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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평점 :
영화 [S 러버] 에서 애쉬튼 커쳐는 나이 많은 부유한 여성과 연인이 된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살면서 그 나이 많은 여성의 집에서 살고 그 여성이 주는 돈을 쓰면서 그녀의 젊은 애인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이 젊은 남자는 이 나이든 여자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의 사랑을 잃게 된 것 같은 절망감에 나이든 여성은 산부인과에 가서 수술을 하고 온다. 섹스에 만족을 못느껴서 그러는건가 싶어 자신의 성기를 수술한 것이다. 수술을 하고 얼마간 그녀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이에 애쉬튼 커쳐는 당황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나를 위해 성기 수술까지 감행했으니 평생 그녀에게 사랑을 맹세하겠어'라고 하지 않는다. 그 수술은 그에게도 부담이었고 그리고 어쨌든 그는 그녀를 떠난다. 그가 그의 사랑, 그에게 맞춤한 짝을 찾기 까지 이 나이든 여성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1인이었을 뿐이니까. 상대에게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채로 이렇게 하면 나를 떠나지 않으려나 싶어 성기수술까지 감행하는 여자가 그 영화 안에 있었다. 2009년의 영화이니 내 기억들의 많은 부분은 정확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녀가 수술을 하고 왔던 것, 그러나 그는 떠났던 것에 대해서만큼은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남자를 붙잡기 위해 수술까지 해야해? 라고 영화를 보면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시술이나 수술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것은 누가 간단하다고 시간이 조금 걸린다 하더라도 닥치면 두렵고 회복할 때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 일을 한다. 이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혹은 이 남자를 붙잡기 위해서 혹은 더 많은 남자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왜 여자들은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꾸미고 굶고 제 몸에 칼까지 대야 하는걸까? 여자의 가치라는 것은 남자에게 사랑받지 않으면 무너지는걸까?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 에서 주인공 에이미는 자신의 동생과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누워서도 가슴이 봉긋했지, 정말 예뻤어, 라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나는 누우면 가슴이 축 늘어지는데. 나는 이 장면을 아주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누우면 가슴이 축 늘어지는 것이 실제 여자의 육체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 내 가슴이 생긴 모양이라든가 누웟을 때의 형태 같은 것들에 대해 어휴 이건 왜이렇게 못났어를 생각했었는데, 내가 왜 내 가슴을 못났다고 생각해야 했을까? 그건 상대적으로 예쁜 가슴이 어떤건지 알고 잇었기 때문이다. 그 예쁜 가슴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나의 가슴도 우리 엄마의 가슴도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가슴이라는게 어떤 것인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일전에 오프라 윈프리 쇼에 가슴 성형수술을 한 여성이 나왔었다. 유방 수술을 한 이후로 원인 모를 우울함에 시달려 너무나 괴로웠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병원을 다녀보다가 유방에 넣은 보형물을 빼보자는 이야기가 나왓다고. 그렇게 보형물을 뺐더니 다시 건강해졌다는 이야기였다. 내 유방에 이물질을 넣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일을, 그녀는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그건 많은 여성들이 그렇지 않을까.
나오미 울프는 이 책,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에서 아름다움의 신화에 대해 말해준다. 사실 나는 아름다움은 중요한 게 아니고 아름다움은 절대 가치가 아니다, 라고 말해주길 바랐지만, 그보다는 '우리는 그냥 각자의 본성대로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냥 이대로도 충분하고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굳이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게 우리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자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나오미 울프가 부드럽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여자들이 굶주리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직업적인 아름다움 요건에 대해 말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유방 수술이나 성기 수술에 대해 말할 때, 그녀의 어조는 시종일관 강하고 세다. 정신 똑바로 차려 여자들아, 아름다움의 신화에 넘어가지마, 속지마, 그러면 여자들이 나아갈 세상이라는 것은 좁아질 뿐이야. 거식증에 걸린 여성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볼까.
그녀는 정치적으로 깔끔하고 완벽하게 거세되어 학교 공부나 할 정도의 에너지밖에 없어 계속 영원히 실내에서만 빙빙 돈다. 그녀에게는 화를 내거나 조직에 참여하거나 섹스를 좇거나 확성기로 외치거나 야간버스나 여성학 프로그램을 위해 돈을 달라거나 여성 교수는 모두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할 에너지가 없다.
(중략)
마른 것이 아름다운 것은 마른 것이 몸이 아니라 정신에 하는 것 때문이다. 상을 받을 만한 것은 여성이 마른 것이 아니라 굶주리는 것이고, 마른 것은 그것의 증상일 뿐이다. 굶주리면 흥미롭게도 "해방된" 정신의 폭이 좁아진다. -p.319
위의 구절을 읽어보면 어떤가. 힘을 내고 싶지 않은가.
유방에 대해 하는 말도 들어보자.
여성의 얼굴과 몸매의 이미지를 편집하는 암묵적 검열이 똑같이 여성의 유방 이미지도 편집하여, 여성의 유방이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게 한다. 문화가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함으로 유방을 가려, 물렁하거나 비대칭이거나 원숙하거나 임신으로 변화를 겪은 유방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는 법이 없다. 문화에서는 진짜 유방이 여성만큼이나 모양이 다양하고 변형도 많다는 것을 거의 알 수 없다. 여성도 대부분 다른 여성의 유방을 보거나 만지는 일이 드물어 유방을 만지면 어떤 느낌인지, 유방이 몸과 함께 어떻게 움직이고 달라지는지, 사랑을 나눌 때는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연령의 여성이(유방의 감촉이 실제로는 얼마나 다양한지를 생각하면 슬픈 일이지만)"오뚝하고", "탱탱한" 것에 집착한다. -p.391
물론 성숙한 여성 가운데 유방이 큰 사람도 많지만, 그들의 유방은 "오뚝하고", "탱탱하지" 않다. -p.393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동안 어떤 압박을 받고 어떤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어떤 식으로 제한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드러내는 책을 읽노라면, 어쩔 수 없이 포르노가 튀어나오고 어쩔수 없이 페미사이드로 연결된다. 여성과 같이 일을 해도 벗은 여성의 달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벽에 걸어놓고 일하는 남성들의 사례는, 함께 일하는 여성이 한 명의 인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늙은 남자 앵커는 중후하고 실력으로 보여주지만, 그런데 왜 그 남자 옆에는 항상 젊은 여성들이 바뀌어가며 자리할까. 젊고 아름다운 것만이 가치있고, 그것이야말로 여성이 가진 진정한 능력이라고 말하는 이 세상 때문에 여자들은 병들고 죽어간다. 일정 부분 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나오미 울프는, 아니 그러지 말자고 한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지방을 더 많이 갖고 태어나고 그것이 여성 신체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얘기한다. 유방을 수술하는 것은 과연 누구에게 좋은 일인지도 나오미 울프는 묻는다. 그것이 이런 가슴을 가진 나에 대한 만족일까?
성형외과 의사는 자기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여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여성의 몸에 공인된 판타지를 수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 역할에 어떤 환상도 없는 것 같다. 한 성형 잡지에 실린 광고에서는 털 많은 남자의 손이 아교질의 보형물을 움켜쥐어 손가락 사이로 젤(우연히도 네이팜 제조회사에서 만든)이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광고 문구는 이 제품이 인공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진짜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주장한다. 움켜쥔 손에. -p.394
움켜쥔 손에.
움켜쥔 손에.
나는 저 문장의 '움켜쥔 손에' 에서 뒷머리가 쭈삣 서는 것 같았다. 움켜쥔 손에. 여자들은 왜 시간을 들여 좀 더 일찍 일어나 속눈썹을 올리고 볼터치를 하고 드라이를 할까. 왜 여자들은 먹을 음식이 앞에 있어도 부러 굶을까. 왜 여자들은 자기 유방에 이물질을 넣을까. 왜 여자들은 성기에 칼을 댈까. 왜, 왜. 우리는 그것을 과연 우리 자신을 위한 만족이라고 말할 수 잇을까? 그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그것이 예쁜 얼굴이라고, 치장하고 사람들을 보는게 예의라고, 이런 가슴이 예쁜 가슴이라고, 이런 몸이 사랑받는 몸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것듣을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과연 누가 편한지를, 그리고 누가 싫어할지를.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이 싫어할 것도 아니면서 우리 자신이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세뇌당해 스스로의 몸을 가혹하게 대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것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누가 말하지? 이것은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 어떤 맥락에서 그럴까? 누가 면전에서 여성의 외모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면 이렇게 자문해볼 수 있다. 이게 이 사람이 상관할 일일까? 그런 권력관계는 평등할까? -p.442
나는 여자들이 화장하지 않고 다이어트 하지 않고 성형수술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자들이 화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곳은 어디일까? 여자들이 성형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싫어할까?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사라질 것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여자들이 아름다움의 신화에서 벗어났을 때 사라질 기업들이라면, 그 기업들은 처음부터 무엇을 기대했을까?
단언하건대, 여자들이 아름다움의 신화에서 벗어나 뚜벅뚜벅 자유로운 세상으로 걸어나올 때, 화장하지 않고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다이어트 하지 않고 성형수슬 하지 않을 때, 그것을 싫어할 사람이 나는 아니다.
뻔뻔해지자. 탐욕스러워지자. 쾌락을 추구하자. 고통을 피하자. 마음대로 입고 만지고 먹고 마시자. 다른 여성의 선택을 받아들이자. 우리가 원하는 섹스를 찾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섹스와 맹렬히 싸우자. 자신의 이상과 대의를 선택하자. 규칙을 깨부수고 바꾸어 우리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확고해지면, 그러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꾸미고 과시하고 한껏 즐기자. 감각의 정치학에서는 여성이 아름답다. -p.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