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
윌리엄 피터 블래티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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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영화배우 '크리스'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열한살 딸아이 '리건'이 이상한 증세를 보인다. 험한 말이나 욕설은 물론이요 갑자기 소변을 보고 라틴어,그리스어, 독일어, 불어 등의 외국어를 말하고 평소와 목소리까지 달라졌다. 이에 크리스는 너무나 걱정이 되어 병원에 데려가 검사하고 그때마다 치료약이나 주사를 받아 아이에게 투약해보지만 아이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진다. 침대가 위아래로 움직이거나 어쩌면 아이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살인사건도 일어난다. 크리스는 이에 정신의학의의며 주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신부 '캐러스'를 찾아간다.


캐러스는 크리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리건을 보고서 역시나 정신의학적 접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이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것은 악마가 빙의했다는 생각을 가진 리건의 엄마, 크리스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이에 아이의 몸에서 악마를 내보내기 위한 엑소시즘을 행하려면 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이 기존의 목소리와 화법 그리고 지금의 화법까지 비교해 충분한 증거를 마련한 뒤 교회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는데 성공하고, 그런 캐러스를 도와 엑소시즘을 진행해 줄 베테랑 신부 '메린'이 리건과 크리스가 사는 집에 도착한다. 크리스는 메린 신부를 보자마자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아이의 몸에 들어간 악마는 아이의 몸을 죽일 생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어린 아이의 신체를 성적으로도 이용하고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아이의 몸을 점점 더 쇠약하게 만들었다. 악마가 나간 뒤 아이의 육체가 회복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까. 그런 아이를 보는 크리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런데, 메린 신부가 도착한 것이다.



"맥닐 부인?" 그늘 속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부드럽고 교양 넘치면서도 성량이 웅장하고 풍부했다.

그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자 크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는 그의 눈을 보고 압도되었다. 지식과 사려 깊은 분별로 형형한 눈에서 그녀에게로 평온이 쇄도해왔다. 따스한 치유의 강물처럼. 그 원천은 그의 내면이었지만 어쩐지 그 너머에서도 비롯된 듯했다. 물줄기는 유장하면서도 저돌적이고 무한했다.

"랭케스터 메린 신부입니다."

한순간 그녀는 얼이 빠져 쳐다보았다. 마르고 금욕적인 얼굴을, 동석凍石을 조각해놓은 듯 반질반질한 광대뼈를. 그러다 황급히 문을 활짝 열었다. -p.432



캐러스는 자신의 신앙,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다.

신은 캐러스의 기도에 응답한 적 없었고 신이 존재한다는, 신이 여기 있다는 표징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어린아이 몸에 들어간 악을 쫓아내기 위해 메린을 도우면서 그는 악마가 자신의 죄책감을 자꾸만 들쑤시는 말을 하는 걸 듣는다. 좀처럼 아이의 몸에서 나갈 생각을 않는 악마 때문에 수면 부족에 육체적으로 지쳐갔던 캐러스는, 악마가 이미 돌아가신 엄마의 목소리로 말을 할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엄마를 혼자두었다는 죄책감이 여전히 그에게 깊게 남아있는데, 악마는 자꾸만 그걸 이용해 건드린다. 그런 참에 이렇게 온화하고 악마랑 대적하는 메린 신부 역시도 신의 존재를,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고 회의를 가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메린은 그런 시간을 거쳤지만 결국 자신이 깨달은 바를 캐러스에게 얘기해준다.



"아, 글쎄…… 결국엔 내가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면, 하느님도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분이 요구하는 사랑은 내 의지에 관한 것이지, 감정으로 느끼는 그런 게 아니었어. 하느님이 요구하는 건, 내가 사랑으로 행하고, 남을 대접하고, 또 나를 몰아낸 사람들조차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네. 물론 지금은 그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위대한 사랑의 실천임을 알고 있지." -p.461



워낙 유명한 영화이니 이 영화의 결말을 얘기하는 것은 굳이 스포일러이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 아이의 몸에서 악마는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악마랑 마지막까지 대적하는 사람은, 이 악마와 이미 구면이며 엑소시즘에 경험이 많았던 메린 신부가 아니라, 엄마를 향한 죄책감과 신을 향한 회의를 가지고 있던 캐러스였다. 그는 혼자 남아 악마에게 울부짖는다. 그 어린 아이의 몸에 있지 말고 차라리 내게로 오라고. 그 후에 캐러스에게 닥쳐온 것은, 내가 처음에 우려했던 것처럼, 죽음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죽음. 


나는 이미 이 책의 결말을 영화를 보아 알고 있었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가 죽지 않기를, 악과 싸워 악만 쫓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캐러스가 결국 악을 아이의 몸에서 내보내고 자기가 끌어안고 죽어가는 걸 보면서, 그러나 그의 인간의 삶이 끝난 것이 슬픔인 것은 아니라는, 그러니까 그의 기준에서 슬픔이진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구원을 받았으니까.


하나님이 요구한 사랑을 실천한 것이 그의 마지막이었으며, 놀랍게도 그가 그토록 바라던 목소리를 그는 두 눈을 감기 전에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짐작하거나 혹은 기대했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는 분명 들었다. 



"에고 테 압솔보(너의 죄를 사하노라) ……" -p.491



놀랍게도 나는 그가 죽기 전 결국 듣게 된 저 말 때문에, 결국은 그가 구원을 받았다는 깨달음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세상에, 누가 읽기 전에 짐작이나 했을까. 엑소시스트를 읽으며 느끼는 것이 무서움보다 더 큰 안도일 수 있다는 것을. 



악은 비겁하다.

메린 신부의 말대로라면 마귀의 목표는 빙의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라고 한다. 


그리고 목표라면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거겠지.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부정하도록.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짐승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거야. 사악하고 부패하고 추악하고 무가치하며 존엄이라고는 없는 존재로 말이지. -p.460



나는 그간 무지와 게으름이 악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으며 거기에 비겁함을 더한다. 나는 이 마귀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거나 드러내기 위해 고작 열한살 아이의 몸을 빌렸다는 게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 그래, 마귀가 최소한의 도리를 지킬 게 무어란 말인가. 또한 열한살 아이는 안되고 스물한살 몸은 된단 말인가? 열한살 아이에게 안되는 거라면 서른한살 몸에게도 안되는 게 맞다. 그렇지만 나는 그래도 고작 열한살 아이의 몸을 빌리고 그 육체를 제멋대로 학대해버린 마귀가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비겁함은 악의 부분집합일 것이며, 악을 이루는 구성요소일 것이다. 게으름과 무지는 악의 원인일 것이고 비겁함은 악의 특징중 하나일 것이다. 악에게, 마귀에게, 그래도 선을 넘지는 말라는 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번이고 말해주고 싶었다. 비겁하다고. 고작 열한살 아이의 몸을 빌어 악을 보이려고 하는 너는 너무나 비겁하다고. 너무 비겁해서 토가 나온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영화를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것이 어린 아이의 몸에 들어간 악마를 쫓아내는 공포 이야기 라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나는, 이것은 한 인간이 구원 받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구원은, 악마를 결국 내보내게 된 그 작은 리건에게도 일어난 일이지만, 무엇보다 죄책감과 신에 대한 한없는 부름을 가졌던 캐러스에게 찾아왔다. 이것은, 구원의 이야기이다. 안도감은, 아이의 몸에서 악마가 빠져나감을 알고 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가 들었던, 그가 너무나 절실하게 찾았던 응답으로부터 받게된 것이기도 하다. 그가 간절히 원하던 것을, 그는 마침내 이루었다.



"어쩌면 악이라는 게 선을 벼리는 도가니 아니겠나. 그리고 자신의 뜻은 아니겠지만, 아무리 사탄이라 해도 어떻게든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네." -p.462


데이미언 캐러스는 조지타운대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찾은 책과 간행물들을 한아름 안고 서둘러 예수회 기숙사 방으로 돌아갔다. 후다닥 짐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서랍을 뒤져 담배부터 찾았다. 오래된 카멜 반 갑이 나왔다. 그는 한 개비에 불을 붙여 깊이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숨을 참으며 리건을 생각했다. 히스테리. 당연히 히스테리여야 했다. 그는 연기를 내뿜은 후 양손 엄지를 벨트에 걸고 그 자세로 책들을 내려다보았다. 외스터라이히의 『빙의』, 헉슬리의 『루됭의 악마들:지크문트 프로이트의 하이즈만 사례에 나타난 착행증』, 매캐슬런드의 『현대의 정신병 관점으로 고찰한 마귀 들림과 초기 기독교 시대의 엑소시즘』. 그리고 프로이트 정신의학 저널들에서 뽑아온 논문들. 「17세기 마귀 들림의 신경증」과 「근대 정신의학에 있어서의 마귀 연구」. - P320

책에 따르면, 빙의가 자발적인데다 영매까지 있을 경우엔 새로운 인격이 유순하기도 하다. 티아처럼, 캐러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여자 유령인 티아는 조각가인 남자에게 씌어 간간이 한 번에 한 시간가량 나타났다. 그러다 조각가의 친구와 절절한 사랑에 빠진 나머지 티아는 영원히 그 안에 있게 해달라고 조각가에게 애원했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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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11-0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화 엑소시스트 좋아해서 다 찾아봤는데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이걸 책으로 읽는다는건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책은 디테일이 강해서 훨 더 무서울 테니까..저 퇴마록 초반 읽다가 숨막혀서 중단한 사람ㅋㅋㅋㅋㅋ)

그런데 다락방님의 글을 읽으니
꼭 읽고싶어집니다. 눈물 흘리신 포인트가 데미무어 주연의 옛날 영화 <세븐 사인>을 떠올리게 하네요. 거기서도 아이를 위해 그녀가 대신 죽거든요. ‘숭고한 희생‘이란 의미에서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듯 합니다.

그나저나 알라딘의 저커버그 잠자냥님이 안보이시네요ㅡㅠ

다락방 2023-11-07 13:48   좋아요 1 | URL
전 이 책 보고나니까 엑소시스트를 다시 보고 싶더라고요. 오래전에 이 영화 봤을 때는 공포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구원에 집중해서 캐러스 신부를 보고 싶어요. 그런데 도저히 영화를 다시 볼 엄두는 안나요 ㅠㅠ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ㅠㅠ

저는 캐러스 신부가 결국 구원을 받았다는 게 진짜 너무 좋더라고요.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서 너무 좋았어요. 단순히 악을 쫓아낸 이야기가 아니라, 간절히 원한 사람의 구원이 일어났다는 사실이요. ㅠㅠ

그러게요. 잠자냥 님이 왜 안보이실까요. ㅠㅠ

잠자냥 2023-11-08 09:28   좋아요 1 | URL
오구오구....

책읽는나무 2023-11-07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댓글이 1위가 아니라 미미 님이 1위 하셨군요? 덤으로 제가 2위로군요.^^
요즘 잠자냥 님이 바쁘신가 봅니다.

무서울 것 같은 책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책이었다니 놀랍습니다.
푹 빠져 읽으셨군요.
이 가을에 말입니다.^^
악을 물리치는 것보다 신에게서 구원을 받는 것! 마귀의 목표는 우리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읽다 보니...
결국 사람의 껍데기보다(생명) 정신이 우선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심오한 책이로군요.^^

다락방 2023-11-07 18:05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우리의 잠자냥 님이 왜 뜸하실까요. 외롭게.. ㅠㅠ

무서웠지만 읽기를 잘한 책이에요. 가지고 있으면서 나중에 한 번쯤 더 읽어보고 싶긴한데 무서워서 책장에 꽂아두기가 좀 꺼려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째야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 책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어요, 책나무 님!!

단발머리 2023-11-0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무서운데ㅠㅠㅠ 찬찬히 읽었어요. 아이의 몸을 빌리려는 악령의 처절함을 따라 읽는데 <거짓의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우리는 서서히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악령은 그런 조건 아래서는 환자의 몸을 떠날 수 없거나 아니면 떠나려 들지 않으리라는 점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 냈다. 하나는 이미 언급된 것으로서, 궁극적으로 환자 자신이 축사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탄은 인간의 몸 안에 있지 않으면 완전히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사탄은 인간의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악을 행할 수 없다. (397쪽)

우아.... 소름......

근데 진짜 잠자냥님 어디 가신거에요? 핸폰 바꾸고 바로 아닌가요? 아.... 궁금합니다......

다락방 2023-11-08 08:41   좋아요 0 | URL
와... 인용문 진짜 너무 딱이고 대박이네요. 저 이 인용문 읽으니까 그래서 그놈의 악이 아이의 몸을 빌린거구만, 싶더라고요. 그 몸을 벗어나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크- 비겁한 악, 무력한 악. 역시 <거짓의 사람들> 사기를 잘했어요. 흠흠.

잠자냥 님 돌아오셨다는 소식입니다!! 일단 본인의 서재에 나타나셨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자 2023-11-07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엑소시스트를 공포영화 그 이상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딱히 없었는데 거기서 이런 후기가 나올 줄이야 캬 역시 다락방님....엑소시스트 심오한 책이였네요

다락방 2023-11-08 08:39   좋아요 0 | URL
처음엔 무서웠지만 끝까지 읽기를 참 잘한 책이었어요. 결국 구원받는 간절한 마음을 보는 것은 제게도 좋더라고요. 영화에도 그 구원이 나오던가 갸웃하여 다시 보고 싶지만, 그건 차마 용기가 안납니다 ㅠㅠ

잠자냥 2023-11-08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구오구 얘들아 나 없어서 심심했니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1-08 09:38   좋아요 3 | URL
무슨 일 있나 걱정했다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