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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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었고 다시 읽을 거라 생각은 못했는데, 얼마전 친애하는 알라디너 분의 명품 페이퍼를 읽었다. 페이퍼에서는 소세키와 초등학생의 편지가 인용되어 있었다. 그 학생은 [마음]을 읽고 편지를 썼고, 소세키는 그 나이에 왜 그걸 읽었냐, 그 소설속 인물들 이미 다 죽었다, 생각하지 말아라 답장하고 있었다. 그 인용문을 보자 나는 '뭐라고? 초등학생이 읽었다고?' 하면서 이 책을 조카에게 읽혀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거다. 그렇지만 조카에게 읽히기 전 내가 먼저 읽자. 그렇게 사서 읽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읽으면서 조카에게는 읽으라고 주지 말고 여동생에게 보내야겠다 생각했다. 집에 이 책이 있는데 읽는 것은 조카의 선택에 맡겨야겠다. 나는 이 책이 초등 5학년 조카가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 는 우연히 휴가차 갔던 해변에서 '선생님'을 알게 되고 그 선생님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우정을 쌓게 된다. 선생님은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일을 하지도 않고 인간에 대한 애정도 딱히 없어 보이지만 나는 그런 선생님이 어쩐지 좋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가 편찮으셔 고향에 가있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약간 고민하던 와중 선생님의 긴 편지를 받게 되고, 그 편지에서 비로소 나는 선생님의 과거를, 선생님이 인간을 신뢰하지 않았던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된다. 선생님이 유서겸 남긴 편지가 이 소설 세부분 가운데 가장 마지막 부분이다.


이미 오래전의 소설이고 게다가 일본 소설인만큼 지금 읽으면 걸리적 거리는 부분이 아주 많이 나온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밥시중을 드는것부터 시작해서 대화중에 말끝마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여자라서', '여자인만큼', '여자니까'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거다. 그럴때마다 나는 이것은 오래전의 일본 소설이다, 라고 걸리적거리는 것을 무시하려고 애썼는데, 그런데 이미 내가 이런 필터를 가지고 있는 이상 노력한다고 그게 무시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간 나쓰메 소세키를 몇 권 읽어왔지만 딱히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만년만에 다시 읽어도 역시 내가 좋아할 순 없는 작가였다. 일전에 [한눈팔기] 를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그 책을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는데, 어제 이 책의 책장을 덮고, 잘 읽히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무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했다. 난.. 노동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애정을 가지지 못하는걸까.


각설하고.



그러나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제목은 '마음'이지만 나는 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하게 된거다.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속 한 단편에는 가정 폭력과 여성혐오 살인을 저지른 가족들로부터 빠져나와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이 그러나 자신이 바람 피운 것에 대해 너무나 죄책감을 갖는 장면이 나왔었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 틈에서 그런데 '내가 바람 피운 아버지를 닮아가는 걸까봐 너무 두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거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도 마찬가지.

세상은 온갖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고 비열하게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폭력을 저지르는 일들이 무수한 가운데, 그 사람의 죽음은 나의 비열함 탓일거라고 자책하고 남은 생에서 행복을 배제하는 사람이라니,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싶어지는 거다. 왜 어떤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악한 행동을 하고, 왜 어떤 사람은 내가 한 행동은 악이었고 거기엔 비열함이 있었고, 그것은 남을 괴롭게 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킬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거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그러다가 바로 이 지점이 나쓰메 소세키가 여전히 계속 읽히는 이유이겠거니 싶어졌다. 대체 인간이란 뭘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다가도 내 이해와는 정 반대의 지점에 머무르는 것 같은 존재.

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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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1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5-21 09:44   좋아요 2 | URL
타미가 자기 책장 한 칸 비었다고 저더러 채워달라고 전화했지 뭡니까! 그래서 저의 요즘 과제가 되었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잠자냥 2021-05-21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결국 다락방 님도 소세키와 같은 선택을 하셨군요.
˝초등학교 6학년인데 그런 것도 다 읽는군요. 그건 아이들이 읽어 봐야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니 그만 읽으세요.˝
저도 공감합니다. <마음>은 적어도 20대 이후에...

다락방 2021-05-21 09:45   좋아요 6 | URL
얼마전에 타미 주려고 [머시 수어레스, 기어를 바꾸다] 읽었거든요.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아이들은 인생의 흉한 일들을 알 필요 없단다. 앞으로 그럴 시간은 많아.
전에 할머니가 했던 말이다. 할머니는 오빠랑 내가 보는 책과 영화에 슬프거나 잔인한 내용이 나오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바보 같다. 아이들에게도 슬픈 일은 늘 일어난다. 기르던 개가 죽고, 부모가 이혼하고, 단짝 친구한테 버림받기도 한다. 비열하고 악랄한 문자메시지를 받을 때도 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P182˝


책을 선택하고 읽고 감상하는 건 모두 그 아이의 온전한 몫일텐데, 제가 이렇게나 걱정이 많습니다. 마음은.. 초등학생에게 좀 아닌 것 같아요. ㅠㅠ

잠자냥 2021-05-21 09:58   좋아요 4 | URL
저도 세상 살아가다 보면 상처받을 일도, 흉한 일들도 싫어도 맞닥뜨리게 될 텐데 굳이 어린 나이부터 알게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다락방 2021-05-21 10:36   좋아요 2 | URL
사람이 살다보면 상처받지 않을 순 없잖아요. 어떻게든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은 생길텐데, 궁극적으로는 상처를 받아도 이겨내고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아픔과 고통 우울함..이런건 최대한 나중으로 미룰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모나리자 2021-05-21 09: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최애 작가라 리뷰만 나오면 반갑네요!!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락방 2021-05-21 11:47   좋아요 3 | URL
나쓰메 소세키를 최애작가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바람돌이 2021-05-21 10: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너무 너무 오래전에 도련님 보고 그냥 접은 소세키!
잠자냥님이 꺼집어 내주셨는데 다락방님이 또 한번 안 맞는건 역시 안 맞다고....
제가 어떨지는 역시 봐야 아는거겠죠? ㅎㅎ
인간이 뭘까에 대한 대답을 알게 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책이 재미없어질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 인간이 뭔지는 너무 고민하지 않는걸로.... ^^

다락방 2021-05-21 11:49   좋아요 1 | URL
저도 도련님 봤어요. ㅎㅎ
제가 그러니까 마음, 도련님, 한눈팔기 봤고 마음을 재독한 겁니다.
저한테는 역시 그렇게 막 좋은 작가는 아닌데, 시간이 흘러 읽는다면 바람돌이 님께는 전과 다르게 다가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은 때로 아주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니까요.

인간이 뭘까에 대한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작품들이 인간이 뭘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함께 고민하는 것이 독자와 작가의 만남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책 너무 좋지 않나요?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 2021-05-21 1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간... 뭘까....에 대해 자주 고민하는 1인입니다.
착한 사람은 뭘 모르고 나쁜 사람은 끝까지 뻔뻔한 거 같아요. 제가 보기엔요. 착한 사람은 자기의 작은 실수에도 오래 괴로워하지만, 나쁜 사람은 다른 사람 죽여놓고도 피해자 탓을 하대요. 인간... 뭘까요....

다락방 2021-05-21 11:57   좋아요 3 | URL
뉴스를 봐도 인간이 도대체 뭔지 고민하게 되지만 이런 문학작품들을 봐도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것 같아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도 그리고 이 책의 나쓰메 소세키도 어떤 대단한 서사를 만들어낸 게 아닌데, 그저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일 가지고도 그런 것들을 고민하게 만들잖아요. 그런점에서 문학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런가에 대해 생각해도 답을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작은 해를 입힌 것으로도 괴로워하는 인간이 있고 죽여놓고서도 괴로워하지 않는 인간이 있는 것이요. 우리가 과연 인간이 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초딩 2021-06-05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라고 또 남기고 갑니다~ ㅎㅎ

다락방 2021-06-07 07:3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여기서 또 축하를 해주셨네요.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