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신당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때문에 처참한 기분이었다.
'신당역 살인 사건' 피해자 동생 "서울교통공사도 언니 죽였다" (daum.net)
[단독] 3년이나 시달린 스토킹…선고일 하루 전 숨진 피해자 | JTBC 뉴스
3년이나 스토킹에 시달리느라 피해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직장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어디에 말할 곳도 없어 내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했을까. 살인자는 3년간 피해자를 스토킹했고 '불법촬영물을 공개하지 않을테니 몇분에 한번씩 문자에 답장해달라'고 했단다. 그가 되고 싶었던 건 자신이 관심을 가진 여자로부터 답장을 받는 남자 였고, 그것이 되지 못하자 곧 범죄를 저지르게 된것인데, 자신이 거부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거절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식으로라도 답장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는게 너무나 끔찍하다. 스토킹은 이런 심리로 작동한다. 마침, 정희진 쌤의 이번 책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스타에 대한 팬의 마음은 여러 가지다. 그냥 좋음, 존경, 선망, 소유욕, 반사회적인 짝사랑……. 이 가운데 스타를 숭배함으로써 자기 인생의 스트레스와 낙오자 심리에서 도피하려는 부류가 가장 위험하다. 정치인 팬덤이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정치인 팬덤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문제의 발로인 데다, 사회를 망치기 때문이다. 중간 지대가 사라진다.-p.131
'나는 너와 네가 원하는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다'는 말이 상대의 귀에는 전혀 가닿지 않았던 경험은 나에게도 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이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나의 그 말은 상대에게 닿지 못했는데, 나의 말은 들어주지 않으면서 상대는 그러나 '나는 너랑 계속 관계를 갖고 싶어'라고 부르짖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그 자신에게 폭력으로 인지되는게 아니라 안타까움이었고, 왜 나를 받아들이지 않지? 였다. 그가 내내 신경쓰고 중심에 두는 건 '너를 이렇게 원하는 나' 였지, 상대도 상대의 감정도 아니었다. 나는 스토킹이야말로 이기적이며 무지한 자의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곧 악과 연결된다고 역시 생각한다. 상대의 감정을 파악할 줄 모르는 무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게으름, 듣고 싶지 않은 그 퇴보. 결국 폭력을 행함으로써 자신을 보게 한다면, 그것으로 되는걸까?
결국 상대가 어쩔수없이 봐준다해도, 문자에 답장을 해준다 해도, 그렇다 해도 가해자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징징대고 애걸하고 열등감에 휩싸인 그 자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 가해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강제적으로 상대가 봐준다고 해서 갑자기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열등한 자신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꿔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무지는 죄이며 악이다. 게으름은 무지로 이어지고 그 무지는 악으로 실행된다. 무지는 죄이고 악이다. 어리석음은 악의 다른 이름이다.
여자를 죽일 때는 이 나라의 남자들이 자기 자리에서 다같이 돕는다는 생각을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발전주의 세계관에서는 그 어떤 사회적 약자도, 사회 정의도 "나중에"다. - P45
공부를 하지 않으면 보수적, 방어적이 되고 역사를 후퇴시킨다. - P47
가부장제 사회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성이 언어를 갖는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위치에서 말하는 것을 ‘질색한다‘. 여성의 언어가 남성의 기득권을 빼앗고 그들의 특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대개 못 알아듣는 경우다. - P48
남성은 남성의 언어만 알지만, 여성은 남성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남성의 언어와 여성 입장에서의 언어를 모두 구사해야 한다. 여성들이 이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개의 영화들은 여성에게서 언어를 뺏거나, 말하는 여성을 죽이거나, 남성의 언어를 대신 말하게 한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2002년)를 누가 ‘나쁜 영화‘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그 영화의 주인공 ‘할머니‘는 이름도, 말도 없다. - P49
사회적 약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인구의 많고 적으미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인한 가시화 여부이기 때문이다. 미국 흑인의 현실을 유련한 언어로 서술한 작가 타네히시 코츠는 《세상과 나 사이》(2015년)에서 맬컴 엑스의 말을 인용한다. "당신이 흑인이라면, 감옥에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흑인이 감옥에 가기 쉽다는 얘기가 아니라, 흑인의 몸은 흑인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 P97
"당신(백인)은 나(흑인, 여성을 비롯한 피억압자)를 보지 않아도 됐지만, 난 당신을 봐야 했다. 당신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내가 더 당신을 잘 안다." 인종 모순과 젠더 모순의 공통점은 지배자의 무지다. 지배자들은 세계와 인간에 대해 무지하다. - P107
흑인도, 여성도 내부에 같은 인간은 없다. - P108
상상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자의 위치가 달라짐에 따라 어떤 대상 혹은 세계가 다르게 보이는 경험이 주는 자원, 이것이 상상력이다. - P113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므로 지구와 달리 우울증 환자가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우주가 배경인 <그래비티>에서 우울증 환자는 지구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무중력이지만 첨단 장비가 그와 우주를 연결해주니 발버둥 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하다. 지구에서 이 연결은 사람과 사랑이지만 구하기 쉽지 않은 끈이다. - P120
우리가 우울할 때 혹은 우울증을 앓는 환자(정말 죽을 만큼 아프다는 의미에서 ‘환자‘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모두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집에서, 침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일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동과 운동만큼 효과적인 것은 업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다른데,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 P121
스타에 대한 팬의 마음은 여러 가지다. 그냥 좋음, 존경, 선망, 소유욕, 반사회적인 짝사랑……. 이 가운데 스타를 숭배함으로써 자기 인생의 스트레스와 낙오자 심리에서 도피하려는 부류가 가장 위험하다. 정치인 팬덤이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정치인 팬덤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문제의 발로인 데다, 사회를 망치기 때문이다. 중간 지대가 사라진다. - P131
한국 여성들은 출산이라는 성역할을 거부함으로써(출산 파업), 기후 위기와 식량 문제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사 영역에 걸친 여성의 이중 노동, ‘독박 육아‘, 강제적 모성을 강요해 왔던 가부장제 사회 자신의 부메랑이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방법-전쟁과 같은 남성 문화-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인구를 조절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되었다. - P169
정상 국가는 건강한 비장애인 남성의 몸으로 재현되지만, 실제 정상 국가는 외적과 투쟁을 거쳐 쟁취한 공동체이므로 부상당한 몸이 정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이용사(傷痍勇士)‘나 장애인의 몸이 정상 국가를 상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국가는 거의 없다. - P205
가부장제와 이성애는 쌍생(雙生)한다. 남자가 ‘출세‘하면 여자가 따르고 남자들은 그에게 아부하지만, 여자가 ‘성공‘하면 남자는 떠나고 여자들은 그를 시기한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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