이제 학교 가야 된다. 오늘 mock test 결과 받게 될까? 풀이는 다음주에 해준다고 했는데, 결과도 다음주에 받게 될까? 일등 빼앗겼으면 어쩌지? 하 초조해... 나도 쉰살에 연구 하라고 일년 받고 싶고, 그러면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여기로 와, 했으면 좋겠다.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