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토요일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그 친구와 나는 그 친구의 생일을 음력으로 보내는 바람에 올해 생일이 하루 차이였다. 친구는 내게 알라딘 상품권을 선물로 주었고, 나는 거기에 두 배로 알라딘 상품권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나는 내가 받은 생일선물 책탑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이것봐, 이런 책들을 받았고 또 상품권으로 이런 책들을 샀어. 너는 상품권으로 무슨 책을 샀니, 물으니 친구는 아직 구매 전이며 파친코와 킨포크와 다른 것들을 좀 더 담았다고 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던 즈음, 우리의 약속 시간은 2주를 좀 넘게 남겨두고 있었고, 나는 친구에게 "나 만나기 전까지 파친고 1,2권 다 읽고 와!" 했다. 친구는 알겠다고 했고, 나의 책탑 사진들 속에서 나 역시도 두 권을 읽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지정해준 책 두 권이 세피아빛 초상과 이 책이었다.
친구는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 편이라서 파친코1,2권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책탑들 속에 정희진 쌤 신간이 있었던 바, 내심 그 두권을 골라주길 바랐다. 처음부터 한국어로 써진 책은 읽기가 편하고 게다가 분량도 얇아서. 그러나 친구가 고른 책은 읽기에 쉬워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나는 바빴다. 여성주의 책도 다 읽어야 했고, 원서도 읽어야 했고... 그것들을 다 해치우고!! 세피아빛 초상을 시작했고 그걸 어제 다 읽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 《불꽃으로 살다》를 시작한 것. 그림들이 중간중간 있으니 빠른 시간안에 읽겠지 했지만 글자 너무 작은 부분... 아, 나의 노안이여, 그리고 이 글자들의 빽빽함이여.. 어쨌든 오늘 아침 이걸 읽기 시작했는데, 오, 저자가 너무 눈에 띈다.
케이트 브라이언 이라는 작가인데 '젊은 예술가들의 멘토'로 불리다는 거다.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서 혹은 미술사학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그림을 전공하지는 않아도 되는건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어쨌든 이 젊어 보이는 작가가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에 흥미를 갖고 자신이 전하고 싶은 바가 있어 이 책을 써냈다는 거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살다가 지금에 이르렀는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많이 궁금하다. 그래서 간혹 묻곤 한다. 넌 어떤 생각들을 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니. 며칠전 함께 식사했던 거래처 분은 그냥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흘렀노라 얘기했다. 취직이 잘 될것 같아서 이 학과를 들어갔고, 이 학과에서는 자연스레 이쪽으로 가는게 돈을 잘 번다고 해서 그냥 왔고, 그러다보니 여기에서 이러고 있다, 는 식이었다. 그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마도 아주 어릴 때부터 취미와 직업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꿈과 직업이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취업하면서는 그냥 돈을 벌기 위해 다녔다. 만약 나에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취미가 없었다면 내 삶은 아주 우울했을 것 같다.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다가 퇴근하고 그게 전부였을테니. 그러나 나는 돈 버는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을라치면 어김없이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여러개 마련되어 있었다. 책읽기와 글 쓰기가 그것이고, 그리고 이제는 거기에 여행이라든가 걷기 라든가 요가라든가 치아바타 굽기라든가 하는 것들을 더해나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내게 삶은 점점더 견디기 쉬워지는 것이 되며 사실은 아주 자주 즐기는 것이 되곤 했다. 내가 결정해 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고 내게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젊은 예술가들의 멘토'로 불리는 일은 어떤가. 너무 특별하지 않은가. 나는 케이트 브라이언이 홍콩에 가서 공부한 것도 신기하고(어떻게 홍콩에 가서 공부할 생각을 했어요? 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어떻게 현대 미술 전시라는 것을 일로 삼게 되었을지 너무 궁금한거다. 이 책의 표지 사진으로는 아주 젊어 보이는데, 실제 나이는 몇 살일까? 나는 구글에 그녀의 이름을 넣어 보았다.
아아... 그녀는 1982년 3월 11일 생이었다. 이제 마흔. 와 젊구나. 젊은데 젊은 예술가들의 멘토로 불리고 또 무슨 심사위원에다가 뭔 위원장에다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대단하다. 게다가 이 젊은 나이에 쓴 책이 번역되어 싸우스 코리아에서도 팔리고 읽히고 있다. 너무 대단하지 않은가. 왜 내 책은 번역이 안되나요. 지금부터 인생에 목표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까? 번역될 수 있는 책을 쓸 것.....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소개를 꼭 읽는 편인데 그러다보면 참 신기해서 어쩌다 이런 삶을 결정해 여기까지 온걸까, 를 생각하게 하는 저자들이 있다. 사실 작가 소개가 한 일이라기 보다는 책 전체가 한 일이지만, 특히나 '엘린 켈지'가 그랬다.
알라딘에 실린 저자 소개를 보면 엘린 켈지는 생물학자, 환경운동가, 작가 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고래를 관찰하고 고래에 대해서 알려주는데, 인상적이었던 건 그녀가 고래를 관찰하기 위한 항해에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는 거다. 굉장히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아이가 둘이었던 것 같다. 고래를 관찰하기 위한 항해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아이들은 어리고, 그래서 아마도 그런 선택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고래를 관찰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에 대해 그 당시에도 궁금해했던 그런 기억이 난다. 태어나서 어떤 것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쳐서 결국 그녀는 이렇게 책을 써내는 생물학자 이자 환경운동가가 된것일까?
엘린 켈지의 삶은 말 그대로 고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었고 그리고 고래의 삶을 모르는 인간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엘린 켈지 덕에 우리는 더 알 수 있었을 것이고 더 자연에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선택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지만 그것은 대부분 먹고 사는 것에 중점을 둔 게 아니었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정신에 나는 다가가야 하지 않는가, 그런 삶을 추구해야 하는건 아닐까? 케이트 브라이언은 이거봐, 여기 젊은 예술가들이 불꽃처럼 살다갔지, 알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의 의의도 알려주려고 하는데, 나는? 엘린 켈지는 너네 고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우리는 이런걸 알아야 해, 하는데, 나는?
아마도 어린시절 고래를 관찰하기 위한 배에 함께 탔던 아이들은 나보다 더 고래, 바다, 배에 가까운 삶을 살았을 터. 그 아이들의 미래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훗날 그 아이들에게(아마 지금쯤 성인이겠지만) 어떻게 하다 너의 삶은 이만큼 흘러왔니, 라고 물으면 그들은 어떤 답을 할까?
이런거 너무 궁금하지 않나요...
작가소개 보다가 너무 신기해, 짱이야! 했던 경우는, 재차 언급했지만, 아웃랜더 시리즈의 다이애너 개벌든이다. 이 작가, 동물학, 해양생물학, 생태학 다 공부해서 아웃랜더, 호박 속의 잠자리에 마음껏 써먹는다. 저 책들은 로맨스로 분류되고 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어떤 삶을 살았길래 둥물학과 해양생물학과 생태학 다 공부했나요. 결국 인간도 사랑했기에 로맨스도 써냈는가...
그런데 왜 번역본 검색 안되죠? 무슨일? (원서 안살겁니다, 안살겁니다..)
뭐니뭐니해도 작가 소개 보다가 제일 부러웠던 건 리 차일드.. 님이 짱먹으셈!
여가 시간에는 독서, 음악 감상, 스포츠 경기 관람 등을 즐긴다는 리 차일드는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와 프랑스 남부의 시골 저택, 그리고 이 두 곳을 오가는 항공기 좌석을 집으로 여기며 활발히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책날개 작가소개中)
나도 뉴욕 맨해튼에 집 있고 프랑스 남부의 시골 저택에 집 있어가지고 항공기 좌석을 집으로 여기면서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집필 활동 계속 하고 싶다. 케이트 브라이언의 삶이 궁금하고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어요? 묻고 싶다면 리 차일드의 삶은, '나도...'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도 서울에 아파트 있고 암스테르담에 저택 있고 하노이에도 저택 있어서 이 세 곳을 오가며 항공기 좌석을 집으로 여기면서 집필 활동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잇츠 마이 드림이여...
책을 읽다가 혹은 영화를 보다가 혹은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혹은 뉴스를 보다가,
문득문득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건 이 친구가 읽으면 좋아하겠네, 그 친구라면 이걸 어떻게 생각할까, 으 이건 저 친구가 정말 싫어하겠다, 흐음 그런데 이 친구는 이걸 이해하지 않을까?
어떤 외로움이나 고독함이 찾아들면, 이건 이 친구가 이해해줄 텐데 라는 식의 생각도 하고.
케이트 브라이언의 책을 펼치면서는 나의 베스트프렌드'였던' 친구 생각이 났다. 만약 이 책을 너와 함께 읽는다면, 너는 바스키아의 삶에 주목하겠지, 나는 케이트 브라이언이 궁금해. 우리는 그걸로 와인을 앞에 두고 이야기 나눌 수도 있을텐데. 고다치즈를 조금씩 먹으면서. 치즈는 네가 썰어야 해.
키스 해링을 읽었고 이제 바스키아 차례다. 나, 그 뉴욕의 구겐하임이었나, 거기 가서 바스키아 그림 봤던 거 기억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니. 대단하다, 증맬루.. 내가 이룬 삶이다 ㅠㅠ
친구가 요즘 왜 캐나다 뷰 안올라오냐고 해서 오늘 아침 찍어보았다. 이 사진은 그 친구에게 바친다.
자, 바쁘다. 일하러 가자. 나를 먹여살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