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아시아나 유럽 의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내가 인종차별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적은 없었다.
일전에 한 번 언급한 적 있지만, 홍콩의 공항에서 같은 아시아인에게 중국에서 왔냐는 물음을 듣고 아니다, 한국이다 답했더니 너네들은 다 비슷하다며 눈을 찢는 시늉을 내 눈앞에서 본 적은 있지만, 아 이것이 그 인종차별이구나, 했지만, 그 당시에 그 행위를 내 앞에서 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건 아니었다. 자기도 아시아인이면서 왜 저럼? 하는게 다였다. 그것이 그간 내가 당해본 인종차별의 전부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 사이사이 인종차별을 당했을런지도 모르지만, 내가 기분 나쁘게 인식한 것은 기억에 없다. 오히려 나는 늘 여행에서 친절함과 다정함만을 만났더랬다.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여자나 남자들을 만났고, 오 내가 가는 길이 바로 거기이니 함께 가자, 하는 사람도 만났다. 버스정류장을 알려줘놓고 혹여라도 잘가고 있는지 걱정되어 버스정류장에 뛰어와 내가 있나 확인한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걸 알고,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인종차별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도 알았지만, 그러나 나는 짧게 머물렀던 탓인지 백인들로부터도 또 유색인들로부터도 기분 좋은 경험들만을 하고 왔다. 어쩌면 딱 보기에도 여행객인것 같아 친절하게 대해주는게 가능했을런지도 모르겠다.
며칠전에도 생애 처음 외국여행을 뉴욕으로 갈 거라며 걱정하는 친구에게 '걱정하지마, 네가 여행객인건 티가 나고 사람들은 그런 너에게 다들 친절하게 해줄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정말 그랬으니까. 지도를 보며 머뭇거리는 내게 '어디 찾는데, 내가 널 도와줄수 있어' 라고 말을 걸어오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그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눈앞에서 맞닥뜨리고 말았다. 내가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나폴리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려고 했다. 처음 타보는 기차이니 플랫폼을 여기로 가면 되는지 여기로 가서 저 기차를 타면 되는지, 티켓을 들고 친구랑 찾다가 한 번 확인하자, 하고는 플랫폼 앞을 지키는 수많은 직원들중 한명에게 다가가, 익스큐즈미, 하고 우리는 여기로 가야 하는데 이쪽으로 가서 타면 되니, 하고 묻고 있는데, 그는 내가 익스큐즈미, 하고 그의 앞에 서자마자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 당시에는 그저 그가 잠깐 나를 못봤거나 내 말을 못들었거나 그곳에 뭔가 볼 게 있어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내가 말을 끝내고 그 앞에 서있는 내내 한 번도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린 채로 다른 쪽만 바라보다가, 한 백인 여성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본 조르노~' 하자 그녀에게는 고개를 돌려 대응을 해주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대응한다면 나에게는 대응할 수 없을 것 같아 얼른 다른 직원에게 가 다시 묻고 확인을 받고 기차를 타러 가면서, '아, 이거 나 지금 보란듯이 무시한건가? 인종차별 당한거야?' 하는 뒤통수 후려갈김이 왔고,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나 지금 인종차별 당한거야?"
친구는 그런것 같다고 했다. 친구 역시 처음에 그가 우리가 다가온 줄을 몰랐던거라 생각했고 그런데 그 앞에 있으니 어쨌든 돌아보고 대답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끝까지 고개를 돌려 저 쪽을 바라보는 걸 보며 아 인종차별하는구나, 했다고.
나는 내 앞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무시를 당한 적이 없었다. 이건 처음 겪는 기분 나쁨이었다.
인종주의의 핵심은 '우열 매기기' 에 있다. 나를 '양공주'라고 부른 남자 그리고 후세인 교수와 동승한 여성을 '조선 년' 이라고 부른 남자는 자신의 우월적 위치에 대한 확신으로 알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혐오 표현을 퍼부었다. 외국인 남성과 함께 있는 우리 몸의 가치를 매김으로써 우리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여성으로 본 것이다. 성적으로나 신분상 우월하다는 확신이 타인을 혐오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태도로 나타났다. -p.20
기차의 좌석을 찾아 앉으면서 너무 억울했다. 너무 화가 났다. 너무 분했다.
아, 그걸 그 앞에서 바로 인지했었다면, 그 순간 바로 '인종차별이다'라는 걸 알았다면, 그에게 바로 '너 지금 인종차별하는거야?', '너 인종차별주의자야?'해줄 수 있었을텐데, 한 마디도 못하고 고스란히 그걸 겪고 당한 게 너무 분했다.
부모나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아동은 없다. 우리도 정말 우연적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노력으로 획득되지 않은 국적이 특권이 되는 게 온당할까? -p.48~49
잘못한 건 그인데 기분은 내가 나빴다. 너무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쁜 걸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위축됐다. 쪼그라들었다. 그 다음에 사람들에게 무얼 물어보는 일에 움츠러들게 됐다. 또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또 나를 못본척 하면 어떡하지? 그게 좀 두려웠다. 외국에서 오래 거주하는 사람들이 인종차별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건, 이런 경험이 쌓이고 또 쌓이는 것이겠구나. 이런 경험이 축적될수록 위축될 것 같았다. 당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본래의 성격이 어떤것이든 이런 경험들이 축적된다면 성격 자체가 변할 것 같았다. 그 전에 내게 있었던 수많은 친절하고 다정한 경험들이 무색하게, 나는 지금 눈앞에서 무시당한 이 한 번의 경험에 완전히 휘어잡히고 있었다. 이런 기분이 계속 들게 둘 순 없었다.
잘못한 건 내가 아니다, 잘못한 건 그다.
지금 이 세상을 살면서 인종차별하다니, 그가 후진거고 도태된거다.
이 경험 한 번으로 움츠러들지 말자, 위축되지 말자.
나는 그간 친절한 경험을 많이 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한 번의 경험이 나를 사로잡게 두지 말자.
나는 로마에서 나폴리로 넘어가고 있었고, 지금 베니스에 있다는 다른 친구에게 이 경험을 얘기했다. 친구는 '이탈리아가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딱히 친절한 느낌은 아니야' 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런데, 굳이 친절하진 않아도 된다. 친절은 에너지를 쏟는 것이고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타인으로서 욕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친절하면 좋겠지만, 친절은 내가 당연히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시는 다른 부분이다. 친절한 태도가 아니어도 대응은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 아닌가. 또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있다면, 그 혐오는 숨겨야 마땅한 게 아닌가.
공용어가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수단으로서 공용어가 있다면 당연히 좋지 않은가? 문제는, 언어가 우리와 이주민을 줄 세우는 평가의 기준이 될 때 인종차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p.88
이 일에 대해 나는 계속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익스큐즈 미, 대신 본 조르노, 라고 했다면 그는 응답했을까? 그가 응답하지 않은 이유, 내 앞에서 고개를 휙 돌리고 내가 갈 때까지 결코 나를 보지 않았던 이유는, 익스큐즈 미,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겉모습 때문일까. 그러다가 다시 또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내 겉모습 때문이든 익스큐즈미 때문이든, 그는 그러면 안되는거였다. 내가 무시당한 이유를 내가 나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 이건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무시당한 후 나는 자꾸만 나를 되돌아보고 있는거다. 아니, 되돌아봐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인종차별을 한 그 사람이다.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의 눈앞에 다가온 동양여성의 물음에 답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면서, 어이 빨리좀 가지 귀찮게, 라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눈앞에서 사라지고난 후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까? 나는 자신이 하는 짓이 어떤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채로 사람들이 차별과 혐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러나 내 앞에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이 있는데도 휙 고개를 돌리고 갈 때까지 결코 시선을 두지 않는 것은, 스스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 분명 알고 하는 행위가 아닌가. 아시아인의 물음에 답하지도 쳐다보지도 않는 것, 그러나 백인 여성에게는 답하는 것. 이것은 스스로도 차별과 혐오를 하고 있음을 알고 하는 행위가 아닌가 말이다.
위축되려고 해서 자꾸 나를 다잡으며 나는 나폴리를 즐기려고 노력했다.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폴리도 뜨거웠다. 무언가 물을 일이 있었을 때 약간 주춤했지만, 그러나 주춤하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을 순 없었다. 그런 식으로 여행을 그리고 삶을 지속할 순 없는 법이다. 나는 다시 말을 걸었고,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여기가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곳이니, 라고 물었을 때 어떤 남자는 맞다면서, 그런데 엄청 깊어서 너네는 내려가고 또 내려가야 해. 에스컬레이터를 계속 타, 라고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정말 정말 아래로 계속 계속 내려가야 해, 라고. 그러면서 너네 어디로 가는데? 물었고 내가 센트럴역이라고 하자, 응 그렇다면 여기로 내려가서 타면 돼, 라고 말해주었다.
로마로 돌아와서 다음날 만난 상점의 직원은 자신도 아버지 사업차 한국에 갔었다고, 서울과 부산에 갔었는데 서울은 사람이 너무 붐볐고 부산이 자기는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이 상점은 유리로 만든 것들을 파는 곳인데 처음에 갔다가 여기서 뭔가를 사면 깨지지 않게 가져갈 수 있을까, 싶어서 묻기만 하고 나왔더랬다. 그리고 사흘후였나, 다시 방문하면서 '나 다시 왔어, 기억하니?' 라고 말해야지, 생각했는데, 내가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너 다시 왔네!!" 하는게 아닌가. 아니, 선수를 빼앗겼다! 그래서 맞아, 나 다시 왔어, 했더니,
"너 비행기 탈 건데 포장 잘해줄 수 있냐고 물었잖아, 기억해!!" 하는 거다. 그래서 맞아, 맞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친구와 함께 무언가를 사고 포장을 하고, 친구는 더 살 게 있다고 해서 기다리면서, 그 직원과 스몰토크를 하는데, 갑자기 그 직원이 "왓츠 유어 패이버릿 컬러?' 하고 물었다. 나는 레드! 라고 답하자, 잠시만 기다려, 하더니 마그넷을 하나 포장해주었다. 너가 다시 와서 내가 선물해 주는거야, 라고. 깔깔 웃으면서 고맙다고 받으면서, 근데 하나만 더 주면 안될까, 내 친구도 주게, 하니까 오케이 하고 그녀의 패이버릿 컬러는 뭐냐고 물었다. 나는 친구에게 무슨 색깔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고 친구는 파랑색이라고 했다. 직원은 파랑색 마그넷도 하나 주었다. 우리는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어쩌면 여기서는 내가 돈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정함과 친절함을 받을 수 있었던걸까? 그렇지만 기차를 타기 위해서도 나는 돈을 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충격적인 나쁜 경험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잊혀지진 않을 것 같다. 검색해보니 이탈리아가 인종차별로 유명한가 보았다. 하아- 내가 미국에서도 안당한 인종차별을 이탈리아에 와서 당하네. 여기 이렇게 거주하는 유색인들도 많은데. 자꾸만, 오랜시간 외국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데,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할 생각을 한다거나, 혹은 당하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위축될 걸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들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건가요. 위축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도록 합시다. 차별과 혐오는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겁니다. 당하는 사람이 잘못한 게 아닙니다. 특히나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국적, 성별 때문에 차별이라니요. 그건 정말로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겁니다.
이탈리아에 대해서라면 잘생긴 남자들도 많고 매너 좋은 남자들도 많다고 숱하게 들어왔는데, 나는 인종차별하는 백남새끼나 경험하고 왔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여행에서 경험하고 얻는게 참 많은 사람이고 여행을 즐길 줄도 아는 사람이지만, 그런데 이 경험이 너무 강해서 제일 처음으로 얘기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았다.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때의 위축됐던 경험이, 그러니까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위축됐던 경험이, 내 몸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