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 중, 나는 《단순한 열정》을 제일 좋아한다. 아주 오래전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나 솔직해서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더랬다. 당시 아니 에르노를 좋다고 말한 친구 덕에 읽게 됐는데, 아니 나는 너무 불편한걸? 했다가, 다시 몇해전 이 책을 재독했다. 그 당시 뜨거운(?)사랑에 빠져있던 나는 어쩐지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고, 그럴 때 다시 읽었던 이 책은 완전 '사랑에 미친' 나에게 맞춤한 책이었던 거다. 나는 아주 즐거이 읽고 리뷰도 썼더랬다.


리뷰는 여기 ☞ 만약 당신이 지금 단단히 사랑에 빠져있다면 (aladin.co.kr)


한참 시간이 흘러 아니 에르노는 노벨문학상을 탔고, 그리고 이 작품, 단순한 열정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는 이 책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섹스에 열정적인 여성이 나오는데, 영화가 책을 충실히 반영했다면 영화 내내 섹스만 할 거 아닌가. 물론 나는 에로틱한 영화를 좋아하고 보고 싶지만,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서로간에 감정이 있고 그래서 성적 긴장 타오르다가 마주하게 될 섹스였지, 그냥 무조건 섹스섹스 아니었고, 그리고 뭔가 요래죠래 이래저래 해서 마주하게 될 섹스였지, 계속 그냥 섹스섹스섹스섹스 인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야한 것도, 에로틱한 것도, 섹스도 좋지만, 그냥 섹스만이 전부인 걸 원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다. 




<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5월호에서는 이 영화를 다룬다. 선생님은 보통 섹스 장면은 지루하다, 재미없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맥락 없는 섹스는 그저 지루하고 내가 보길 원하는 건 그런게 아니다. 게다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섹스만 나온다면 더더욱 보기 싫다. 내가 원하는 야함은 그런게 아니야! 그런 참에 선생님이 이 영화를 소개하시는데, 그 매거진 자체는 재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신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역시나 '아무리 정희진 쌤이 말해도 나는 안본다' 였다. 그런데, 그랬는데,


얼마전에 투비에 어떤 글을 가져다 옮길까 하고 과거 글을 보다가, 내가 영화 <DANCER>를 보고 쓴 글을 다시 읽게 됐다.

러시아의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의 자전 영화였다. 글은 여기 ☞ https://tobe.aladin.co.kr/n/68783



영화 포스터를 가져오기 위해 이 영화를 검색하다가, 나는 이 영화의 주연배우이자 발레리노이기도 한 '세르게이 폴루닌'이 영화 <단순한 열정>의 남자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


네? 

아니, 이 발레리노가 단순한 열정을요?

아니, 저기요, 잠깐만요! 네?

세상에나 네상에나. 이게 뭔일이래여..

나는 이 배우를, 이 발레리노를 보고 싶다. 문신이 아주 많았던 배우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니 세상에, 이 발레리노가 이제 영화를 찍는다고요? 세상에. 나는 그 날 당장 다운 받아서 보기 시작했다. 영화의 처음은 책의 처음과 같았다. 그 남자를 기다리는 일에 대한 나래이션. 그런데, 아, 역시 끝까지 못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다 말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vod 로 보면 이게 문제여. 끝까지 보지를 못해. 아 역시 섹스섹스 그래가지고 못보겠어. 하. 그러니까 내가 섹스 보고싶은건 맞고 좋아하는 건 맞는데 이건 내가 좋아하는 과가 아니네요? 그래도 돈 내고 다운 받아가지고 언젠가 다 보긴 해야겠지만 여하튼 당황스럽다. 그래도 봐야지. 볼게. 볼거다. 아하하하하. 아니, 세르게이 요즘 영화 찍고 있었어요? 왜 나한텐 말 안했어? 당신의 성취를 내게 자랑하시오. 나는 언제나 당신의 성취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낼 것입니다.



지난번에 친애하는 알라디너 ㅈㅈㄴ 님께서 알라딘 앱으로 접속하면 기대평 누르고 적립금 받아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셔가지고 그 뒤로 열심히 그걸 하고 있다. 덕분에 책을 더 많이 사게된 건 함정이지만, 또 덕분에 모르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하는데, 오늘 터치했다가 화들짝 놀란 책은 이것.














19금 딱지 붙어있고, 세 권에 5,670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e북으로 모시고 있는데(응?), 이거 보자마자 너무 … 이 표지 어쩔 ;;

이걸 책장에 꽂아두면 뭔가 스스로 자랑스럽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마음? 물론 내 책장에는 그 뭣이냐 '낯선 살냄새' 같은 거 꽂혀있긴 하지만, 아니 그래도 이거 표지가 넘나 너무 … 그런데 전자책이니 사실 남이 볼 일 없나? 제목도 불온한 마음이래. 아니, 불온이라고? 왜? 왜 불온해? 표지도 제목도 너무나 자극적이다. 세 권이면 저렴한데? 표지 넘나 갖고 있다가 들키기 부끄럽지만, 그런데 전자책이면 뭐 갖고 있어도 알 게 뭐람? 살까? 이게 불온한 마음이라고 하면, 안되는데 막 원하고 이러는 거니까 막 거시기한 긴장 같은거 있을 거 아녀? 이러면서 책소개를 봤단 말야?



식물인간이 된 동생, 그 곁을 묵묵히 지키는 한 여자.

진욱은 눈앞에서 무연히 흩어지는 하얀 연기를 보며 그 여자를 떠올렸다.

‘당신이 얼마나 오만하고 역겨운 인간인지 단 몇 마디 섞은 나조차도 알겠는데.’

오만하고 역겨운 인간. 뻔한 족속.

그 여자가 자신에 대해 내린 판단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했다.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작게 터뜨렸다.

독한 연기가 목 끝에 걸려 짧은 기침을 몇 번 뱉었다.

그 여자의 말은 자꾸만 자신을 찔러댔다.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멍하니 담배를 피울 때라던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누워 술을 마실 때라던가, 혹은 잠들기 직전이라던가.

그러니까- 혼자 있는 모든 순간에 자꾸만 그 여자가 떠올랐다.

위험한데, 생각하는 순간 진욱은 깨달았다.

이 위험이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결코, 거기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라딘 책소개 中



아니, 책소개가 너무 …너무잖아요? 너무 …어, 그러니까, 음, 너무라기 보다는 좀… 허접하잖아요? 전자책 소개는 보통 이런 식인가? 책소개가 왜이렇게 부끄러워;; 흠. 뭐 그렇다는 거다. 



내가 종이책만 사놓고 안읽는게 아니라

전자책도 사두고 안읽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안읽고 쌓아뒀는데

VOD 도 결제해놓고 안보고 폰에 쌓여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OTT 야 아무때고 들어가서 보면 되는거고 정액제인데, 네이버 이용하는 VOD 는 내가 한 편마다 돈 내고 사는 거라고! 그렇게 사두고 안읽은 영화가 하루 이틀 사흘, 이 아니라 한편 두편 …


존윅4 (극장에서 놓쳤으므로 조만간 볼거임)

단순한 열정(재도전할게)

언노운 걸(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킬링 로맨스(재미없어서 보다 껐다)

애프터썬 (너도 기다려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이것도 극장에서 놓쳐서 VOD 뜨자마자 결제했는데 왜 아직 안본것이냐)

탑건:매버릭(나 진짜 어떡하냐)

사랑 후의 두 여자(언제 보죠?)

나일 강의 죽음(이것도 초반에 조금 보다 말았다)

나이트메어 엘리(볼게요, 미안합니다)

주토피아(이건 진짜 사둔지 오만년 된듯. 보다 말았음)



나, 어떡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요가 끝나고 집에 가서 열무김치에 밥 말아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가지고 엄마한테 그랬다.


"엄마, 나는 이 열무김치 하나면 산 속에 들어가서 자연인으로 살기 가능할 것 같아!"


이래가지고 엄마 빵터지셨는데, 저 VOD 다 가지고, 우리 엄마표 열무김치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야겠다. 

여러분,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까지 잠시만 안녕~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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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6-15 11: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부장님 폰에 사생활보호필름 부착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철에서 불온한 마음 막 보여주는 사람들 너무 많아요. (보고 싶지 않아도 보임...제발 붙여!)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이 영화 올라왔군요? 저도 이거 보고싶던데, 왓챠냐 넷플릭스에 안 풀리나...
<언노운 걸> 재밌습니다...... <나이트메어 엘리>도 재밌습니다. 둘 다 다른 재미이지만.

그나저나 열무김치 갖고 산으로 가는 거예요?
잠깐만- 참기름도 챙겨가!

다락방 2023-06-15 12:36   좋아요 1 | URL
저 불온한 마음은 안살거고 안볼거라서 일단 패쓰고요, 문제는 <단순한 열정> 입니다. 이건 반드시 집에 있을 때 혼자 봐야할 영화인 듯 한데 말이죠. 하아- 밤에 보면 잠을 못자고 뒤척일텐데 …
잠자냥 님, 저랑 만나서 같이 볼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사실 열무김치 하나만 딸랑 가지고 가도 되지만, 잠자냥 님의 조언을 받들어 참기름에 고추장까지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흠흠.

잠자냥 2023-06-15 12:47   좋아요 1 | URL
푸하하하 만나서 같이 보자는 말에 진짜 크하하핰 웃었어요.
아니 초면부터 만나서 저런 영화를 보자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루해서 둘 다 코골면서 자는 거 아닐까요? (부장님 글이나 희진쌤 영화 소개 보면 세상 지루한 영화 같음)

다락방 2023-06-15 15:07   좋아요 1 | URL
생각만해도 너무 좋죠? 홀랑 넘어오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6-15 1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 이 글에 섹스가 몇 번 언급되는지 세다가 포기했습니다.
2. “불온한 마음”보다 “낯선 살냄새”가 더 불온해보여요ㅜ
3. 불온한 페이퍼를 덜 불온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이용된 열무김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잠자냥 2023-06-15 12:28   좋아요 1 | URL
1. 다부장 저 인간 요즘 못하는 걸 단어로 쓰면서 해소하는 듯.....ㅋㅋㅋㅋㅋ
초딩들이 길거리나 화장실 벽에 낙서하듯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6-15 12:32   좋아요 0 | URL
무성애자 은오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어 결혼을 재고하다....

다락방 2023-06-15 12:37   좋아요 3 | URL
낯선 살냄새 제목 진짜 어처구니 없죠? ‘크리스티나 로런‘ 이라고 로맨스에로 쓰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자매품, <잘생긴 개자식>도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은근 크리스티나 로런 몇 권 읽은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 대한민국에 낯선 살냄새 읽은 사람 나 하나 일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리고 저 그렇게 섹스 좋아 안해요. 그냥 쓴거지 막 하고 싶고 그런거 아니야. 은오 님, 나 괜춘해.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요. 사실 나도 요즘 무성애자에 가까워요. (매달린다)

호시우행 2023-06-15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한 걸 싫어한다는 말이 오히려 거짓말 아니까 싶어요.ㅎㅎ

다락방 2023-06-15 15:06   좋아요 0 | URL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아니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6-15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혹시 그 ‘50일간의 썸머‘에 제대로 된 로맨스 소설을 쓰려고 산에 들어가시는 거 아니십니까?
내가 제대로 보여주겠다!
야한 듯한데 야하지 않은 로맨스는 이렇게 쓰는 것!
하시면서요.ㅋㅋㅋ
빨리 써주세요.!!!!!

다락방 2023-06-16 09:23   좋아요 1 | URL
제가 책나무 님의 이 댓글을 읽고 ‘중년의 여름 로맨스‘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출근하면서 가만 있자, 베트남에 가서 현지 가이드와 여행객으로 만날까, 회사에서 신입사원과 중견급 직원으로 만날까 설정에 설정을 거듭하면서 … 제가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나올 것이냐, 머릿속에서 나온다면 도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3-06-16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6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따라쟁이 2023-06-16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OD 서비스를 받는 자연인이라... 열무 비빔밥을 먹으며 존윅을 보는 자연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