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랑 세계문학의 숲 32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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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의 청년 조지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싱글이다. 변변한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직장 내에서도 딱히 친한 동료가 없으며 퇴근 후에도 만나는 친구가 있다거나 하진 않는다. 게다가 외모도 별볼일 없고 키도 작다. 그런 그가 카페의 여급 '나오미'를 알게 된다. 15세 소녀인 나오미는 카페 여급으로 일해야 할 정도로 집이 부유하지 않았고 배움도 짧았다. 그는 나오미가 예쁘게 자랄 것을 알아보았고 기대했고 그래서 자신이 잘만 서포트 해주면 하이칼라 예쁜 여성이 될거라 생각해서 그녀를 자신의 아내 삼을 생각을 한다. 조지는 나오미에게 이런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나오미도 좋다하고 나오미의 가족도 오케이해서 조지는 나오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나오미가 열다섯살 일때부터 둘이 함께 동거를 시작한다. 성관계를 바로 한 건 아니지만 그 때부터 나오미의 목욕은 조지가 시켜준다. 그리고 2년후였나 같이 자고. 후.. 나오미에게 선생님을 붙여 영어도 가르친다. 나오미는 조지의 아내가 되었고 조지와 함께 자고 조지의 집에서 먹고 산다. 그러니까 조지가 없었다면 나오미는 교육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며 노동하지 않는한 먹고 사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오미는 조지가 바란대로 지적인 여성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육체적 아름다움만큼 대단한 여성이 되어서 트로피 아내를 간절히 원했던 조지의 기대를 충족시켜준다. 내가 나오미를 데리고 외출하면 다들 나를 부러워하겠지? 그러나 나오미는 자라면서 조지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는 조지에게 무조건 요구하고 조지는 결국 고향에 계신 (무조건 자신을 믿고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어머님께 돈을 달라고 하기에 이른다. 나오미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성적으로도 문란해진다. 조지외에도 여러 남자들과 잔다. 어린 시절에는 '나가' 라는 것이 나오미에게 협박이 되었지만 이제는 '나가' 라고 하면 '나갈게!'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는 나오미가 되었다. 문란한 나오미, 사치스런 나오미가 싫지만, 그런 나오미가 다시 나타나 맨 살을 힐끗 보여주면 또 부르르 떨면서 조지는 그 육체를 원하게 되고 그 앞에 무릎 끓고 우리 다시 부부가 되자고 애원하게 된다.



이게 이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이 책의 뒷면에는 여러 매체의 추천사가 실려있는데 그 중 <타임스>지는 이 책에 대해 '여성에게 굴복하며 기쁨을 얻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성(性)과 결혼 문제를 이야기한 '동양의 D.H. 로런스' 라고 했더라. 이 책의 저자인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탐미주의 소설가로 알려져있고, 이 책 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표현한다고도 한다. 그래, 다 알겠고, 다 틀리지 않다. 28세 직장인 남성 조지와 15세 가난한 소녀 나오미의 관계가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권력이 조지에게 있었고, 그래서 조지는 나오미를 협박할 수 있는 위치에도 있었다. 그러나 소녀 나오미가 성인 여성이 되어 육체적 아름다움을 갖게 되자, 조지는 엎드린 자세로 그녀를 말태우듯 태우게 해달라고 애원해야 하고 다른 남자들과의 성관계로 괴로워하면서도 그녀를 원하는등, 그 관계에서 '괴로워하면서도' 그녀와 헤어지지 않으려 하며, 상대적 약자의 입장이 된다. 권력은 어느 순간 나오미에게로 이동한다. 성적 매력이 가득한 나오미는 다른 남성들에게 언제든 이동할 수 있고 이제는 조지가 어떤 식으로든 붙잡기가 틀려버린 것이다. 조지의 약자화는 누가 부여한 것이 아닌 스스로 부여한 것이다. 나오미의 맨발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것을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조지는 나오미 앞에 약자가 되지 않았을텐데, 약자가 되면서도 이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걸 인지하면서도 그 자리에 있고자 하는 그의 약자성은, 그의 다소간의 이상 성욕으로 인한 그 스스로가 부여한 약자성인 거다. 그 둘의 관계에서 어느 순간 권력은 나오미에게 생겼지만, 그러나 그 권력을 나오미에게 준 것은 세상이 아니라 조지인 것이다. 그 육체에 돌아버리는 조지. 여성의 육체에 대해 예찬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이 소설은 그러니 이 책의 뒷면에 실린 추천사들대로 피학적인 관계성을 말하거나 성과 결혼에 대해 얘기한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 틀리지 않다는 거다. 그래, 알겠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처음 읽는 순간부터 책장을 덮을 때까지, 이 책은 내게 '한없이 찌질한 남자의 자기 열등감 극복 실패기'로 읽힌다. 자, 보자.



이 책은 1925년에 일본에서 발표되었다.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1925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이 소설을 탐미 어쩌고와 굴복 기쁨..이라는 평이 나오게 했을테지만, 나는 이 소설을 필연적으로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연결지을 수밖에 없었다. 읽으면서 내내 롤리타 생각이 났다. 게다가 롤리타와 흐름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롤리타가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보코프는 잊을만하면 '미성년자의 성착취는 어른의 보호가 없을 때 일어난다'는 것을 언급하기 때문이며, '그런 성착취가 없었다면 그 미성년자에게 완전히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 있었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조지는 사회적인 관계가 거의 전멸한 성인 남성이었다. 외모에도 자신이 없었고 친구도 없었고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해 월급을 받고 있지만 딱히 교류하는 인간이 없으니 돈도 차곡차곡 잘도 모았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하고 싶어지고 마땅한 상대를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 대상은 지독히 자연스럽게도


1. 나이가 훨씬 어렸고(심지어 15세)

2. 가난했고

3. 배움이 짧았고

4. 돌봐주는 어른이 없었다.


위의 네가지는 롤리타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돌봐주는 어른이 없을 때, 그 아이는 착취의 가장 우선순위가 된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조지는 제가 원한대로 나오미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 목욕을 시켜가면서 밥도 먹이고 공부를 하게 해주고 그리고 섹스를 한다. 물론 '내가 나오미를 잘 키워서 내 신부로 삼고자 한다' 라고 했을 때, 나오미도 그리고 나오미의 가족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오미에게 이 일은 구원처럼 느껴진다. 나오미가 조지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조지가 '나가!'라고 하면 나오미는 잘못했다고 빌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집을 나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은 다시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다가 성을 파는 일을 하게될지도 모르고 배움도 없을 것이며, 먹고 사는 일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모든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지는 그녀를 어린 신부로 삼을 수 있었고, 그런 모든걸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가!'를 협박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거다. 조지가 정상적인, 보통의, 건강한 성인 남성이었다면, '굳이' 어린 여자에게 '굳이' 돌봐주는 어른이 없는' 애에게 구애를 할 필요가 없다. 조지가 자신의 '잘남', 자신도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룸'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예쁜 하이칼라 여성'이 필요했는데, 지금 현재 자신의 상태로는 예쁜 하이칼라 성인 여성에게 말도 붙일 수가 없는거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예쁜 하이칼라 성인 여성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가난하고 배움이 짧고 돌봐주는 어른이 없는 어린 여성이었던 거다. 



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정말 너무 찌질하고, 치졸하고, 열등감으로 들어찬 남성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어른이라고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소름이 끼친다. 단순히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여학생에게 접근하는 성인 남성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숱하게 기사들을 보게 되는가. 1925년에 소설속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2022년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는 일인거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 성인 남자가 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성인여성에게 매력을 어필해가며 애를 쓰고 마음을 얻는 과정을 거치는게 아니라, 가장 약자인 상태의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와야만 가능해지는 거다. 나도 '결혼했고', '아내가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서 그는 동년배의 여성에게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게 아니라, 그러지 않아도 이미 가능해지는, '내게 이미 있는 자원(돈, 사회적 위치, 나이)'으로 충분히 조종할 수 있는 약자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 찌질한 조지가 꿈꾸는 미래라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나오미를 트로피처럼 옆에 대동하고 세상을 활보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쑥쑥 자란 나오미가 조지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은 조지의 열등감 극복 '실패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가 애초에 보통의, 건강한, 상식적인 성인 남성이었다면, 물론 애초부터 이 관계가 시작되지 않았겠지만, 이 관계가 진행됨에 있어서도 이제 자란 나오미에게 속절없이 끌려가지 않을 수 잇었을 것이다. 나를 버리지 말라고, 지금처럼 다른 남자들을 만나도 괜찮다고, 이제 어른이 된 여성에게 굴복하는 찌질함, 그 찌질함을 결코 조지는 버릴 수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것이다. 조지가 힘을 가지고 그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을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상대가 자신보다 아주아주 약자일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대가 약자였을 경우에만 그녀의 육체를 탐할 수도 있고 협박이 먹힐 수도 있다. 상대가 이제 조금이라도 자원을 갖는 순간, 조지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세상 머저리 등신 쪼다 개멍충이 똥멍충이 조지로 돌아온다. 그의 열등감은 극복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자신을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거나 성장시켜서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고를 하지 못한채, 그저 가진 것으로 어떻게든 해보고자 한다. 그러니 될 리가 없다. 가진 자원이 내내 그대로 일 수는 없다. 이미 가진 자원은 언제고 바닥나기 마련이고, 그런 상태로 자신의 열등감 그리고 찌질함을 인지하고 있으면서 도대체 어떤 관계를 펼쳐나갈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다른 어린 여성을 찾는것? 그러기엔 고향 집 어머니 재산까지 다 털어버렸다. 이제 그는 개털이고 쓰레기이며 발전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는 세상 쓸모없는 성인 남성이 되어있다. 그는 그대로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조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년배에게 접근할만큼 자신을 당당하게 만들거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의지가 전혀 없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필히 멸망할 것이다. 찌질함과 열등감을 가지고 나보다 상대적으로 약자를 찾아 힘을 쓰려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필히 멸망할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나에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읽혔다.

탐미? 사디즘? 마조히즘? 후훗. 아니야.

찌질한 놈이 열등감 극복에 실패해 필히 멸망하는 이야기.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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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9-13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없이 찌질한 남자의 자기 열등감 극복 실패기‘ 이 책의 에센스네요. ㅎㅎㅎ
그러고 보면 정말 말씀하신 것처럼 <롤리타>가 너무 잘 쓴 작품이긴 해요....

다락방 2022-09-13 11:21   좋아요 2 | URL
제가 조지한테 ‘병신‘이라고 하고 싶은데 이걸 다른 어떤 욕으로 대체할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욕을 이것저것 다 섞어야 했어요. 너무 찌질하고 멍청하고 열등감 덩어리에 모자란 놈이에요. 어휴..

롤리타는 너무 잘 쓴 작품인데 저는 평론가들이 그걸 ‘진정한 사랑‘이라고 운운하면서 똥칠한 것 같아요. -.-

잠자냥 2022-09-13 17:15   좋아요 0 | URL
아 그게 조지였군요. 머저리로는 약하네요. 약해….

다락방 2022-09-13 17:20   좋아요 0 | URL
네, 한참 약하죠. 그런데 다른 적절한 욕을 찾을 수가 없네요 ㅠㅠ

공쟝쟝 2022-09-13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열등감.............. 와.. 열등감 없는 인간이 어딨겠나, 그런데 남자들의 열등감은 왜 더 낮은 여자의 성착취로 이어지는 가. 그것의 변화가 왜 굴복의 기쁨이 되는가. 결국 내면의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사람이 추해지는 군요. 그렇다면 오늘 제가 본 기사와도 일맥상통하네요. 꿈꾸는 다락방 이지성 이승만 찬양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우파의 길을 갈 것 ㅋㅋㅋㅋㅋ 자수성가한 독서가는 강남 좌파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으로 돌아버린 것인...

단발머리 2022-09-13 11:50   좋아요 1 | URL
와... 진짜 왜 책이름이 ‘꿈꾸는 다락방‘일까요? 우리한테 소중한 이름이잖아요, 다락방....
영원히 놓치고 싶지 않은 이름인데... 하필.... 와, 진짜 열받네요!!!

다락방 2022-09-13 12:01   좋아요 1 | URL
책 읽는다고 다 훌륭한 사람 되는 것도 아니고 같은 책을 읽어도 역시 감상은 다양하게 뻗어가는 것인데, 그렇다는 걸 잊고 살다가 이렇게 또 각성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저 어제 정희진 쌤 책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읽는데 거기에 그런 구절 나오더라고요. 영화 전체가 아니라 어떤 한 장면이 나한테 꽂히고, 그게 나를 말해주는 거라고요. 아마도 이지성이 그동안 읽은 책에서(그런데 정말 많이 읽긴 한걸까요?) 발견한 건, 그게 뭐가 됐든 우리가 본 것과는 다른것인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수성가한 독서가... 뭔가 앞뒤가 안맞는 것 같지만 그를 지칭하는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네요. 뭔가, 싫다... 자수성가한 독서가.... 징그럽네요.

이지성은 꿈꾸는 다락방을 썼고 다락방은 이지성을 싫어하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9-13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비대칭적‘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안 나오고요.
쟝쟝님 말대로 열등감 없는 사람, 성격적 결함 없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근데 그거를 이런 식으로 ‘메꿔‘ 나간다는 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화가 나네요. 세 줄 읽고 작가 이름 다시 봤거든요. 다니자키 준이치로네요. 이런순.

그나저나, 욕하기 위해서라도 <롤리타> 읽어야하는데... 저에게는 큰 숙제인 것으로서. 가능할까요, 롤리타 읽기요?

다락방 2022-09-13 12:06   좋아요 1 | URL
대부분의 열등감 극복은 나를 높임으로써 시도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낮춤으로써 시도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상대란 내가 낮춘다고 낮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건 필히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소설 속에서도 어린 소녀는 자라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물론 그녀가 가진 권력이라봤자 조지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육체적 매력이 전부였고, 그것은 사실 권력이랄 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단발머리 님 말씀대로 가장 약해져있는 상대에게 먹힐 수 있는 것들을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거, 그게 너무 화가 나고, 그들이 가진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거 그게 빡이 칩니다...


저는 아주아주 꼬꼬마때 롤리타 읽고서는 제대로 기억도 못하다가 몇년전에 다시 읽은건데요, 제가 들어왔던 그래서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정말 충격이었어요. 저는 그 책을 읽은 평론가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요, 평론가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책을 써낸 나보코프에게도 잘못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는 받아들이고 싶은대로 받아들일테고 보고싶은 것만 보는데, 보고싶은 것만 보는 자들이 롤리타 컴플렉스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그 점이 나보코프의 치명적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ㅠㅠ

mini74 2022-09-13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기보단 트로피를 드는게 더 쉽다고 착각하는걸까요. 지금도 보면 띠동갑를 두세바퀴 도는걸 능력이라 포장하죠. 부러워하고 ㅠㅠ 넘 싫어요.

다락방 2022-09-13 12:35   좋아요 2 | URL
맞아요, 띠동갑에 나이차이 많이 나면 날수록 그것이 남자의 능력을 증명하는게 되잖아요. 너무 싫고 징그럽고 끔찍해요 ㅠㅠ

건수하 2022-09-13 16: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말태우듯 태워달라고 애원...
여기서부터 바로 롤리타랑 연결했어요.
저 내용에 어디 탐미적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건지...

한편으로는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도 그게 정말 사랑인가... 전 좀 혼란스럽더라고요.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의 어린 백인 여성에 대한 욕망, 가족들이 밀어붙이는 관계, 그러나 둘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랑...

다락방 2022-09-13 17:03   좋아요 3 | URL
남자가 엎드리고 여자가 그 위에 타는 걸 열다섯살 때 데려와서부터 했고 그래서 자라서도 그걸 (남자가)하고 싶어해요. 15살짜리를 아내 삼겠다고 데려와서 목욕시켜주는 것도 정말 토할것 같잖아요. 저는 롤리타도 그렇고 이 소설도 그렇고 이걸 읽고난 후의 남자 평론가들이 자신의 잣대로 평가를 하고 그리고 그 후에 독서가들은 비평가들의 평대로 그걸 읽어가기 때문에 작품의 의도는 고정되거나 잘못된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강하게 합니다. 탐미적이라는 것은 그녀의 육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가 자꾸 묘사하며 반하기 때문에, 또 다른 남자 등장인물들도 그녀의 육체에 반하기 때문에 표현된 것 같은데요, 열다섯살짜리 데려와서 그녀의 육체적 매력에 굴복한다.. 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중심일까 하면, 저는 그렇게 읽게 되질 않는거죠.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뒤라스에 대해서도 되게 복잡한 감정이고요. 여튼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닙니다.

2022-09-16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6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