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엄마 아빠를 모시고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보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엄마를 모시고 보기에 정말 최고의 영화였다. 이 영화는 여자들의 연대를 보여줌과 동시에 엄마와 딸을 보여준다. 중년의 여성과 젊은 여성 그리고 어린 여성까지 한 자리에 있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너무 좋아서 영화 내내 울컥울컥 했는데, 옆에서 아빠는 이 영화는 코미디구나 하고 웃기만 하셨다. 결국 중간 어느 지점에서 나는 훌쩍거리고 울다가 손수건 까지 꺼내 눈물을 닦아야 했는데 아빠는 야 울 부분이 어디있다고 우냐고 하셨고... 아빠의 저 공감하지 못함에 답답해버려.. 그런데 영화 끝나고 엄마는 내게 '너 아주 신나게 울더라, 나도 몇 번 울 뻔했는데 참았어' 하셨다. 아 엄마.. ㅠㅠ
영화는 킬러들의 이야기고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이 킬러다. 엄마도 킬러고 딸도 킬러가 됐고 이모들(물론 진짜 피를 나눈 이모는 아니다)도 죄다 킬러다. 킬러로 살다 보니 어떤 거대한 범죄 조직의 아들을 죽이게 되었고 그래서 그 조직이 이제 우리의 주인공 '샘'(카렌 길런)을 죽이러 온다.
킬러, 조직, 싸움.. 이다보니 이 영화에서는 숱한 살인이 벌어진다. 목이 잘리는 장면들도 있어 잔인한다. 액션 영화에서 무자비하게 살인이 일어나는 걸 볼 때면 여기엔 어떤 의미가 있나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종류에는 액션은 없었다. 게다가 조직폭력배 영화는 제쳐두고 보지 않는다. 진짜 너무 싫어. 남들이 다 본 영화도 보려고 했다가 십분도 못 보고 꺼버리고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드립치는 많은 한국 조폭 영화를 안본게 허다하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런데 이 영화속에서 이 킬러들이 적들과 맞서 싸우면서 죄다 죽이는 걸 보는데, 이건 뭔가 여기에 의미가 뭐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보다 다른 스토리가 보이는거다. 여덟살(정확히는 8년9개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샘이 뛰어들고, 그런 샘을 구하기 위해 샘의 엄마가 뛰어들고, 그런 그들의 편에 도서관 사서 이모들-그들도 모두 킬러, 킬러!-이 뛰어드는데, 이 매 장면들마다 소름 끼치게 좋은 거다. 으앗, 너무 좋아, 도와준다, 으앗, 구하려고 애쓴다 흑흑 ㅠㅠ 하면서 그냥 매번 자꾸 울컥 하게 되는거다. 최근에 이렇게 여성들이 여성들을 구하는 영화들을 보게 되는데, 건파우더밀크셰이크는 터미네이터 바로 다음으로 좋은 영화 되시겠다.
게다가 이영화의 가장 절정액션은 무려 도서관에서 일어난다! 무기는 도서관 책들에 숨겨져있고 그래서 샘에게 싸우라고 책들을 주는데, 아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는데 제인 오스틴이 있었고 또 .. 아무튼 그 책들을 하나씩 주면서 그 책을 열면 무기가 나오는데, 그러니까 당연히 그 책들은 보통의 책들보다 사이즈가 큰데, 마지막으로 이모들이 '버지니아 울프' 하면서 책을 던져주는 거다. 그런데 그 책의 사이즈는 작고, 정말 책 사이즈. 다들 의아하게 그 이모를 쳐다보는데 그 이모가 '이건 읽어보라고' 하는거다.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좋아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린 시절 댈러웨이 부인 읽고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그 오랜 시간이 애석하다..안타까워. 내가 나를 원망한다. 왜그랫니.. 그러다가 자기만의 방과 3기니 몇해전에 읽고 아아 나 바보, 나 똥개, 나 멍충이, 나 세상 똥멍충이 이렇게나 좋은데!! 하였었고, 그러면서 오래전 알라딘 활동하시던 분 중에 버지니아 울프 좋아하시고 공부하시는 분 있었는데, 그 분 생각도 엄청 많이 했다. 아아, 진작에 알아보고 현명한 길 가신 분인데 내가 몰라뵀구나.. 이러면서 내가 나를 원망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그 먼 곳에서?
자, 다시.
그렇게 도서관에서 싸울 때 적들은 샘을 죽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수의 조직원들을 데리고 왔다. 그 때 그 조직원의 우두머리가 샘에게 항복하라고 말한다.
"너는 빠져나갈 길이 없어, 나는 군대를 이끌고 왔거든. "
그때 우리의 샘이 말한다.
"나는 엄마랑 있어."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쉬바 눈물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폭풍 오열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그리고 문학 중년의 나는, 피로 물든 방을 생각한다. 앤젤라 카터를 생각한다. 일찍이, 엄마가 구해주는 이야기를 써낸 우리의 앤젤라 카터!!
용기. 용기를 생각하자 엄마가 떠올랐다. 그때 연인의 얼굴 근육 하나가 꿈틀하는 것이 보였다.
"말발굽 소리!" 그가 말했다.
나는 최후의 필사적인 시선을 창문으로 던졌고, 기적처럼 말과 기수가 현기증 나는 속도로 바닷길을 따라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말발굽 뒤쪽까지 파도가 밀려오는데도 말이다. 기수는 힘차게 빨리 달리려고 검은 스커트를 허리춤에 말아넣은 채 미망인의 상복을 입고 미친듯이 달리는 훌륭한 여자 기수였다.
전화가 다시 울렸다.
"아침 내내 기다려야 하나?"
매순간 엄마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p.64)
<피로 물든 방> 앞에서 젊은 신부가 신랑으로부터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때 그녀를 위해 달려오는 게 엄마다. 훌륭한 기수가 여자다. 미친 듯이 달리는 여자가 엄마다. 왕자도 기사도 아닌 엄! 마! 엄 to the 마!
그때의 짜릿함을 내가 기억하는데, 그런데 건파우더밀크셰이크에서도 엄마가! 엄마가! 그녀의 옆에서 그녀랑 싸워준다. 아아, 딸인 내가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가 저 부분, 저 이야기 너무 좋아해서 피로 물든 방 원서를 샀는데, 첫 문장 읽어보고 책 덮었다. 엄청 어려워서 도무지 볼 수가 없어. 번역본을 읽어도 모르겠더라.
엄마처럼 거센 사람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모자가 바람에 실려 바다로 날아가서 엄마의 머리카락은 마치 흰 갈기털 같았고, 검은 망사 스타킹을 신은 다리는 허벅지까지 드러나고, 스커트 자락은 허리춤에 찔러넣고, 한 손은 뒷다리로 일어서는 말의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아버지의 권총을 잡고 있었으며, 엄마 뒤에는 거칠고 무정한 바다의 파도가 맹렬하게 정의가 행해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p.67
열여덟 살 생일날 엄마는 하노이 북쪽 산에 있는 마을을 습격한 식인 호랑이를 처치한 적이 있었다. 지금 엄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아버지의 권총을 들어 겨냥한 다음 흠잡을 데 없는 단 한 방의 총알로 내 남편의 머리에 구멍을 냈다. -p.67
You never saw such a wild thing as my mother, her hat seized by the winds and blown out to sea so that her hair was her white mane her black lisle legs exposed to the thigh, her skirts tucked round her waist, one hand on the reins of the rearing horse while breakers of the savage, indifferent sea, lite the witnesses of a furious justice. -p.43
On her eighteenth birthday, my mother had disposed of a aneating tiger that had ravaged the villages in the hills north of Hanoi. Now, without a moment's hesitation, she raised my father''s gun, took aim and put a singel, irreproachable bullet through my husband's head. -p.44
엄마는 총을 들고 나를 죽이려던 남편의 머리통을 날려버렸어!! 꺄울 >.<
아, 건파우더밀크셰이크 너무 좋다. 피로 물든 방이 생각나는 영화라니,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샐리 루니 프랜시스 얘기도 해야 되는데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다. 리뷰 하나에 페이퍼 하나. 두 개나 썼어. 프랜시스와 닉의 얘기는 다음으로...
일요일 밤이 가고 있다. 열어둔 창문을 닫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