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부러 찾아서 이 영상을 보았다.
여기에 모인 관중은 대체 몇명일까?
나는 내가 좋아서 읽고 또 내가 좋아서 쓰지만, 아무리 내가 좋아서 쓴다고 해도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기분 좋다. 그러다 간혹 내 글을 좋다고 말하거나, 내 글을 찾아 읽는다거나, 내 팬이라고 말하는 댓글이라도 보게 되면 정말이지 너무너무 행복해진다. 나는 나 좋자고 쓴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읽히기 위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알라딘의 글들을 보고 혹은 책을 읽고 내게 이메일이나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출근길에 내 글을 읽는게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폰에 언제나 내 글을 읽기 위한 아이콘이 따로 나와있다고 해주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들은 정말이지 너무 좋아서 나는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하지만 나는 내 글을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을 더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만인에게 읽히는 것보다는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이 움직이는 글. 그런 글이라는 생각이 들때면 너무 좋아지는 거다. 가슴 가득 뿌듯함이 차오른달까. 내 글을 읽고 싶어하는, 내 글이라면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면,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런데 저 영상속의 아델을 보라. 와.. 어마어마하다. 정말 어마어마해. 셀 수도 없을만큼의 관중들이 저 자리에 있고, 아델이 마이크를 넘기면 아델의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저 무대위에서의 아델은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콘서트를 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간다고 했을 때에는 나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가 노동해서 번 돈의 어느 부분만큼을 투자해야 하고,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 콘서트에 갈 시간을 부러 마련해야 하고, 내 체력에서의 일정부분을 또 콘서트에 오고 가는 걸 위해 써야한다. 내가 가진 자원들을 내가 응원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그리고 그 노래들을 듣기 위해 소비한다는 것. 기꺼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창작하는 자에게 얼마나 힘이 될까.
저 큰 무대위에서 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왔다, 내 노래를 들으러 왔다, 그리고 내 노래를 따라 부른다는 것. 거기에서 오는 감동은 어마어마할 것 같다.
나는 살면서 스타가 되고 싶다거나 인기를 얻고 싶다거나 하는 바람을 갖고 살진 않았지만,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태어나서 한 번쯤 수천명의 관객을 끌어보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진다. 저 영상을 보노라니, 한 번 태어난 인생 저렇게 대차게 한 번 살아봐야 하지 않나, 화려하게 한 번 살아봐야 하지 않나 싶은거다. 물론, 그렇게 살겠다는 건 아니고 그걸 진정으로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ㅋ ㅑ - 인생은 아델처럼!! 이런 마음이 되어버리는거다. 와. 진짜 벅찰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나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한날 한시에 여기에 모였다!! 와. 너무 대단하지 않은가.
저 무대 위에서의 벅참과 흥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아마 따로 있지 않을까. 그걸 감당할 수 있으니 저 무대 위에 설 수 있는게 아닐까. 나는, 소박하게 살자고, 여태 그래왔듯이 소박하게 살자고 새삼 생각해본다. 저 많은 관객들은 많은 관심을 의미할 것이고, 그것은 내 사생활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테니.
마침, 최근 읽었던 오바마의 글이 생각난다.
7월 24일 아침에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도착했을 때도 머릿속에는 이 생각들이 들어 있었다. 2000년 전 성지인 성전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이곳은 신성으로 통하는 관문이자 하느님이 모든 방문자의 기도를 받으시는 장소로 간주된다. 수 세기 동안 전 세계 순례자들은 종이에 기도문을 적어 벽 틈새에 끼워 넣는 관습을 따랐기에, 그날 아침 이곳에 오기 전에 나도 호텔 메모지에 기도문을 썼다. 회색의 새벽빛 아래서 이스라엘 측 인사, 보좌관, 비밀경호국 요원, 찰칵거리는 언론사 카메라들에 둘러싸인 채 수염 기른 랍비가 성시聖市 예루살렘의 평화를 기원하는 시편을 낭송하는 동안 나는 벽 앞에 머리를 숙였다. 관례에 따라 무른 석회암에 손을 얹고 가만히 묵념한 뒤에 가져온 종이를 뭉쳐 벽의 틈새에 깊이 밀어 넣었다.
나는 이렇게 썼다. "주여, 저희 가족과 저를 지켜주소서.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교만과 절망을 경계하도록 도와주소서. 옳고 바른 일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당신의 뜻을 이룰 도구로 저를 쓰소서."
나는 이 말이 나와 하느님 사이의 비밀일 줄 알았다. 이튿날 이스라엘 신문에 실리더니 인터넷에 유포되어 영생을 얻을 줄은 몰랐다. 우리가 떠난 뒤에 구경꾼이 종잇조각을 벽에서 끄집어낸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세계 무대에 발을 디뎠을 때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실감했다.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젠 나의 생각과 동작 하나하나가 국제적 관심거리였다.
익숙해지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또한 감수해야 할 몫이니까. -책속에서
다른 사람이 통곡의 벽 틈새에 밀어 넣은 기도문을 꺼내는 일을 왜 하는 걸까. 나는 그것을 꺼내지 말았어야 한다고, 거기에 무슨 기도를 적었는지를 엿보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오바마가 그랬듯이, 그 기도문은 나와 하느님 사이의 비밀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걸 왜 꺼내보나. 그것을 꺼내본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는 전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미국 대통령이 될만한 사람은 어떤 기도를 하나'라는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가 보다. 오바마는 이것이,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경계가 녹아내리는 것이, 이제 본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으...나는 감수하고 싶지 않다.
역시 소박하게, 오늘의 커피를 내려 마시고 오늘의 점심 메뉴를 고민하면서 소박하게.
그리고 나는 프랜시스가 좋다.
그리고,
Hello?
아 그리고 이건 며칠전에 도착한 책들. 어쩐지 슬픈 목록...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