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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이트 오브 유
홀리 밀러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조엘'은 예지몽을 꾸는 남자다. 가끔 잠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꿈을 꾸는데 그건 그 사람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암시한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조엘은 이미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꿈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 꿈이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기쁜 일이라면 괜찮지만 비극적인 일이라면 너무 괴롭다. 조엘이 나서서 뭔가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개입함으로써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조엘이 전혀 끼어들 수 없는 미래의 일들을 꿈에서 볼 때면 너무 괴롭다. 그래서 조엘은 잠을 자지 않으려 한다.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으니까. 당연히 그의 이런 생활패턴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던 수의사란 직업도 그만둔다.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어쩌다 꿈을 꾸다 깨면 노트에 메모를 하고 동네 노인들의 개를 대신 산책시키고 가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지낸다. 자신의 예지몽에 대해 말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해 외롭고 괴롭다.
그런 그가 카페에서 일하는 캘리를 만나게 된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분위기에 캘리는 매력을 느낀다. 본인이 하고 싶은 생태 관련 일을 저리 제쳐두고 죽은 친구를 대신해 카페 일을 하던 캘리는 조엘을 만나 반하게 되고 친해지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연인이 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직업도 갖게 된다. 캘리는 조엘을 너무 사랑하고 조엘도 캘리를 너무 사랑한다. 조엘은 자신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꿈을 꿀것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했지만, 캘리를 사랑하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연인이 되고 뜨거운 사랑을 하고 조엘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캘리에게 얘기한다. 캘리는 조엘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와 함께 그 문제를 극복하고 싶어하며 그런 가운데 그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조엘은 캘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캘리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캘리가 언제 죽을지를 알게 되고 캘리가 원하는 행복한 삶이 그 전에 찾아올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조엘은 캘리에게 이별을 말한다. 네 인생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어, 그걸 찾아 떠나. 그렇게 그들은 이별을 한다.
로맨틱한 감정이 오랜만에 너무 찾아들어서 이 기분 계속 이어나가야지 싶어 연애소설을 읽고자 했다. 책장 앞에 서서 언제 사두었는지 모를 이 책을 꺼내 들었고, 여기에선 어떤 사랑이야기가 펼쳐질까 설레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로맨스 소설이 재미있으려면 내가 그 소설속 주인공이 되어 사랑을 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랑을 하려면, 그 사람 이야기에 흠뻑 빠지려면, 당연히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책 속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져야 이 로맨스가 나의 것이 되고 재미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조엘은 내가 전혀 사랑할 수 없는 남자였다. 이렇게나 매력 없는 주인공이라니, 너무 매력이 없고 짜증이 나서 중간에 그만 읽을까를 숱하게 갈등해야 했다.
그런 한편 짚신도 제 짝이 있다더니 그 말이 얼마나 다행한 말인가를 실감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랑 같은 지점으로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면 조엘은 평생 사랑 한 번 못해볼거 아닌가. 그런데 신은 다행스럽게도 조엘을 사랑하는 여자도 만들어주었다. 얼마나 공평한가. 나는 조엘을 안사랑하지만 캘리는 조엘을 사랑한다. 그래, 그래서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조엘, 세상에 감사해라. 땡스 갓!
아니 그러니까 캘리가 조엘을 처음 만나게 된건, 조엘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조엘이 자신의 문제점으로 직업도 없는 상태로 지내면서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였단 말이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사랑에 빠진건지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 게다가 조엘은 사랑에 빠지면 안된다고 스스로 결심한 사람이라 섹스파트너가 있는 거다. 그런데 캘리는 조엘과 연인이 되기 전 조엘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그에게 섹스파트너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 섹스 파트너와 대화를 한 적도 있다. 도대체 섹스파트너는 있고 직업은 없으며 늘 피곤한 상태의 남자를 왜 사랑하는걸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머리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조엘은 정말로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니 섹스파트너 있는 거 뻔히 알고 내가 그 여자를 봤는데, 그러면서 그 남자랑 연인이 된다는 것이... 나로서는 증맬루 이해가 안되는 것이여... 그러나,
나는 캘리가 아니고 캘리는 내가 아니니, 캘리가 조엘을 사랑한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남도 사랑하지 말라는 법이 없응께롱 캘리가 조엘을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뭘 어쩔 수가 없다. 원래 사랑이란 것이 그렇지 않나. D는 B를 사랑하고 B도 D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A는 F를 사랑하는데 F는 한걸음 뒤에서 Z를 바라보고, Z는 C에게 연정을 품고 C는 J를 사랑하는데 J는 T랑 결혼하고...
나를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해주지 않지만 그러나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캘리를 보면 진짜루 대단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조엘이 캘리에게 '당신은 내 전부예요' 이러는데 가슴이 답답해서 터져버릴 뻔 했다.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연약한 상태에서 섹스파트너 있는 남자가 나한테 '너는 내 전부야' 이러면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갈 것 같아.. 뭐,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이 소설을 더 읽어 말어 던져버려 말어 생각하다가 읽었는데, 그나마 별을 셋 줄 수 있었던 것은 저 뒤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엘과 캘리가 헤어진 후, 그 다음의 이야기. 그 둘은 사랑하는 상태로 헤어졌기 때문에 서로를 잊지 못한다. 가슴 속 성소에 서로를 묻어두었다. 이별을 하고 아파하지만 차츰 상대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넣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캘리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니 세상에.. 여행지에서 만난겁니다. 로리와 오스카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나 캘리가 여행지에서 만난 핀은 생태학자로서 캘리와 대화가 잘 되고 캘리를 사랑해주고 몸 튼튼 마음 튼튼 건강한 사람이고 캘리를 뜨겁게 사랑하고 좋은 아파트도 갖고 있고 그래서 캘리가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준다. 이런 이야기가,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 속에 품고 있지만 내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고 그 속에서 행복도 찾고 다른 사람도 찾아 다른 모양의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까지. 조엘과 헤어진 후의 이야기들이 좋아서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끝까지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매력없는 남주가 나오는 똥같은 소설이었을텐데, 끝까지 읽으면 이 책은 그래도 나름 괜찮은 책이 된다.
내가 기대한 로맨스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역시 로맨스는 저마다의 것이며 그리고 삶은 여전히 게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랑하고 또 이별하고 또 사랑하면서 기쁘다가 슬프다가 다시 기쁘다가 행복하다가 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가슴에 깊이 남고 누군가는 오래 함께 하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우리가 미처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이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캘리와 핀은 호주 퍼스로 신혼여행 가는데 아니 퍼스에 무슨 일 있냐? 사라는 영국에서 일하면서 잘 살고 있다가 루크가 호주로 가 살자고 해서 퍼스로 가 사는데 캘리는 핀과 퍼스로 신혼여행 가고.. 퍼스 무슨 일이야. 사람들 왜 퍼스로 가. 퍼스 왜그러는데. 자꾸 소설에서 퍼스 나와서 괴롭다. 퍼스로 가지마라..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