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는 영어를 쓰지만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쓰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를 하지 못하고 중국어만 하기도 한다. 이건 싱가폴에 갔을 때도 경험한 일이었다. 나는 싱가폴이 영어권 국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길을 물을 때 영어로 물었었는데, 상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기도 했다. 중국어로만 답해서 그제서야 아, 이곳에 산다고 다 영어를 하는건 아니구나! 했더랬다.
방통대 다니던 짧은 시절(반학기 다니고 자퇴함 ㅋㅋㅋㅋㅋ) 캐나다의 이쪽은 영어를 쓰고 저쪽은 불어를 쓴다는 걸 교재를 통해 알게 됐는데, 흔히 영어권 국가라고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된 상식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앞의 페이퍼에서 타이완 친구 만들었다고 하니까 모두들 내가 영어를 엄청 잘한다고 오해할 것 같아서 영어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음, 영어를 잘하느냐? 아니요. 그런데 내가 숱하게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며 깨달은 게 있다면, 여행지에서 영어를 말하는 사람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단 말하는' 사람이 영어를 한다는 거다. 내 경우가 바로 이렇다. 이건 나의 성향 혹은 성격이라 볼 수 있을텐데, 한국에서도 나는 낯선 사람에게 말거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고, 가끔 주체하지 못한채 말을 하기도 한다. 외국에서도 이런 나의 성격이 그대로 튀어나와서, 알고 있는 단어를 총동원해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거다 ㅋㅋㅋㅋ 말레이시아에서도 누가 신호등이 색이 바뀌길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의 버튼을 누르는 걸 보았다. 아니, 내가 네덜란드 갔을 때 저 버튼 누르면 색 바뀌는 건 알았지만, 말레이시아도 그래? 나는 궁금했다. 다음 신호에서 그 사람은 또 누르더라. 으윽, 하지마, 말걸지마, 참아... 라고 내가 내게 말했지만 내 육체는 이미 나보다 앞서 나가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해. 혹시 그 버튼 누르면 색깔이 바뀌니?"
그러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답은 '잠시 후에 바뀐다'는 건지 '잠깐동안' 바뀐다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 들리는 말은 for a while 이 다여서, 아마도 바뀌지만 잠깐동안 바뀐다는 건가 싶었다.
택시를 타고 미술관에 갈 때 (역시 혼자였다) 택시 기사는 내게 혼자 왔냐 물었고 아니 친구랑 왔는데 그녀는 호텔에 있다고 말했다. 기사는 내게 무척 덥지? 물었다. 나는 '응 매우 덥고 땀도 많이 나' 라고 말했다. 이러니까 대화 겁나 잘한거 같쥬? 실제 내가 한 말은 이거였다.
very hot.
very sweat.
이게 다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나는 여행객. 상대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사람들은 여행객에게는 친절하다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바쿠테집의 대만 젊은이와 친구가 되었다고 해서, 내가 그러면 영어를 잘했을까?
내가 그 젊은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친구가 비영어권 생활자였기 때문이다. 즉, 나만큼 영어를 하는 젊은이였기 때문. 만약 상대가 영어권 국가에서 왔다면 대화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대만 젊은이와 나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러나 그것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쉬운 단어들로 구성된 쉬운 문장들을 만들어 대화했다. 이건 우리가 둘다 비영어권 국가에 살며 영어를 학교에서 배운게 영어 공부의 전부였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것이었다. 너 영어 어디서 공부했어 물으니 대만 젊은이는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나 역시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대만 젊은이는 내게 '내가 만나본 코리안 중에 니가 영어 제일 잘해' 라고 하길래 전혀 그렇지 않다고 나는 대응하며 '너랑 나랑 대화 되잖아 너도 잘하는거지' 이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전에 남동생이 회사의 해외영업부에 재직하던 시절, 미국에서 온 바이어보다 독일에서 온 바이어랑 대화하는게 더 쉽다고 한게 무슨 말인지 진짜 너무 잘 안다. 독일인과 내 남동생은 서로 영어가 외국어였던 터라 짧은 대화로 뜻이 다 통했던 것 ㅋ 나도 대만 젊은이와 그러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번에 여행하면서 '흐음, 나 영어가 좀 늘은건가, 아니면 깡이 좀 더 생긴건가' 생각하긴 했는데, 어쩌면 그건 최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듀오링고> 덕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창원에 친구들 만나러 갔다가 친구들 하는 거 보고 따라 설치했던 앱인데 하루에 5분만 공부하는 것. 그조차도 내가 답을 빨리한다면 2분 내로 끝낼 수 있다. 얼마간 써보다가 나는 유료 결제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 앱은 내가 하루라도 영어 공부를 빠뜨릴새라, 알림을 보내준다. 너 연속 학습 놓지마! 하면서. 나는 이걸 말레이시아에서도, 여행지에서도 했다. 하루는 잊고 지냈는데,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던 터에 알림이 왔고 뭐지, 하고 보니 듀오링고! 우엇, 나 오늘 빼먹었네?
마침 미술관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나는 미술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짧게 듀오링고를 했다.
듀오링고는 나의 루틴에도 포함되어 있는데, 매일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 그리고 지하철 도착을 기다리면서 하는 거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면 책을 펼치고. 그래서 평일엔 듀오링고를 잘 해낼 수 있는데 주말엔 좀 루틴이 흐트러져서 알림을 보고서야 비로소 앱을 켜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말레이시아에서도 하루도 놓지 않고 나는 듀오링고를 했고, 그렇게 연속학습을 두달 이상 이어가고 있다.
위는 어제 캡쳐한 것. 후훗.
이번 여행에서 혼자한 시간이 많았다.
체력 저하의 친구는 반나절 이상을 호텔에 머물렀고 나는 아침에 나가서 밥 먹고 친구를 위해 밥을 포장해 가 친구를 먹이고 다시 나가 돌아다니고 다시 돌아와 친구를 데리고 저녁 먹으러 나가곤 했다.
혼자 다니는 시간 동안 구글맵이 나를 도와주었다. 구글맵과 돈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영어를 못해 상대의 말을 알아듣기까지 오만년 걸리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알아듣지 못한 채로 그냥 넘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에 더 최적화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휴가는 좀 길게 갈 수 있는데, 일단 로테르담의 숙소를 예약해둔 상태다. 나 그 숙소 너무 좋아서 네덜란드 간다면 거기 또 묵고 싶거든. 누가 가져갈새라 얼른 예약해두긴 했는데, 사실 어디에 가고 싶은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작년만 해도 두번 생각할 것 없이 네덜란드였는데, 올해 자꾸 핀란드가 생각나서. 그런 한편, 유럽에 혼자? 를 생각하면 살짝 쫄리기도 하고, 그러나 작년에 네덜란드 여행을 마치면서 '흐음, 이제 유럽도 혼자 가능하겠어' 마음 먹었던 생각도 난다.
더 좋은 여행을 위해서는 계속 건강을 유지해야 하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친구의 체력저하를 보면서 궁극적 여행은 결국 혼자인 것이구나 했던 까닭이다. 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때, 먹고 싶은 때, 가능한 체력 이 모든걸 다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타인으로서는 존재 가능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가려면 나 혼자여야 하는데, 휴 유럽은 사실 아직 좀 쫄리긴 해? 여하튼 여름이 올 때까지 아니, 그 후에도 계속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종국에는 영어책 읽는 것이 어렵지 않기를 바라지만, 외국에서 여행자로서 영어를 하는 것과 영어책 읽는 것은 또 아주 다른 문제이기에...
아 모르겠다. 영어 도대체 뭔지.
영어 못해서 계속 영어를 공부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자의 숙명인가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영어를 싫어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실력보다 더
영어를 좋아했다. 그리고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