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효과라는 게 있어.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 관련된 추억이 떠오르는 현상이야. 프루스트라는 작가의 유명한 소설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주인공이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을 때 옛날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이야기야." -p.9


대학 입시를 앞둔 오사다는 같은 학급의 오가와 군과 친구가 되며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오가와는 딱히 반 여자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타입이 아니었고 그건 오사다 역시 마찬가지. 오가와는 프루스트 효과를 얘기하며 공부할 때마다 초콜렛을 먹는다. 프루스트 효과에 기대어 시험 볼 때 해당 초콜렛을 먹으면 초콜렛 먹으며 공부했던 것들이 다 기억나지 않겠느냐는 거다. 이에 오사다는 오가와가 먹는 초콜렛의 자매품 초콜렛을 마찬가지로 매일 공부할 때마다 먹는다. 시험볼 때 공부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아니, 이거 정말 그런거라면 너무 좋네. 나도 영어책 읽을 때마다 먹을까...싶지만 영어책을 별로 안읽고, 그렇다면 여성주의 책을 읽을 때마다 먹...으면 고도비만으로 가는 지름길이겠구나.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나는 초콜렛, 사탕, 캬라멜 등을 딱히 좋아하지 않고 껌도 씹지 않는다. 그나마 초콜렛이 간혹 땡길 때가 있는데, 이건 언제가 그런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예전엔 생리할 때 그런건가 했는데 요즘엔 딱히 그렇지도 않고. 대체적으로는 잘 안땡기긴 한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좀 기분이 좋아지는 건 있는 것 같아.. 음, 그렇다면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초콜렛이나 사탕일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면서 혹은 순댓국, 삼겹살, 소주, 스테이크 등등을 먹으면서 책을 읽으면 나중에 그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책의 내용이 기억나...


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오사다와 오가와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다. 지금 사는 곳으로부터 좀 먼 곳. 서로 지망하는 학과도 학교도 달랐지만, 그 두 학교가 도쿄에 있다는 건 공통점이었고, 매일 함께 공부하며 대학 입시를 향해 달려가던 그들은 자연스레 연인이 된다. 우리 첫키스는 잊지 못할 곳에서 하자, 이러면서 도쿄 지도 가지고 와서 여기서 할까 저기서 할까 막 장소 골라보다가, 그런데 도쿄에 가기도 전에 키스를 하게 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맞춤한 짝이라고 생각한다. 너한테는 나여야만 하지, 나한테도 너여야만 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던가. 현실은 언제나 아프게 후려친다. 오가와는 목표한 도쿄의 대학에 가지만 오사다는 가지 못해 재수를 시작한다.  한쪽은 도쿄의 대학생 한쪽은 재수생. 우리의 사랑 천년만년, 같은건 서로의 처지가 달라지는 순간 으스러지고 만다. 그것도 아주 시시하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자 맥이 빠질 정도로 빠르게 오가와에게 차였다. -p.35



오사다와 오가와는 딱히 이성에게 인기있는 타입인 것도 아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춤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나는 네 짝 너는 내 짝 이랬는데, 한 쪽 대학생 되자마자 바로 다른 한 쪽 차이는 부분.. 이것이 인생이다. 디스 이즈 어 시티 라이프!! 아니 시티는 안들어가도 되지만. 그런데 이런 경우 정말 많지 않나. 우리가 함께 고등학생이었다 한 쪽이 대학생 됐을 때, 우리 함께 대학생이었다가 한 쪽이 직장인 됐을때, 다른 환경에 들어가 적응하다 보면 연락은 뜸해지고 그전과 같지 않은 사이가 된다. 한쪽이 신입사원이 되면 회사 내에서 동동 거리고 눈치보기 바쁘단 말이지. 그래서 연락이 뜸해지면 대학생이거나 취준생인 다른 한 쪽은 '화장실 안가? 화장실 갈 때 연락하면 되잖아!' 이렇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서로 서서히 멀어지게 되고, 그럴 때 직장에서 나에게 잘해주는 선배를 만나 자연스레 눈과 눈이 마주치고 마음에 평안을 찾고 기대게 되고, 그렇게, 그렇게...


오가와 역시 대학에 가 만난 선배를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오사다는 믿을 수가 없다. 아니, 말도 안돼. 그게 말이 돼? 어떻게 그래? 우리 둘 사이의 시간은? 우리 둘 사이의 소중한 추억은?



"그 사람에게 우리가 했던 실험 얘기했어?"

"비웃었어. 프루스트 효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가와는 왠지 사랑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 사람이어도 돼? 같이 있으면 즐거워? 그런 사람은 도쿄의 공기가 들어간 병을 받아도 절대 기뻐하지 않을 거야."

"응, 그렇지. 병 이야기도 했는데 배를 끌어안고 폭소했어. 그런 걸 받으면 곧장 재활용 분리수거함으로 직행할 거야, 소름이 다 돋네, 라고 하더라. 동아리의 다른 선배들한테도 퍼뜨려서 지금 내 별명은 유리병이야."

심지어 기쁜 것처럼 들렸다.

"내 얘기도 했어?"

"응. 정말 착한 친구네, 라고 했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바보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p.35-36



좋아한다는 거 뭘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내 믿음을 듣고 그 앞에서 바로 폭소를 터뜨려도, 왜 원망스럽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걸까. 오사다는 오가와의 소중함을 그 소중함으로 받아들이고 함께했는데. 도쿄의 공기를 병에 담아왔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오사다는 오가와의 말과 행동이 소중했는데, 그런 것들, 그저 그 순간뿐이었나. 도쿄에 가서 만난 선배를 좋아하게 된 오가와. 오가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굳이 어떤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오사다는 오가와의 연인이었는데, 그런데 이젠 '착한 친구'가 되어버린.. 토이의 좋은 사람이야 뭐야. 아, 오사다도 역시 도쿄에 가 대학생이 되었다면, 그랬다면 달랐을까? 오가와와 자주 만나고 여전히 연인으로 지낼 수 있었을까? 나는 그건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오사다는 어쨌든 결국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됐을 것이다. 오사다가 뭘해도, 그러니까 내가 뭘 하거나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거다. 그래서 야광토끼도 노래했잖은가.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그리고 오가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건 참을 수 없어. 너도 정말 좋아했지만, 너한테는 그런 사람이 생겨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p.36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웃는 걸로 보이세요?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오사다는 오가와의 말이 너무 어이 없었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 시간들은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갈 것이다. 아직 스무살인데 뭐. 그리고 지금 오가와랑 헤어지면 오가와 보다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날 것이고, 그 남자랑 헤어지면 더 좋은 남자로 업그레이드 될것이다. 그렇게 업그레이드 거듭하다보면 결국 궁극에는 혼자가 있다. 싱글인 내가 있다.



내 얘기하는 거 아니다.



뭐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겠지만, 이 남자랑 헤어져서 슬프다고 저 남자 만나고 그러는 거, 그거 하지 마라.. 오사다는 다른 남자 만나 오가와가 그 선배가 할 것 같은 것을 자기도 하기로 한다. 뭐, 그런 생각 들 수 있지만, 그보다는 연애 이외의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 그것이 그것이 아니구먼.. 하고 저절로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 나처럼 일과 결혼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님)


음..

나는 지금 일하고 있지 않으므로 사적인 글쓰기와 바람 피우는 중인가?




아, 오랜만에 야광토끼 노래 듣노라니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구먼... 동료가 사다 준 소금빵이나 먹어야겠다. 커피랑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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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08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아 저 짤ㅋㅋㅌㅋㅌㅌ 이 글하고 왜 너무 잘 어울렼ㅋㅋㅋㅋㅋ큐ㅠㅠ

다락방 2023-12-08 09:0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컴맹인 제가 이렇게 맞는 짤을 찾아냈습니다. 만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2-08 09:38   좋아요 0 | URL
저거랑 손창민인가 그 사람 그 짤 영구보존 요망 ㅋㅋㅋㅋ

다락방 2023-12-08 09:39   좋아요 0 | URL
그 짤도 너무 좋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짤 잘 못찾는 바보이지만 손창민이랑 이거는 진짜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천재적 짤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08 09:39   좋아요 0 | URL
근데 나 지금 뭐하게?
오늘 지를 책 고르는 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2-08 09:54   좋아요 0 | URL
난 일단 글을 쓰고 질러야지.. 오늘 기대별점 이벤트 쿠폰 2개 주더라!!!

다락방 2023-12-08 10:09   좋아요 0 | URL
님하 일단 글 좀 빨리 써봐요..

잠자냥 2023-12-08 10:10   좋아요 2 | URL
기다려바바... 나 일단 알라딘하고 온라인서점에 뭐 보내야하거든...(진짜 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08 10:1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좀 일찍 출근해서 글을 먼저 썼어야지!!!

잠자냥 2023-12-08 12:22   좋아요 0 | URL
우웅... 그건 좀...

밥 먹고 식후땡으로 읽어. ㅋㅋㅋㅋ

독서괭 2023-12-08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 댓글이 다 잠자냥님이랑 다락방님이었어 ㅋㅋㅋㅋㅋ
저짤 너무 딱이네요 저 타이밍에 ㅋㅋㅋㅋ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여
되게 속상한 일이지만 현실에서 비일비재 한 일이죠.. 그렇다고 저렇게 솔직하게 대답하는 남자 좀 싫네요. 저 남자 왜 좋아했니? 줏대도 없구만. 하긴 스무살엔 줏대가 없죠..

잠자냥 2023-12-08 17:41   좋아요 2 | URL
왜, 뭐, 왜! 내가 사실 다사모야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08 17:54   좋아요 2 | URL
저 남자와 저 관계 너무 시시해져버렸어요. 풋풋하고 특별했는데 말예요. 시시해지는 건 순간이고 그 때가 오면 뭐가 그리 특별했나 싶고 그렇습니다.

독서괭 님, 눈 돌리는 그 어디든 잠자냥 과 다락방 이 있을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2-08 18:05   좋아요 0 | URL
크… 너무 좋네요.

감은빛 2023-12-09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제목 노래 가사였는데,
어느 노래였는지 몰라 검색해봤어요.
조용필이었군요. ㅎㅎ

다락방 2023-12-09 11:13   좋아요 0 | URL
네 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 인가요? 후훗.

달자 2023-12-09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광토끼 뮤슨 노래 들으시나여 소금빵 먹으면서 들으세여

다락방 2023-12-09 11:13   좋아요 1 | URL
페이퍼에 쓴 노래요. 계속 니 생각이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