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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불안한가》의 저자 '에바 일루즈'는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파리10대학교에서 사회학, 커뮤니케이션, 문학을 공부하고 히브리대학교 석사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으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아넨버그 스쿨 박사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이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공부 엄청 많이 했네.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한 에바 일루즈는 역시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프린스턴 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베를린 지식연구소 교수를 지냈다'고도 한다. 대단하다.
이렇게 공부를 많이한, 그러니까 엄청난 지식인인 '에바 일루즈'가 '엄마들의 포르노'라 불린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읽고 그것으로 현 상황과 인기를 끈 이유를 분석해 책을 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짜릿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일단 좋았다. 기존 지식인들이라면 B급이라 칭하며 읽지도 않고 까거나 무시할게 뻔할 책을, 에바 일루즈는 3부까지 모두 읽고 사람들이(사실은 여자들이) 이 책을 왜그리 많이 읽었나, 들여다보고 그걸 책으로 써낸거다.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책으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책이 문학작품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뛰어나야만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역시 아니다. 이 책이 왜 인기인지 알고 싶어 나도 출간 당시 사서 읽었더랬다. 1부만 읽고 더이상 읽기를 그만둔것은, 이 책을 읽는 내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2012년에 써둔 리뷰를 덕분에 오늘 찾아 읽었는데, 오, 제대로 정확히 잘 읽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1부만 보고 내가 판단한 것은, 링크된 리뷰를 보면 알겠지만, 젊은 여성 아나스타샤가 세계적인 대부자 그레이와 사랑에 빠지는데 이 놈은 SM..으로 주인과 종관계를 맺고 계약서를 쓰며 '사랑'이나 '연애'가 '아닌' 그저 섹스만을 추구하는 놈이라는 거다. 그러나 1부의 끝에서 그레이가 자신의 방식대로 아나스타샤를 섹스 도중 '때리고' 이에 아나스타샤는 고통스러워 하며 그의 곁을 떠나는 거다. 2,3부를 읽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 다음 내용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그레이는 아나스타샤의 방식대로 변화하게 되고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될 것이며 그들은 그 후 행복하게 살았다... 는 것.
책은 1부만 보고 말았지만, 영화는 다 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것도 극장 가서 봤어. 나랑 이 영화의 1부를 같이 본 친구는 결국 나랑 이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같이 보았는데, 마지막에, 누구나 추측할 수 있었던 뻔한 결말 그대로, 아나스타샤가 그레이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모습으로 끝을 맺는 것을 보면서, 그러면서 뭔가 친구와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아아, 이 기분 무엇????????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아나스타샤 나 같다... 생각하곤 했는데 도대체 왜그랬냐면, 생김새가 닮았기 때문이라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나 혼자 생각한다. 생긴게 꼭 나같네? 라고 늘 나는 생각하는 것..(사실이 아님)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여튼,
아나스타샤는 영화 1부에서 그레이한테 푹 빠져서 그레이가 원하는대로 해주고자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섹스 도중 자신을 때리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그녀는 아파하면서 울고, 그렇게 울면서 그에게 말한다. "이게 진짜 당신이 원하는거에요?" 그렇게 떠나가버리는 것.. 그렇게 사랑하지만,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나를 때리는 것까지, 그것이 섹스의 이름을 달고 있다해도, 용납되진 않는 것이다. 에바 일루즈는 자신의 책에서 한 여성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마조히즘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 자아는 고통을 피하려는 성향을 가진다. 그러나 마조히스트는 외려 고통을 찾아다닌다. 우리 자아는 모든 일을 통제하려 애쓰는 반면, 마조히스트는 통제를 당하려 한다. 우리 자아는 최고의 자존감을 세우려 노력하지만, 마조히스트는 자청해서 굴욕을 뒤집어 쓴다. -P.93, 재인용
위의 인용문을 가져온 뒤, 에바 일루즈는 마조히즘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마조히즘은 일종의 자발적 형태의 굴종이며 제 스스로 아픔을 감당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자존감과 자율성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의 향락적 주체와 극단의 대비를 이룬다. -P.93
내가 아나스타샤와 같다고 했던 지점은 그녀가 고통을 박차고 그를 떠났다는 데에 있다. 아나스타샤는 그레이가 너무 좋다. 그레이는 사랑 대신 섹스만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서도 그레이가 너무 좋다. 그레이를 사랑한다. 가급적 그에게 맞춰주려고도 했다. 그러나 나를 때리는데에 그 고통을, 그것은 맞아서 내 피부에 상처가 나는 육체적 아픔이 주는 고통보다는, 맞았다는 것에서 오는 자존감 하락에서 오는 아픔이 더 크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어 한다.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런데 나를 이렇게 바닥으로 내팽개치는 행위를 감당하면서까지 당신 옆에 있지는 않겠다는 선택. 바로 그 지점.
그 지점은 나의 사랑보다 나의 자아를 선택한 것일테다. 당신보다 내 자아, 사랑보다 내 자아.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면서 내 자아가 박살나? 그렇다면 떠나겠다. 세이 굿바이. 안녕-
그레이가 만약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그레이의 가슴 속에 사랑이 없었다면, 그레이는 아 이번 여자(아나스타샤)는 내 성적 취향과 맞지 않군, 아쉽지만 보내줄 수밖에...라고 했을 것이다. 마주 세이 굿바이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나스타샤와 그레이의 이야기는 더는 진행될 수도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의 가슴속에 샤라라랑 사랑은 생겨나버렸고, 그대를 알고부터 사랑은 시작되고 사랑을 알고부터 그대만을 느끼다보면, 어느 정도 상대에게 맞춰지기도 하고 내가 가지고 가려던 것들 중에 포기하는 것들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트라우마와 상처로 똘똘 뭉쳐져 있어서 사랑이나 연애를 할 수 없었던 우리의 (안잘생긴)그레이는, 아나스타샤를 다시 찾고! 아나스타샤의 바람대로 사랑이라는 것을,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되며, 심지어 아이까지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에바 일루즈는 이 지점들을 보고 분석해서 베스트셀러 원인중의 하나로 꼽아 놓았다.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바라는 바가 있고, 보고 싶어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내용이 여기 들어가 있었다는 것.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영화를 다 보았던 사람으로서 나는 이 부분에서 에바 일리즈가 휘두른 삼지창에 찔려버렸다. 나라는 인간의 모순됨을 나 역시 수시로 깨닫는 바, 에바 일루즈가 바로 그 지점을 지적해버렸기 때문이다. 아, 똑똑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
로이피(미국의 여성 작가로 뉴욕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기도 한다)는 『뉴요커』The New Yorker 지에 실린 대프니 머킨의 말을 인용한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 심지어 겉보기뿐인 평등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지만, 언제나 섹스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로이피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더더욱 흘려들을 수 없는 노골적인 불평, 곧 평등이 섹스 욕구를 퇴색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남녀의 평등은 그다지 섹시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평등을 존중하는 섹스는 협상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번거로운 절차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반면교사로 삼은 남자는 적극적이며 직접적으로 섹스를 주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니까 여성은 자신감에 넘치며 게임이라도 벌이듯 유려하게 접근하는 남성성을 갈망한다. -p.81-82
평등은 원래부터 혼란스럽다. 평등을 기본 전제로 깔면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갈등이 불거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등이 불안함과 애매함을 낳는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불평등을 편안하게 여기게 만드는 두 번째 측면은 권력관계를 보호관계로 바꿔주며, '자연스러운' 상호의존성과 강한 감정적 접착성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반대로 평등은 어떤 의무감도 낳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욕구와 권리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상대방과 갈등을 빚도록 조장한다. 불평등이 지닌 세 번째 편안한 측면은 역할 문제를 놓고 서로 협상을 벌이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다. 이로써 관계 당사자들은 좀 더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을 가짐으로써 골치 썩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보는 드라마 시나리오가 그려내는 사회적 역할을 보라. 고민하고 자시고 할것 없이 그저 감당하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지 않은가. -p.82-83
그러니까 바로 엊그제도 나는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요즘은 책읽기보다 영화 보기를 하고 있는데, 액션 영화를 보노라면 걍 세상 시름 잊고 화면만 볼 수 있어서 넘나 좋은 거다. 그렇게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찾아 보게 됐는데, 예전에도 보고 인상 깊게 기억하던 장면이 있었다.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에서 '이단 헌트(톰 크루즈)'가 아내와 헤어진 이유가 나온다. 정부 비밀 요원으로 살아가며 위험한 일들을 하다보니 아내까지 위험에 처하게도 했던 것. 이에 이단은 아내와 헤어짐을 결심하고 가끔 아내로부터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는 걸로 족하다. 멀리서 아내를 지켜보면서 아내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만족하는 것, 그게 이단의 사랑하는 남자로서의 역할인 것이다. 내가 오래전에도 이 영화 보면서 이 장면 너무 좋다고 썼을텐데, 이번에 보는데도 너무 좋은 거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게 진짜 자지러지게 좋은 거다. 이 장면을 좋아하는 나에게 나는 물었다. 그렇게 독립적이길 원하면서도 저런 거 보고 좋아하다니, 나라는 인간의 모순은 무엇? 자율적이길 원하면서 보호를 원하는것인가? 막 이런 내적 갈등이 찾아왔던 것이다. 하여간, 액션 영화를 봐도 이렇게 맨날 내적갈등 하고 그래? 세상이 주는 시름 잊자고 액션 영화 보면서 내 안에 시름 쌓아가는 나 무엇? 아아,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고민하는 동물인가.. 인생 무엇, 사랑 무엇, 보호 무엇, 자유 무엇..
아무튼 그런 감정을 느끼던 차에 에바 일루즈를 읽었고 에바 일루즈가 이렇게 평등을 바라지만 섹스에 있어서 불평등한 점을 바라기도 하는 모순에 대해 똭- 얘기를 해줘버린 것이야.. 인간이여...
그래서 나는 이런 놈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부장제를 갈망하는 태도는 페미니즘의 반작용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런 갈망은 여성이 지배당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감정적 결합을 갈구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물론 감정적 결합에는 피치 못하게 남성의 지배가 뒤따르기는 한다. 혹은 이런 지배를 드러나지 않게 숨기거나 교묘하게 정당화 하기도 한다. 마치 남성의 보호자 역할을 봉건체계로부터 떼어내 보호만 보장해주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어쨌거나 그 본질은 남성의 지배다. 다시 말해 오늘날 여성은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영역에서 남성의 지배와 직면해야만 한다. 물론 여성에게 낮은 신분을 강요하며 남자에게 보호의 의무를 안기는 봉건적 규칙이 사라지기는 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여성은 감정을 나눌 짝 혹은 배우자를 갈망하는 탓에 여전히 남성에게 휘둘리고 만다. -p.84
소설을 읽을 때 해묵은 페미니즘 물은 하나가 끈질기게 우리의 뇌를 파고들 정도로 그레이는 철저하게 보호 역할을 감당하려 노력한다. 작품 자체도 명시하고 있듯, 그가 보이는 '보호'라는 강박관념 뒤에는 혹시 일종의 통제 욕구가 숨어 있는 것 아닐까? 비록 아나는 그레이를 거듭 '통제광'이라 표현하지만 정작 그가 보호자처럼 구는 것은 물론, 자신이ㅡ 소유임을 과시하는 ㅔ스처를 갈망하는 쪽 역시 아나 자신이다. 그리고 점차 아나는 자신이 지배닿아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지배받으려는 갈망은 아나가 자율성을 열망하는 것과 나란히 가는 여성성의 또 다른 측면이다. 물론 남성이 지배해주며 이끄는 섹스를 바라는 여성의 태도가 곧 사회적으로도 남성이 지배해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같은 것은 아니다. 다만 역할 문제를 협상하지 않아도 좋은, 그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함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섹스를 하고 싶은 것일 따름이다. -p.86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에바 일루즈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바라고 좋아하면서 읽는 사람이 그토록이나 많다는 것을 보니, 아, 세상에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이성애에 뭔가 다들 미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이성애자이면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사랑해주고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줄 상대를 고대하다보니, 그것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인 이 소설이 잘 팔려나가버리게 된것이다.
에바 일루즈는 이 책에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대한 언급도 하는데, 나는 에바 일루즈가 이 책을 쓴 것도 너무 좋고 이 책을 읽으면서 흥분을 하기도 했지만, 에바 일루즈가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 결이 다르다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갈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사회현상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내 역할은 분노..인 것이구나, 싶은 거다. 만약 내가 《여자는 인질이다》, 《포르노랜드》,《포르노그래피》,《포르노에 도전한다》등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도 에바 일루즈의 이 책을 내 성서처럼 받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여자는 인질이다, 라는 책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만큼 팔리거나 읽혔다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이토록 흥행할 순 없었을 것 같다. 사랑에 미치고 연애에 미치고 완벽한 남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원하는 게 아닌, 그래야 한다는 것을 꾸준히 학습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소설에서, 우리는 어떤 남자가 멋있는지 그리고 어떤 여자가 남자들로부터 사랑받는지 보아 오지 않았던가. 내 환상의 어느 지점들, 아니 대부분의 지점들은 바로 그런것들로부터 생겨났을 것이며 또 고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에바 일루즈가 분석한대로의 이유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만든 것 역시 그동안의 세상이, 우리가, 대중매체가 한 일이라는 거다.
여자는 남자가 보호해준다는 데에 감격해서 애초에 보호가 필요한 이유가 남자의 폭력 때문이라는 점을 잊는다. -《여자는 인질이다》, 디 그레이엄, p.190
위의 문장을 가져오고 나니, 어제 보았던 영화 <스노우맨>이 생각난다.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하도 오래전에 읽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연쇄살인범이 불륜을 저지른 여성들만 살해한다는 것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레베카 퍼거슨' 나오는 영화 보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스노우맨이 이미 몇해전에 개봉했다는 걸 알고서는 부랴부랴 다운 받아 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보고 싶었떤 것은 레베카 퍼거슨의 액션이었던 바, 그런데 해리 홀레 말고 여자가 액션을 보였던가? 아니지 않았나? 하면서 보게되었고, 내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고... 아, 그전에 내용을 다시 언급하자면,
영화에서 연쇄살인범의 어린 시절이 보여진다.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어머니는 유부남과 불륜관계인데, 이 유부남은 이 아이에게 결코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하고 폭력적이며 심지어 이 여자랑 아들을 버리고 가버린다. 이에 엄마는 상심해 자살을 하고, 이 자살을 아이가 목격한 것. 이 때부터 아버지없이 살게 만드는 엄마들, 아이를 내팽개치는 엄마들 혹은 여자들에 대한 증오감이 이 아이 안에 폭발해서, 그런 여자들만 골라 살해해버리는 거다. 이에 해리 홀레는 그 범인과 격투를 하면서 말한다.
"널 버린 건 네 엄마가 아니야. 네 아버지지."
그렇다. 홀어머니와 살고 있었다면, 친아버지가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면, 그 아버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애초에 홀어머니랑 살게 둔 그 아버지, 그 아버지는 어디에 있냔 말이다.
가끔 우리의 원망과 분노는 가야할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데, 제대로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분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 스노우맨이 복수하는 대상은 잘못되었다. 그런데 책에서도 이런 말이 나왔었나? 그걸 모르겠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책이 워낙 두꺼운터라 엄두가 안난다. 패쓰.
그래, 레베카 퍼거슨에 대해 얘기하자, 레베카 퍼거슨.
그러니까 미션 임파서블 연달아 두 편에서 레베카 퍼거슨이 대단한 액션을 보여주는 거다. 와, 너무 좋아. 공중에서 막 사람 목을 다리로 휘감아 쓰러뜨리고 그러는데, 아마도 이것이 이 여배우의 장기인가 보았다. 그런 장면이 두 편 다 나오는데 진짜 세상 멋져. 아아, 나는 이 여자의 액션을 좀 더 보고싶다? 하고 검색해보니 스노우맨이 나왔고 스노우맨이여... 레베카 퍼거슨을 이렇게밖에 쓸 수 없습니까? 이게 전부야, 이렇게 써야 해, 이 배우를? 이 엄청난 액션 파워 가지고 있는 배우를 고작.. 하아- 슬프다 슬픔의 새드니스..
그렇지만 레베카 퍼거슨의 영화가 더 있으므로 더 보기로 하자. 세상의 감독들아 레베카 퍼거슨 이대로 두지말고 액션에 데려가라, 액션에!! 레베카 퍼거슨을 이렇게 두지 말란 말이닷!!
미션 임파서블에서 이단은 일사(레베카 퍼거슨)와 자주 업무 때문에 마주치면서 그녀를 소중히 생각하게 된다. 이에 이단의 동료인 '루터'는 일사에게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단은 당신을 아껴요' 라고 말하면서 '그러니 이 작전에서 빠져요'라는 거다. 이단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 소중한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임무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일사는 스스로 강한 사람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인지라 그런 말 때문에 오 날 아낀다니 땡큐, 난 그렇다면 조용히 빠질게, 라고 하지 않고 임무에 뛰어든다. 일사, 액션 계속 보여주세요.
저 대사를 보고나서부터 '아낀다'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아낀다, 아낀다라.. 나는 누구를 아끼나, 나는 무엇을 아끼나. 아낀다는 말을 들어본 게 너무 오래된 것 같은 거다. 누가 나를 아끼나, 아낀다라는 감정 너무 좋고 소중하네. 혹여라도 감정이 몽글몽글해지는 날이 온다면 그렇게 만드는 상대에게 물어봐야겠다. "날 아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간질거리는구먼 간질간질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에바 일루즈 덕에 나는 사랑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보기로 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뭔가 공부할 게 생기면 관심가는 게 생기면 일단 책부터 보게 되지 않는가. 나 역시 그런 사람1이다. 그렇게 나는 에바 일루즈의 책을 사러 간다. 슝-
이 페이퍼는 오늘 아침 들은 노래로 끝맺겠다. 완벽하다.
되도록 여성에게 거리를 두고 감정을 희롱하며 상처를 안기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디스트는 결국 상처를 입힐 대상, 곧 여성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게 바로 사디즘 패러독스다. "우리는 우리 욕구의 대상이 곧 우리 의지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러자면 대상은 곧 주체여야만 한다. 다시 말해 우리와 똑같은 자율적 의지와 욕구를 갖는 주체만이 욕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인간은 오로지 독립적 인격을 갖는 주체만을 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에 우리는 이렇게 덧붙일 수 있다. 오로지 자율적 주체만이 욕구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직 그런 주체만 우리에게 ‘아, 저 사람 정말 갖고 싶구나!‘ 하는 감정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P65
그레이의 숱한 사랑 고백에 아나는 이렇게 반문한다. "내가 당신 말을 안 들어도?" 그레이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이 내 말을 안 들으니까, 아나스타샤."(3부 1권 71쪽) 여자를 지배하고 ‘서브‘, 곧 노예로 만들려는 시도로 시작된 관계는 ‘인정을 얻어내려는 투쟁‘으로 발전한다. 끝없이 말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돔‘은 ‘서브‘의 의지에 굴복한다. 약자가 결국에는 진짜 강자로 입증된다는 속담이 떠올려지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돔‘은 자신의 권력의지를 포기하고, 그 대신 ‘서브‘의 인정에 목을 맨다. "참 다루기 힘든 사람이군, 스틸 양."(1부 2권 75쪽) 그레이가 여러 차례 사랑을 듬뿍 담아 하는 말이다. 우리의 욕구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타인의 자율성이다. 우리는 자율성을 자랑하는 사람을 욕구한다. 그리고 우리의 욕구는 다시금 타인의 욕구를 이끌어낸다. - P67
많음 여성 학자가 보기에 통속소설 가운데 마조히즘을 미화한 작품은 결코 적지 않다(『O 이야기』는 물론이고 히치콕이 영화화한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작품은 여성으로 하여금 희생자 역할을 긍정하고 내면에 새기게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미셸 마세(미국 루이지애나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0는 여성이 이런 장르의 소설을 읽으며 장차 남성과 맺게 될 섹스와 감정 관계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아픔을 미리 연습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소설문학은 여성 독자에게 남녀 사이의 관계가 갖는 아픈 요소를 허구 세계의 쾌락적 요소로 바꿔버림으로써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준비하게끔 돕는 게 된다. 그렇다면 마조히즘은 사랑의 조건이나 변태적 섹스가 아니라 사회가 지어낸 일종의 장치다. 이 장치는 여성으로 하여금 회피해야만 하거나 가질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하면서 생겨나는 아픔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를 감내하는 법을 배우게 만든다. - P94
이 소설(『O 이야기』)이 페미니즘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더욱 직설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이 작품은 여성이 처한 불편한 사정을 가감 없이 폭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곧 여성들이 사랑과는 무관하게 거침없는 성적 쾌락과 욕구를 오로지 굴종과 복종이라는 상태에서만 체험하게 될 수 있다는 고발로도 읽을 수 있다. 마조히즘을 그 논리적 귀결, 곧 ‘O의 죽음‘까지 몰아가면서, 이 작품은 욕구의 주체인 여성을 파괴하는 것이 이성애 사랑의 핵심이라는 점을 무의식중에 폭로한다. 아무튼 『O 이야기』에서는 자기의식 말살, 마조히즘, 사랑이 하나의 유일한 연속적 연결고리를 이룬다. - P97
‘그레이 시리즈‘는 조악한 문학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허구와 진실 사이의 구분‘을 넘나들면서 오늘날 우리의 성생활과 애정생활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 P113
소설이 아나를 보호하고 소유하겠다는 그레이의 희망에서 촉발된 수많은 행동을 묘사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 보호에 커다란 의미를 두고 있다는 반증이다. 보호받고 싶다는 희망과 안정적인 감정 결속을 이루고 싶다는 갈망은 오늘날 많은 여성이 페미니즘에 갖는 반감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페미니즘은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허물고자 노력하면서 양성관계를 바꿔놓았다. 그러나 그 수혜자여야 할 여성이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고 이중적 감정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페미니즘 혁명이 미완의 것으로 남았다는 반증이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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