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위생부대에서 다들 잘해주었지만 나는 정찰병이 되고 싶었어.
그래서 나를 보내주지 않으면 도망이라도 쳐서 전선으로 가겠다고 했지. 그러자 군법에 따르지 않으면 콤소몰에서 제명하겠다고 나오더군.
그래도 나는 결국 도망치고 말았어……
처음으로 메달도 받았어. ‘용맹한 병사‘ 메달……
전투가 시작되고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어. 여기저기서 우리 병사들이 죽어 나뒹굴었어. ‘전진! 조국을 위해!‘ 자꾸 명령은 떨어지는데 병사들은 자꾸 죽어나가고 다시 전진 명령, 또다시 병사들은 죽어나가고. 나는 군모를 벗어서 다른 병사들이 나를 볼 수 있게 했어. 소녀병사도이렇게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서…… 그러자 다들 다시 힘을 냈고, 우리는 함께 적을 향해 돌진했어……메달을 받았어. 하지만 메달 받은 바로 그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러 나가야 했어.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 생애 처음으로 그게 찾아온 거야…… 우리 여자들의 그것……보니까 내 몸에서 피가 흐르더라고. 그래서 놀라 소리쳤지.
-부상당했어요……
정찰대원들 중에 나이 지긋한 의사보조가 와서 물었어.
-부상당한 데가 어디지?
―모르겠어요……하지만 피가……
그러자 그가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설명해줬어……- P115~116
나는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 때 첫 생리를 했다. 엄마로부터 생리대를 착용하고 버리는 법에 대해 배웠지만, 열다섯인 나에게 그 일은 쉽게 느껴지질 않았다. 시간이 걸릴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고, 그래서 생리 중에는 학교에 가 수업을 들을 때 늘 긴장했다. 2교시나 3교시가 끝나고 화장실을 가서 생리대를 갈려면 일단 화장실에 도착해 착용했던 생리대를 둘둘말아 휴지로 싸서 버리고 새로운 생리대를 뜯어서 내 몸에 맞게 대고 속옷을 다시 입는 일. 이건 그 때의 내겐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내가 과연 쉬는시간 10분 내에 이 일을 마칠 수 있을지, 나는 걱정했다. 혹여라도 내가 화장실에 조금 늦게 도착해 다른 아이들 뒤에 줄을 서게 되면 나는 쉬는 시간 안에 생리대를 가는 일을 다 해낼 수 없을것만 같았다. 그 나이에 처음 생리를 한다고 다 나처럼 긴장하진 않았겠지만, 그러니 여기에는 어느 정도 나의 성격이 반영된 탓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한동안 긴장됐다. 그래서 생리중에 생리대를 갈아야겠다 싶은 쉬는시간이 올라치면, 수업이 끝나기전부터 바싹 긴장하고 있다가,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서는 즉시, 나 역시 교실을 나서 화장실까지 뛰었다. 화장실에 아무도 없을 때 도착해서 이것을 진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얼마전에도 여자친구들과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한 명은 생리컵을 쓰고 한 명은 얼마전에 탐폰으로 바꿨다는 이야기. 나 역시도 일회용 생리대를 착용하다 면생리대로 바꾸고 세탁이 너무 귀찮아 탐폰으로 바꾼 일에 대해 얘기하면서, 다들 동시에 여름에 생리하는 것은 얼마나 번잡스러운가를 토로했다. 특히 일회용 생리대를 할 때의 여름이란 끔찍하다.
내가 유독 깔끔한 타입인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외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바꿔 착용하는 일이 불편하다. 싫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나의 생리일과 체크해보는 건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이 경험이 있을 터다. 가급적이면 불편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리하고 싶으니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기 시작하면서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전장에 있었구나, 다치고 죽고 또 죽음을 목격하는 현장에 있었구나, 그런데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살았구나, 를 느끼고 있다가 처음 생리가 등장했을 때 앗차 싶었다. 그러네, 이 여자들, 생리하는데. 그 전장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야외에서 화장실이라고 제대로 갖추어졌을까. 그 상황속의 여자들은 과연 생리대를 제 때 갈 수나 있었을까. 당장 눈앞에 죽음이 있는데. 그런데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피를 흘리고 있다. 생리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좀 참아봐' 라고 말한다고 '이얏 생리 참아!' 이런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 이 여자들 다들 생리도 했겠구나. 친구들과 나는 여름에 생리하는 거 너무 싫다고 토로했는데, 이 여자들, 계절과 상관없이 전장에서 생리중이었겠구나. 아득해졌다. 게다가,
위의 인용문처럼, 아직 어린 소녀들이 최전방에서 싸우고 싶어했고 그렇게 했다. 그 소녀들중 일부는 생리가 뭔지도 모르고 채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라를 위할거야, 나도 맞서 싸울거야, 나도 전방으로 갈거야, 난 후방에 있지 않을거야! 총 쏘는 것도 모르는 채로 총 쏘는 걸 배워가면서 전쟁에 임했던 이 소녀가, 막상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피에 대해 영문을 모르고 있었던 거다. 생리가 뭔지도 모르는 소녀가 전쟁의 한복판에서 생리를 맞닥뜨리고 …
아 너무 아득하다.
물론, 눈 앞에 죽음이 왔다갔다 하는데, 눈돌리는 모든 곳에 죽음이 있고, 굶주림과 불면과 파괴, 이별이 있는데. 생리는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야, 지금 사람이 죽는데 생리가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아득하다. 첫생리를 전장에서 맞는 소녀들이 아득하고, 그것을 뒤로 한채로 정찰하고 간호하고 맞서야 하는 것도 아득하고.
책의 초반에 참전했던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젊었지만 여자 없이 지냈기에 어린 여자들까지 붙잡아와 차례로 덮쳤던' 남자의 기억. 그것을 자신과 같은 팀의 여자병사들이 알까봐 두려워했다고 남자는 얘기하고 있었다. 여자 없이 지내는게 힘들어서 강간을 일삼았던 남자들과, 이것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생리를 맞이했던 여자들이, 그 전쟁판속에 함께 있었다. 총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