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이모랑 술마시면서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유퀴즈를 보았다. 방송에서는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인 서은국이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그는 세계적인 행복 연구학자라고 했다. 그가 처음에 한 말은 행복을 30년간 연구한 자신보다 행복에 관한 논문 한 줄도 읽지 않은 자신의 여동생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놀라웠는데,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의 대표적 성격이 외향성 이라는 거였다. 그건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쁨을 얻기 때문이고 외향성은 다른 사람을 잘 만나는 성격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내향성에 대한 질문이 반드시 따라오는데, 서은국 교수는 내향성의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들이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내향성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부정적 정서가 많이 따라오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이를테면 어색함에 있어서도 그 어색함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고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게 더 좋아'라고 말한다는 것. 사람으로부터 기쁨을 얻는 것은 내향성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혹시 서은국 교수의 책이 있나 그자리에서 검색해보았다니, 오, 있었다. 게다가 제목도 행복의 기원.
나에겐 읽어야 할 책들도 쌓여있고 사두고 안 읽은 책들도 수두룩하지만, 나는 당장 이 책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 바로드림으로 교보문고에 가서 사왔고(아.. 너무나 더웠어..) 그리고 다 읽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행복하기에 최고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내가 행복을 자주 느낀다는 것, 아주 잘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나의 외향적 성격 때문이며 그리고 그것의 일정 부분은 유전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유퀴즈에서 조세호는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하자 서은국 교수는, '그러면 너는 지금 이 앞의 탁자를 보고 행복하냐, 만약 행복이 마음먹기에 따른 것이라면 너는 이 탁자를 보고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했다. 행복을 캐치하는 것, 느끼는 것과 그런데 그것이 마음먹기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만큼의 거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행복하기에 맞춤한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행복하기 때문에, 만약 서은국 교수가 연구하면서 외향성과 사회성 그리고 행복에 대한 표본을 찾고 싶다면 나를 데려다 쓰면 될 것 같다.
내향성에 대해서는 좀 덧붙여야 하는게, 그렇다면 내향성이 나쁜 것이냐, 라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젓가락과 숟가락처럼 그 쓰임이 다른 것이지 어느 하나를 나쁘다 또 좋다고 말할 수 없단은 것. 저마다의 쓰임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노파심에서 얘기하자면 서은국 교수는 외향성 예찬론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며, 또 개인적으로 서은국 교수는 외향성의 사람들을 피곤해한다고 책에서 밝혔다(나 누군가에게는 피곤한 사람일까?). ㅎㅎ 내향성의 사회성에 대해서는 서은국 교수가 든 예시를 가져오겠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오르고 싶어하는 산은 똑같다.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있는 정상. 이 둘의 차이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느냐다. 외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가볍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어색함, 스트레스, 두려움 등으로 무겁다. 그래서 중턱쯤에서 되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산 정상에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산보다 바다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가벼운 짐'은 외향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태어난 큰 유전적 혜택이다. 유전자는 공평이라는 단어를 모른다. -p.149
아아, 나란 인간.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니지만 외향성 수저였음으로 밝혀져...
조금 더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해 들어보자.
(연구 결과 내향적인 사람들도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나타났는데 p.146)그렇다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왜 외향적인 사람들만큼 타인과 어울리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싫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다. 사람이라는 자극은 양날의 검과 같다. 사람은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계속 직장 상사만 보다 보면 휴가 생각이 간절히 나는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이런 사회적 스트레스를 더 예민하게,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경험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한발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 싫은 것과는 다른 얘기다. -p.148
행복이란 것에 대해 서은국 교수는 다윈의 진화론을 가져와 설명한다. 행복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인데, 전체적으로 책의 내용에 수긍하면서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이 이론에 반박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사두고 읽지 않은 책 루시 쿡의 『암컷들』 생각도 났고. 그 책을 읽고나서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뭐가 됐든 행복의 핵심에 대해서라면 서은국 교수의 결론은 내 것과 같다.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 내면 행복은 결국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된다. -p.195
난 이런 거 진짜 좋아하거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궁극의 행복아 아니던가!!
혈통이 끊어지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근친관계를 방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일종의 ‘근친 감지 시스템‘을 동물들은 보유하고 있다.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 위 연구에서 수개월에 걸쳐 여대생들이 누구와 얼마나 자주 문자나 전화를 하는지 분석해 봤다. 여대생들의 임신 확률이 높은 가임기와 그렇지 않은 기간의 통화 내역을 비교해보니 딱 한사람과의 통화 패턴이 달라졌다. 바로 그녀들의 아버지였다. 연구자들의 예상대로다. 아버지와 딸. 유구한 세월 동안 근친 관계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사이다. 그래서 가임기에 가까워질수록 여대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거리를 둔다. 가임기에는 통화 빈도와 시간을 서서이 줄이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또다시 정상 패턴으로 돌아간다. 가임기에 가까워지면 아버지를 경계하라는 경고 시스템이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된 현상이다. - P44
시카고대학의 카시오포(Cacioppo) 교수 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Cacioppo & Patrick, 2008). - P90
10여 명의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정글을 나와 초원 생활을 하며 집단의 크기는 약 150명 정도로 커졌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하게 됐다. 이처럼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단은 것이 최근 널리 각광받는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의 핵심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스럽게 만드는 뇌. 한마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 P92
연구자들의 예상대로 매일 타이레놀을 복용한 집단은 통제집단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사회적 상처를 덜 느꼈다. 마치 두통을 없애주듯, 진통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고통도 덜어 준다는 것이다. 놀랍지만 가능한 일이다. - P97
사람이라는 동물은 극도로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뇌는 온통 사람 생각뿐이다. 희로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다. 또 일상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70퍼센트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Lieberman, 2013). - P103
긴 시간 행복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고민을 해보았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 P104
우리 눈에는 내면의 성격보다는 바깥세상의 것들이 훨씬 잘 보인다. 가령 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성격은 보이지 않아도, 그가 어떤 차에서 내렸는지는 알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행복해 보이면 고급 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앞에서 언급했듯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행복하다면, 원인은 그의 차가 아니라 그의 성격일 확률이 훨씬 높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웃을 사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행복의 원인 중 사람들이 가장 과대평가하는 것이 돈과 같은 외적 조건이다. 이 장에서는 반대로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대부분이 미처 생각지 않는 요인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어떤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오랫동안 행복을 연구한 석학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그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 - P136
유전과 행복을 각각 하나의 대륙이라고 한다면, 이 둘을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다리가 있다.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trait)이다. 유전적 영향에 의해 외향성 수치는 어느 정도 정해지며, 그 외향성의 정도가 개인의 행복 수치와 기은 관련을 맺는다. - P142
외향성이 행복 연구에서 그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한마디로 행복과 가장 손을 꼭 쥐고 있는 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연구된 그 어떤 다른 특성도 외향성만큼 행복과 관련 깊은 것이 없다. - P142
구체적인 이유야 무엇이든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그들(특히 이성)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다. (이건 맞음. 다른 사람이 나 좋아하게 하는 건 일도 아님:다락방 주) 그래서 그들은 첫 경험 시기도 빠르고,(이건 틀림:다락방 주), 경험 상대도 많다(이건 안알랴줌: 다락방 주)(Nettle, 2006). - P143
미국도 마찬가지다. 행복하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보다 사회적 시간이 약 2배 많지만(65퍼센트 함께, 35퍼센트 혼자), 불행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2배 이상 많다(32퍼센트 함께, 68퍼센트 혼자).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호모사피엔스의 행복 전구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훨씬 자주 켜진다. - P146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선천적으로 내향적인 사람도 타인과 함께할 때 더 행복할까? 이 질문을 염두에 두고 한 연구에서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하루에 여러 번, 몇 주 동안 문자메시지를 통해 두 가지 질문을 반복적으로 했다.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또 누구와 함께 있는지. 연구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달랐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Diener & Biswas-Diener, 2008). - P146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든, 사람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미 반쯤 천국이라는 뜻이리라. - P156
과도한 타인 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P172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 P175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 되는 생각을 자주 하라는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없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지침들은 대부분 그렇다. "불행하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을 통해 바뀌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생각이다. 행복의 핵심인 고통과 쾌락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다. - P194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 내면 행복은 결국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 P195
내향성은 외향성의 반대가 아니다. 찬물과 더운물 이 두 종류 물이 아니듯, 외향성/내향성은 상반된 특질이 아니고 동일한 특질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낮은 외향성‘을 편의상 내향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P218
늘 불행하다는 것은 과장이다. 대부분 행복, 아주 가끔 불행. 그래서 불필요한 ‘행복 스트레스‘는 이제 떨쳐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힐링‘같은 단어도 서서히 사라졌으면 한다. 멀쩡한 자신을 마치 치유와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로 세뇌시키는 것은 장기적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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