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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 조용하게 이긴다 우아하게 바꾼다.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평점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대는 이렇다'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특히나 그 속의 당사자들이라면 더 그럴 것이고. 인간은 무릇 모두다 다를진데, 한 명 한 명에게 고유의 역사가 있고 스토리가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의 집단으로 퉁쳐질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무리짓고 구별하는 것이 옳지 않다든가 얄팍하다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또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이건 이 책의 저자도 전제하는 바다). 그러나 분명 공통된 조건하에서 그들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라는 건 있다. 같은 성별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 같은 인종에게 같은 나라의 국민에게 같은 지역 사람들에게 흐르는 정서, 같은 사건을 겪은 사람들에게 흐르는 정서. 그것이 세대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그 모두는 하나하나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 시대 이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굵직한 줄기에도 '나는 아닌데?' 하면 거기다대고 '너도 그렇거든?!' 할 생각은 없다.
나이를 먹어가고 사회적 연차가 쌓이고 시대가 바뀌는 걸 목격하면서 나는 점점 내 스스로가 꼰대가 되어간다고 느꼈다. 내가 나를 단속하지 않으면 나의 꼰대 성질이 어김없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려고 했고, 그래서 상대가 나를 꼰대로 여길까봐 걱정이 됐다. 내가 꼰대인 거 뽀롱나면 어떡하지, 나를 꼰대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작은 걱정들. 그러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좀 더 나이가 들고 확실히 내가 요즘의 시대 흐름에는 뒤쳐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 스스로 꼰대임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됐다. 이건 내가 부인할 게 아니라 자꾸 감출 게 아니라 인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구나, 나는 꼰대구나, 하고. 내가 꼰대임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내가 꼰대인 걸 알고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확실히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졌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젊은 세대들의 어떤 특성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어떤 특성들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특히 유튜브.. 나는 아직도 유튜브를 보지 않는 사람이고 어떻게도 활용을 안하는 사람인데(크리스토퍼 라이브만 찾아봅니다..), 요즘 세대는 유튜브로 수익을 창출하고 검색조차 유튜브로 하는거다. 아, 당신들은 확실히 나랑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이 책의 저자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MZ 세대의 끄트머리 쯤이라고 한다. 정치 성향을 물으면 어떤 면에서는 진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보수라고 답하는 사람이다. 진보이기만 하지도 않고 보수이기만 하지도 않은 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텐데, 내 세대와 나의 윗세대는 확실히 자신의 정치 성향을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저자 자신이 혹여라도 얄팍한 세대론에 휩쓸리는 걸로 보일까 우려하지만, 저자는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직장인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자신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 환경을 생각해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는 이유, 명상과 요가를 하고 경제신문을 읽는 이유. 그것을 윗세대가 쉽게 '자기계발'로 칭하는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연신 강조한다. 아니, 이건 자기계발로 퉁칠 수 있는게 아니야, 나는 그저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고 싶고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거야. 나는 이런 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저자에게 동의하고 공감한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었는데 읽다보니 내가 그렇게까지 꼰대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또 스스로 한걸음 젊은 세대에게 가까워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자세이지만, 그러나 나랑 다른 시간적 공간과 공간적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고 여성학 책 읽기를 즐겨하는 나에게 사실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같은 것은 전혀 읽을 관심이 생기지 않는 종류의 책이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요즘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그렇게 읽은 이 책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미잇었고 책장도 술렁술렁 잘도 넘어갔다. 물론 어느 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뭐랄까, '그건 너 자신에 대한 합리화네' 라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더러 있지만-저자는 국민청원 제도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래서 참여도 잘 하지 않지만 동물에 대한 것은 반드시 참여한다고 한다. 어차피 참여하는 사람이면서 그렇게 말하는 화법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최근 MZ 세대를 다룬 '앤 헬렌 피터슨'의 《요즘 애들》을 읽었고 그 후에 이 책을 읽었는데, 담고 있는 내용이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들은 아주 똑똑하고 자기 삶을 분명하게 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역시나, 그렇지 못한 요즘 애들이 있지만 그건 뭐 요즘 애들 아닌 사람들에게도 있는 바. 역시 남걱정 할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최선이라 하겠다. 요즘 애들은 대체 왜그래? 가 아니라 '나는 대체 왜이러지?' 를 묻는게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아무튼 이 꼰대의 젊은 세대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될것이며, 이렇게 그들에 대해 알고자 책을 읽는 내가 또 너무 멋지다. 아침부터...
‘레토르트 밥‘과 ‘직접 지은 얼린 밥‘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 아니냐는 게으른 사유, 하루 한 끼만 먹어도 일주일이면 7개나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면서 자연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심한 언어. 삶과 살림에 대한 사소한 태도 한가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생활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앞으로도 과잉에 저항하고 낭비를 거부하며 살 것이다. 그것이 좋은 날 태어나 시대의 풍요를 맘껏 누려온 것에 대한 작은 환원이라고 믿는다. - P36
삶의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러면 정말 유튜브를 틀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는 게 도움이 된다. 몇 시간이고 볕 잘 드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대학생, 타지 유학생활 중 터진 코로나로 귀국하지도 못하고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유학생, 재택근무를 하는 와중에도 집밥을 살뜰하게 챙겨 먹는 또래 직장인, 밖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베란다를 멋진 정원으로 꾸며 난생처음 보는 온갖 식물을 능수능란하게 키워내는 주부 등 사소한 순간도 자신만의 에너지로 채워가는 이들을 보노라면, 삶은 큰 의미를 발견하진 못하더라도 꾸준히 살아가는 데서 동력을 얻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닿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자기계발 구호를 외치며 나의 존재 이유를 묻지 ㅇ낳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소한 순간들로 이 위기를 소소하게 타개하는 보통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삶의 태도를 닮고자 노력할 뿐이다. - P190
흡사 ‘번아웃‘을 유발하는 일상에 치인 사람에게 "당장 나가서 사람을 만나세요" "지금 당신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입니다"와 같은 말은 폭력적이다. 일방적이다 못해 거부감이 든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지친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름의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대부분 그러했다. 진솔한 위로를 건네기보다 ‘더 뛰어라‘ ‘일어나라‘는 식의 단순 처방들, 머무르고 있지 않기만을 강요하는 모든 소음에서 해방되고, 그저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나는 일상을 살뜰하게 경영해나갈 의욕에 사로잡힌다. 어떤 자기계발 강연보다 유튜브의 브이로그를 보고 더 큰힘을 얻는 이유다. - P190
책을 쓰며 세상을 납작하게 해석하는 ‘세대론‘에 영합하는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 않다. 그러나 다른 연령대와 구분되어 트히 도드라지는 우리 또래의 행동, 그리고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정서를 설명하는 책이 한 권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아무도 1년 뒤를 예상할 수 없는 이 시기를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총동원해 건너가고 있는 ‘나‘.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규범을 조금씩 직조해가는 ‘나‘. 이 모든 ‘나‘를 대신해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요즘 애들은 대체 왜 저러느냐"는 무신경한 질문에 대항하기 위하여.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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