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가 까를 만들고 까가 빠를 만든다는 말을 다들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안들어봤다면 지금 들어봤을 것이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겐 어떤 묘한 반항심 같은 것들이 내재되어 있어서 이를테면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안읽게 되고 펭수 너무 좋다고 꺅꺅 거리면 반감 생기고.. 뭐 그런게 있지 않나. 초창기에 나는 아이폰에 그런게 너무 심했다. 주변이 다들 애플을 칭찬하는데 멈추지를 않아서 애플 써본 적도 없이 꼴도 보기 싫어지는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나친 빠는 까를 만듭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꺼냈냐면, 제인 오스틴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라면 나는 싫어하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누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한 번도, 한 순간도 제인 오스틴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으으 제인 오스틴 너무 싫어' 라고도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간 읽어온 제인 오스틴의 책은 총 네 권이다. 《오만과 편견》, 《노생거 사원》, 《설득》, 《에마》.
재독한 설득이 그나마 제일 재미있었고 에마.. 로 말하자면 캐릭터 진짜 병맛이라 너무 싫어서 욕 한바가지 페이퍼도 썼던 적이 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네 권이나 읽은 까닭은, 그렇게나 사람들이 좋아하고 고전으로 회자되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게 있나봐, 그게 뭘까? 하다가 네 권에 이르게 된 것. 이런 식으로 내가 알랭 드 보통도 다섯권인가 읽었던 것 같다. 나는 별로인데 사람들 왜 열광하지? 하고 한 권 읽고, 흐음, 모르겠는데, 내가 못찾았나? 이러고 또 한 권, 아니.. 사람들이 본걸 내가 못보나? 이러고 또 한권, 분명 사람들이 좋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텐데? 하면서 또... 그러다가 '나는 모르겠구나~' 하고 어느 시점에 보통 읽기를 중단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사람이 유연하려고 노력해. 세상 고지식하지만 그걸 알기 때문에 유연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성이 참되다. 아무튼, 그래서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라면 네 권 읽고 흐음, 나는 뭐 딱히.. 라는 입장, 나에겐 인상적이지 않은 작가.. 정도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 오스틴에 대해 다룬 영화들을 재미있게 보긴 했다. 이를테면 《제인 오스틴 북클럽》과 《비커밍 제인》같은 것들. 아,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도 재미있다, 여러분...
아, 그리고 이런 입장도 있다. 나는 딱히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제인 오스틴의 소설 혹은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남자사람들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진 입장. 나는 이상하게 제인 오스틴 읽고 좋다는 남자사람들이 좋더라~
아무튼, 이정도가 내가 제인 오스틴에 대해 가진 입장이라고 하겠다. 그런 내 앞에, 격렬한 제인 오스틴 '까'가 나타났으니, 오, 나의 전의 불타올라, 반골기질 튀어나와, 제인 오스틴을 까는 새끼들을 까고 싶어진다!!
오스틴의 사소함을 진부한 태도로 판단한 남성 중 단연 압권은 마크 트웨인일 것이다. 트웨인은 오스틴의 가장 강력한 미국인 옹호자였던 윌리엄 딘 하우얼스에게 편지를 쓸 때 오싄의 이름을 정확하게 쓸 마음도 없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산문은 읽을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의 글처럼'이라고 말하면서 둘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고 덧붙인다. '돈을 받는다면 포의 산문은 읽을 수 있지만 제인의 산문은 그렇지 않다. 제인 오스틴은 조금도 못 참겠다. 그들이 그녀를 자연사하도록 놔두었다는 것이 유감천만이다. D. H. 로런스도 오스틴을 공격하면서 여성 작가를 향한 유사한 적의를 표현했다. 로런스는 오스틴을 '인물 대신 '성격'을 전형화하며, 종합적으로 아는 것 대신 따로따로 날카롭게 아는 노처녀' 라고 비난했고, '내가 느끼기에 오스틴은 매우 불쾌하고 형편없고 인색하고 속물적이라는 의미에서' 영국적이라고 했다. -P.237
위의 문장을 읽는데 아니 이것들이 시방 지금 뭐라는겨?? 막 이런 마음이 되는거다. 놀고들 있네 진짜 ㅋㅋ 아니 그리고 로런스 너 장난하냐? 너는 그럼 고추에다가 이름 붙여서 쓴 소설이 막 자랑스럽고 그러냐?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정원사가 자기 고추에 이름 붙였는데 그게 뭐더라, 존이었나 스미스였나.. 아무튼 여자 성기에도 이름 붙여서 채털리 부인한테 편지 쓰고 그랬는데(내 존이랑 니 제인이랑 만나기를 기다린다, 뭐 이런..) 뭘 ㅋㅋ 채털리 부인의 사랑 자체를 내가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ㅋㅋㅋ 꼬꼬마 이십대 무렵에 재미나게 읽긴 했지만, 아니 어째서 부자 남편은 성적 능력이 없고 정원사는 성적 대마왕.. 인가요? 이거 너무 클리셰 아니냐. 마치 인력거꾼처럼.. 흠흠. 아무튼지간에 마크 트웨인이며 로런스며 글 잘 쓰고 팔릴 만큼 팔린 남자들이 여자 하나 헐뜯는 거 보는데 세상 꼴보기 싫어지는 것이다. 잘 나가는 소설 써서 똑똑한 줄 알았더니 세상을 보는 눈은 없나봐? 여자 작가가 놓인 위치에 대해서는 볼 줄 모르나봐? 이쯤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규방.. 생각이 나는 것이다.
세상은 여자를 부엌이나 규방 속에 가두어 두면서도 그녀의 시야가 좁은 것에 놀란다. 그리고 여자에게서 날개를 잘라놓고 그녀가 날지 못한다고 한탄한다. 만일 여자에게 미래를 열어 준다면 그녀는 결코 현재 속에 갇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제2의 성, 2권], 시몬 드 보부아르, p.776
니네가, 사회가 제인 오스틴한테 어떻게 했는데? 좁은 공간만 허락했잖아!
게다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일곱 살 때부터 열 살 때까지 약 삼 년여 동안 근처의 기숙 학교에 다닌 것이 공식적으로 받은 교육의 전부'(p.366)
가르치지도 않고 바깥 세상을 보지도 않고 그렇게 살면서 써낸 소설이라 그 말이다!! 어디서 까길 까, 돌았어?
사람이 다른 사람 흉 보기는 진짜 쉽다. 그 사람의 뒷배경을 알지도 못한 채로. 사실 이미 작정하고 욕하는 사람들은 뒷배경 따위는 관심도 없겠지만.
'경계'와 '울타리'라는 공간 이미지는 작가들이 제인 오스틴을 받아들일 때마다 확산해나가는 것 같다. 마치 오스틴이 드러내는 바에 대한 그들 자신의 불안을 보여주는 듯하다.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논평은 ('오스틴은 나름대로 훌륭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거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표적이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오스틴의 소설을 '나름대로 완벽하다. 그것은 확실하다. 다만 멀리 나아가지 않을 뿐' 이라고 가볍게 묘사한 것도 마찬가지다. 에머슨이 오스틴의 이야기의 사소함과 하찮은 가정사에 혐오감을 느끼며 '왜 사람들이 오스틴의 소설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P.236
애초에 공간적 제약을 줘놓고 그 공간 안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흉을 보는 거 진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지 않나. 나는 제인 오스틴이니까 저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공간, 한정된 교육 만으로도 이만큼의 소설을 쓰는 건, 제인 오스틴이니까 가능했다. 나였다면? 글쎄. 나는 결코 저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저 때의 제인 오스틴보다 더 넓은 공간이 허락되어 있고 더 많은 교육도 내가 원한다면 받을 수 있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갈 수도 있음에도 오스틴만큼 쓰지 못하지만, 저렇게 주어진 조건이 협소한데 저만큼의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은 오스틴이 얼마나 자기 내면에서 치열하게 사유하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지 않나. 헤르만 헤세 식으로 표현하면 완전 철저한 나르치스 .. 쪽이 아닐까. 나로 말하자면, 나르치스의 경향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골드문트 과인데, 그러니까 나는 경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기 멀리에 내가 보지 못한 다른 게 있대, 라고 하면 그걸 보고 싶어지고, 이 책 안에 내가 몰랐던 다른 이야기가 있어, 라고 해서 또 그게 읽고 싶어진단 말이다. 다른 무엇이 더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가만 여기에 머물러있는 것이 나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고 일단 무조건 내가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제 타미가 구의 증명을 읽었고(제엄마에게 사달라고 했단다), 별로 라고 내게 감상을 보내왔다. 이모 사람들이 좋다고 했는데 나는 별로였어, 라고 하길래 이모도 별로였다고 말해준 뒤,
"그런데 안읽었으면 내내 궁금햇을 거 아냐, 읽고 싶어 했잖아"
라고 했더니 타미는 '하긴 그래' 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나쁘다 좋다 라는 것을 내 경험으로 알고 싶다. 다른 사람의 말로 알고 싶지는 않다. 그건 내가 아는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먹고(응?) 그래서 가고, 그래서 읽는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거나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진.. 않다. 나는 그냥 나인것 같고, 아무튼 제인 오스틴은 나르치스 과인것 같고, 나르치스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험담이나 하는 숱한 잘난 남자작가들 앞에 두 팔 벌리고 서서 힘껏 오스틴의 변호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스틴의 까들이 한순간 나를 오스틴의 빠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니네, 오스틴에게 공간과 교육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름 떨치고 사는줄이나 알아라. 같은 조건에서 오스틴보다 잘날 가능성도 적으면서 말이 많아.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