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던 어제 얼른 짬뽕을 먹고 싶었다. 점심에 짬뽕을 사먹을까 했지만, 나는 집 냉동실에 고메중화짬뽕을 쟁여두고 있었고,
최근에는 배달짬뽕이나 중국집 가서 먹는 짬뽕보다 이 짬뽕이 더 맛있다고 생각하기 땜시롱 얼른 집에 가 끓여먹자 했다. 기대감
뿜뿜 차올라서 나는 퇴근하자마자 집을 향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꿋꿋하게 갔다.
집에 가서는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물을 올리고 짬뽕을 끓였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냉동 새우 네 개도 함께 넣어 끓였다. 나는 새우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냉동실에 쟁여두면 요긴하게 쓰일 때가 많다. 갑자기 감바스 먹고 싶을 때 넣어도 좋고 이렇게 짬뽕을 끓일때 넣으면 장식의 효과가 크다. 사실 그냥 저녁으로 먹을거면 새우를 생략했을텐데, 나는 술안주겸 먹을거라 꼭 넣어야 했다. 크-
그렇게 어제 차려낸 소박한 술상이자 밥상.
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먹었어. 금욜에 제대로 화려한 술상을 차릴거라 목욜엔 간단하고 소박하게 차려냈다. 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젼 보시고 엄마는 안방에서 친구랑 통화하시고 나는 홀로 부엌 식탁에서 으아~ 캬~ 크~ 해가면서 먹었다. 아 좋은 저녁이었다..
그렇게 맛있게 다 먹고 으아 맛있었다, 하고는 설거지를 한 뒤에, 음주 후 책은 무슨 책, 하면서 아빠가 텔레비젼 보는 거실로 가 자리 잡고 앉았다. 아빠는 티비를 통해 영화《쥬라기 월드》를 보고 계셨다. 이미 전에 한 번 본 영화인데 티비에서 자주 해주다 보니 또 틀어놓고 보고 있는거다. 이미 전에 봤다해도 나도 기억 잘 안나서.. 뭐 공룡 나오고 그러니까 가족 무비로는 좋다할 수 있겠다. 그런데,
끝까지 다 보진 않았지만 영화는 좋지 않았다. 유전자 조작으로 공룡을 만들어 내어 공룡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나 파크를 만들어낸 것은 인간의 욕심이 능히 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그 공룡이 인간을 죽일 때는 저거봐 인간의 욕심이 한 일이라니깐, 했단 말이다. 그런데 이 공원 전체를 관리하는 '여자 임원'이 문제였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정작 자신의 조카들이 위험에 처할 때는 남자에게 가 자기를 도와달라 한다. 남자가 '네 하이힐 때문에 너는 여기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아' 라고 하자 여자는 갑자기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헤치더니 그걸 배 앞에서 묶어서는 나는 준비가 되어있어, 한다. 한마디로 민폐 캐릭터였고, 보다보면 자연스레 '아오 저 여자 왜 저래' 라는 말이 나오는 캐릭터인거다. 쥬라기 월드는 아이들도 볼 수 있는 가족 영화다. 그런데 '저 여자 왜저래'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다. 그런 여자 캐릭터를 우리는 그 영화를 통해서 보고,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 그렇게 된건지 모르지만, 어떤 나쁜 여자 캐릭터가 나올 때 그것을 그 한 사람 개인의 특성으로 보지 않고 여자의 탓을 한다. 나만해도 입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저 여자 짜증나네' 라고 생각한거다. '저 사람 짜증나네'가 아니라. 여자 한 명의 잘못은 여자들 전체에 대한 대표성을 가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며 '이래서 여자 대통령은 안된다니까'를 들어왔는가. 그 전에 수많은 남자 대통령이, 독재자들이 있었는데!
인종적 소수자는 그들에게 주어진 낮은 기대치에 맞서 스스로를 입증해야 한다. 그들은 고도로 비가시적인 곳에서 충분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자신이 유능하고 실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려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비가시성과 맞서야
한다. (p.108)
파농은 흑인 전문직 종사자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생생하게 회고했다. 칭찬과 권위의 추락 사이에는 매우 얇은 선이 있다. 실수를
저지를 만한 여지는 지극히 적다. 일을 하면서 생기는 아주 작은 실수일지라도 지적되어 그 사람이 직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증거로
과장된다. 이는 다시 점점 더 심해지는 관찰과 감시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된다. 현미경 같은 감시는 부정확성의 여유를 남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감시의 시선이 필사적으로 파고든 것을 찾아낸다. 당사자는 감시 아래서 지나친 압박을 받아 자신의 실제 능력을 잘
발휘하지 못하며 불안과 초조의 증거인 실수를 더 자주 저지르게 된다. (p.112)
여성과 인종화된 소수자는 자신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다는 사실, 아주 작은 실수조차 무능력의 증거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른바 ‘대표성에 대한 부담감‘을 짊어진다. 그들은 그 자체로 표가 나고 가시적인 그들 집단의 능력을 대표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파농은 어떻게 개인 경력 이상의 것이 ‘검둥이‘ 외과의사의 일에 달려 있는가를 설명했다. 인종화된 특정
집단의 능력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며 소수자의 일원이라는 데에 당연한 부담이 있다. 비백인도 그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일을 잘해야 하는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 고위 공무원은 "못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 편을 실망시킬 테니까요.
아시아인이 정말 잘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증명하고 싶어서 잘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p.113)
요즘 넷플릭스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보면 변화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최근에 본 로맨스 영화에서는 여자주인공의 덩치가 컸다. 그간 유머를 가미해 부러 뚱뚱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적도 있지만, 이번에 본 로맨스 영화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덩치가 크다는 것을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 내디뎠다. 그래봤자 잘 나가는 도시의 회사 임원이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남자 옆에 살기로 했으니까 ㅎㅎㅎ 돈 싫어 ♪ 명예 싫어 ♬ 따분한 음악 우리 정말 싫어 ♪ ♬ 한적한 마을 남자옆이 최고야 오예~~ ♪ ♬♪ ♬♪ ♬♪ ♬♪ ♬♪ ♬♪ ♬♪ ♬♪ ♬♪ ♬
아무튼 영화 보다 말고 졸려서 내 방으로 들어갔는데 책을 조금 읽다가 잤다. 그리고 꿈을 꿨다. 아마도 쥬라기 월드를 봐서 그런 꿈을 꾼것 같았는데, 쥬라기 월드에서는 남주가 동물들에 대해 많이 알고 또 남조가 동물과 교감하는 장면이 나오는거다. 내가 꾼 꿈에서 나는 중국 남자랑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는 학원에서 만났던가? 여튼 서로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둘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니 기본적인 영어로만 소통을 했다. 학원 끝나고 함께 걸으면서 그가 내게 선물이라며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내밀었다. 행운을 뜻하는 거라며 나 가지라고 주는거다. 꿈속에서 나는 얼른 이 화폐의 가치를 우리돈으로 환산해 보았는데 백십원이었다. 고맙다고 지갑에 넣으면서 '왜 행운을 뜻하는 지폐가 이렇게 소액이야? 줘도 백원이 뭐람?' 했다. ㅋㅋㅋ 그리고 걸으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데, 그는 일전에 서커스단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자기가 일하던 서커스장이 없어져서 자기가 이제 서커스에서 동물을 만나는 일이 없다고, 그렇지만 길에서 동물을 만나면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아, 그런가보다 하고는 걷는데 그가 자기네 집에 가자고 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지금 학원에 다닐 수 있는건 부모님의 지원 덕분이라 했다. 그의 행색은 좀 초라해보였는데 뭔가 나와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나도 뭔가 좋으니까 데이트를 했겠지만, 나야 원래 인간성!! 인간성을 보고 사람을 좋아하곤 했지만, 여튼 꿈에서도 '내가 뭔가 괜찮으니까 이 사람하고 데이트를 시작한거겠지' 하면서, 그가 그의 집에 가자는데 그래 그러자, 하면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초라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부자였으면..'
'저기 보이는 큰 집이 그의 집이었으면, 그 옆에 세들어사는 저 작은 집이 아니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의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가던 도중 알람이 울려 깼다.
아침에 출근준비하는데 이거 생각나면서 너무 웃기는거다. 아 너무 속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딱히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니 데이트 하는 중에 '초라해 보이지만 부자였으면..' 같은거 생각하다니, 너무 좋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람이 참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솔직하기 짝이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부자였을까?
그간 나의 연애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부자 아니었을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부자를 만난 적이 없다.
다 근근이 먹고 사는 사람들이였어...
인생이여.....
아니, 내가 근근이 먹고 사는데 다 비슷한 사람 만나는거지, 내가 부자가 아닌데 어떻게 부자를 만나냐. 부자는 원래 부자 냄새 맡고 다니는 거 아니었냐. 부자는 부자 만나겠지, 니가 부자냐 내가 더 부자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연애하겠지. 나는 근근이 먹고 살고 너도 근근이 먹고 살고... 내가 너보다 매달 십만원쯤 더 벌 수도 있겠지...
인생이여.....
아무튼 어제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이 너무 좋은데 아직 조금밖에 안읽었으므로 무슨 책인지는 빔!일! 와, 이거 읽으면서 좋아할 사람들이 여럿 떠올랐다.
'그는 약자였다. 위장의 노예였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크-
초반인데 너무 좋아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서 까페에 앉아 책에 집중하고 싶지만, 아아 나는 비루한 월급쟁이... 상사의 눈치를 봐야해. 사실 아까 반차 쓴다고 할까, 하였지만, 보쓰의 컨디션이 너무 엉망인것 같아서 입 꽉 다물었다. 퇴근때까지 열일해야지. 나는 근근이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며칠전에 친구가 내게 '우리가 좋아하는 여름이 왔어!' 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여름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여름이 갈 때마다 아쉬워한다는 걸 알고, 그리고 본인도 여름을 좋아해서 이렇게 자연스럽에 닥쳐오는 계절의 변화를 입밖으로 꺼내 얘기할 수 있다면, 아아, 얼마나 좋은가. 너무 좋다. 진짜 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