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라니, 내가 얼마나 끌릴만한 주제인가. 이 책 출간되지마자 사뒀다가 이제야 읽었는데, 어쩌면 그 당시에 읽었다면 달랐을까. 지금 읽는 이 책는 그렇게까지 좋진 않았다. 이 책속의 인터뷰이들, 여성 지성들의 대화들에도 전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저자인 안희경의 생각들이 어느 부분에서는 나랑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어서 좀 불편하기도 했다. 생각이 다른거야 어쩔 수 없다. 나는 당신이 아니고 당신도 내가 아니니. 그러나 세상을 보는 눈이나 관점, 기준이 나랑 다르다고 해도 만약 내 친구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하면 나는 아마 그 친구를 '이런식으로 나랑 관점이 다르다니 절교하겠어' 하진 않겠지만, 이렇게 모르는 사람의 책으로 보는 것은 좀 불편한 지점이 있더라.
'케이트 피킷'의 얘기를 좀 더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국민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다는데, 일전에도 어딘가에서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감기에 덜걸린다는 연구결과를 보았던 터라, 아주 흥미롭게 읽힐 것 같은거다. 케이트 피킷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 책 덕분에 궁금해졌다. <오늘부터의 세계>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사야 할 때가 왔는가.. 무엇보다 <불평등 트라우마> 궁금하다.
'에바 일루즈'야 말로 이 책에서 보고 오오 궁금해 궁금해 하고는 얼른 책들을 검색해 장바구니에 넣었다. 자본주의와 사랑에 관해 많은 책을 쓴 것 같은데, 아아 너무 궁금하다. 이스라엘 헤브루대학 사회학과 교수이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책임자, 모로코 태생. 아아 이 다양함은 무엇인가. 모로코, 이스라엘, 프랑스.. 검색해보니 다 읽고싶게 생긴 책들만 있다.
'심상정'이 정당에 대해 가진 생각을 읽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얻은 커다란 수확이다. 멋져.. 만약 여성의당이 없었다면, 그런데 내가 당원이 되기를 선택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책의 심상정 때문에 정의당을 선택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정당은 시민혁명을 통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시민이 한 번도 왕의 목을 쳐보지 못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정당을 처음 만든 주체는 바로 국가예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민주주의를 하려면 정당정치가 되어야 하니까 정당을 만든 거죠. 국가 파생 정당으로 탄생한 겁니다. 그런데, 당이 하나만 있으면 독재가 되니까 그 반대당도 만들었어요. 대한민국 양당 정치의 기원입니다. 유럽처럼 그 사회의 가치나 국가 비전을 놓고, 이념과 노선 논쟁을 해가면서 지지를 획득해온 현대적인 정당 체제가 아니죠. 그래서 우리 정치는 늘 반대 정치였습니다. 여야만 존재했지, 서로 다른 이념과 노선이 제시되지 못했어요. 결국 지금 보수와 진보라는 구도도 냉전 체제 이념 대결의 지형을 따라 나뉜 거라고 봅니다. 친북이냐 반북이냐, 친미냐 반미냐 하는. -심상정, p.174-175
주권자의 삶을 이해하고, 비전을 제시함을써 지지 기반을 갖추고, 이념과 노선을 갖춘 정당 체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만든 정당과 그 반대당으로 출발해서, 오히려 시대 변화와 국민의 요구를 포획하는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심상정, p.175
많은 국민이 정권이 바뀌어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액면가 정책으로 보면 많이 비슷한데 왜 정의당은 정의당대로 따로 정치를 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국가 비전이 다르다고. 우리는 개별적인 낱개의 복지 정책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선택으로 복지국가 모델을 우리의 미래로서 선택하고자 하는 정당입니다. -심상정, p.177
유럽 사람들은 노동당이나 시민당이 집권했을 때 어떤 정치가 펼쳐지리라 예상합니다. 이들의 가치나 비전이 무엇이고, 현안에 대해서 어떤 정책이 나올지를 짐작할 수 있죠. 물론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정책이 더 구체화될 수는 있겠지만 대략적으로 방향성을 알기에 유권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당 체제는 이념과 지지 기반을 갖춘 정당 체제가 아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캠프 정당 체제예요. 예측이 불가능하죠.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 국가에 대통령 후보 한 사람 때문에 쪼개졌다 붙었다 하는 정당이 있습니까? 없어요. 물론 최근 프랑스에서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지만, 유권자들이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건 맥락적으로 사회·정치적 변화과정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국민의당이 왜 존재할까요? 안철수 씨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만든 겁니다. 민주당과 어떤 이념적 차이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거 아니겠습니까? 안철수 씨가 대통령이 되려면 보수 주자가 되어야 하는데, 자기 기반은 호남이고 이 지점에서 문제가 어그러지니까 정권을 잡는 데 실패한 겁니다. -심상정, p.179
정치학자들은 정당을 일러 민주주의의 한 요소가 아닌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부릅니다. 민주주의의 동력이죠. 그런데, 대한민국은 국가 파생 정당으로 출발해서 아직까지 캠프 정당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우리나라 정치가 불신받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정당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엔진이 고장 나서 민주주의가 힘 있게 못 가는 거죠. 핵심은 정당입니다. 저는 정당에 대한 매력 때문에 정치를 합니다. -심상정, p.180
심상정 부분에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가장 많이 고개를 끄덕였다면, 놀랍게도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게된 건 '반다나 시바' 였다. 이 책을 내가 살 때만 해도 나는 리베카 솔닛과 마사 누스바움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장 기대했었고, 그 둘을 읽기 위해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 펼친 이 책에서 리베카 솔닛과 마사 누스바움은 내게 큰 인상을 주지도 못했고, 이제 그들에 대한 애정도 예전에 비하면 좀 작아진 것 같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변하고 나도 변하니까.
'반다나 시바'는 내가 2020년에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 《에코 페미니즘》으로 한 번 만났던 여성 지성이다. 그 책을 읽을 당시에도 그랬다. 그 책이 내가 평소 관심있어 하는 분야도 아니었고 읽으면서도 다른 책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책이 너무 가슴에 남는 거다. 나는 아마도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것이 더 나은 환경이라는 보장이 없다', '왜 개발을 절대선이라 생각하냐'는 그 책이 말하는 바가 인상깊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반다나 시바를 읽는데 자꾸만 내 앞에 푸른 자연이 보이는 거다. 자신이 먹을 것을 자신이 일궈가며 살아가는 삶. 누군가가 드러내는 혹은 보여주는 삶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소비를 하게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몸을 위해 그리고 그 몸이 살아갈 건강한 환경을 위해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일이, 이렇게나 나랑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일이 이상하게 마음을 끄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꿈꾼다는 데 나의 아버지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몰락이라 여기시는 분이시다.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혼자 사는 사람을 보면서도 그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본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저기에서 혼자 행복할 리 없다, 는 것이 나의 아버지 생각. 아빠,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 저 사람은 괴로운 삶을 살다가 저렇게 혼자 살면 행복할 수 있지, 라면 아니라고 우기시는 거다. 나는 그런 아빠를 닮아서인지 도시를 사랑한다. 도시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여행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광활한 자연이 나오면 우와, 멋있다, 하고 타자화 할뿐,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도시다. 윽, 저런데 멋있지만 보면 웅장하겠지만 나는 도시로 갈래, 하는 것이다. 내가 편리성에 길들여져서 그런건지, 방광이 유독 약해서 그런건지... (응?)
그러니까 나는 도시러버인데, 어째서 반다나 시바의 말은 들을 때마다 나를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눈앞에 풍경을 그리게 하는걸까?
과학은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영어 단어 science 는 '안다'는 뜻을 가진 scio라는 말에서 왔어요. 제게 있어 앎의 의미는 열정이에요. 저는 무지한 채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구가 작동하는 원리를 알고 싶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싶고, 사람들이 권리를 더 잘 행사할 길을 알고 싶어요. 그래서 지구를 파괴하고, 삶을 파괴하고, 1995년부터 30만 명의 인도 농부를 자살로 몰아간 그 사람들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겁니다. -반다나 시바, p.199
모든 경제가 디지털화되면서 거대 자본은 공공재인 화폐 사용을 막고 카드를 쓰게 함으로써 거래마다 금융회사로 이윤이 가도록 만들고 있죠. 이는 공유경제가 아니에요. 정보만 공유하는 것뿐입니다. 우버 택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그램에다 택시를 예약하는 플랫폼이죠. 자동차를 나눠 쓰는 게 아니라, 예약 정보만 재화가 되어 공유되는 겁니다. 자동차가 재화가 되어 우리가 사용자로서 공동의 풀을 갖고 공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대료를 걷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을까요? 금융과 디지털 회사를 소유한 사람들이 왜 새로운 억만장자로 등장할까요? 모든 디지털 거래에서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입니다. 차를 운전하지도 않은 사람이, 예약이 발생할 때마다 따박따박 돈을 거둡니다. 그들에게 고용된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들로부터. -반다나 시바, p.216
반다나 시바는 1952년 인도 북부 데라둔에서 태어났고, 캐나다 궬프대학에서 과학철학으로 석사학위를, 웨스턴온타리오대학에서 양자이론 연구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핵물리학자였으나 물이 풍부했던 고향 마을이 불모지로 변하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생태주의에 입각한 환경운동에 헌신해왔다. <반다나 시바 소개, p.237)
양자이론 연구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핵물리학자였던 사람이 유기농 농업에 힘을 쏟고 있다. 농부들의 편이 되어서 세상과 싸운다. 그리고 그 먼곳에서 자신의 말을 통해 이곳에 있는 나를 자꾸 멈추게 한다. 왜 공부한 것과 다른 삶을 선택했을까, 그녀를 움직인 동력, 그녀가 보는 세상에 대한 가장 우선순위는 뭘까, 그리고 나는 이렇게나 도시를 사랑하면서 왜 그녀가 그려내는 농업에 대해 자꾸 눈앞에 그려보는가. 반다나 시바,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올해, 반다나 시바를 더 읽어봐야겠다.
자연스레 2021년에 접근할 여성 지성의 목록이 채워졌다. 내가 작년부터 관심을 갖던 한나 아렌트에 대한 책도 계속 읽을 것이고, 2021년에는 새로이 반다나 시바, 에바 일루즈, 케이트 피킷을 추가한다.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아, 얼마나 멋진 말들을 해댈까. 2021년에는 책을 좀 사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역시 .. 그럴 순 없을 것 같아.
성경읽기는 오늘로 8일차가 되었고 완료했다. 막장 드라마 보는 기분이 들어서 매우 괴로웠다. 나는 평소에도 드라마를 잘 보지 않고 게다가 막장 드라마라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것이 결코 편하지 않았다. 그간 피해왔던 막장 드라마를 성경 안에서 다 만나는 것 같은 거다. 도대체 왜이래, 왜이래, 조금씩 읽어도 가슴이 답답해져오고 욕을 이천번씩 하고 싶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성경이라더니 이야기 다 왜 이모양이야, 하다가, 어느 순간 그러나 성경 속의 등장인물들이 인간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성경 안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완벽한 인간이 아닌, 불완전한 인간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성경에서도 그걸 드러내는 것이다, 라는 마음을 먹고 읽으려고 한다. 그래, 자세를 그렇게 가다듬자. 불완전한 인간들을 보면서 신이 어떤 것들을 말하고 행동하는지, 그래서 인간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아마 성경은 그런 걸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스스로 다독이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읽기가 넘나 괴로워..
그러다가도 오늘 읽는 부분에서 이삭이 자신의 아내 리브가를 혹여 그녀의 미모 때문에 자기에게 어떤 해를 입힐까 두려워해 누이라고 속이고 다닌 일을 보는데 또 딥빡이 왔다. 누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여자로 접근하게 하는 일은 그들을 죄인으로 만드는데, 와, 지 아비가 했던 일을 이리 또 하나.. 하면서 또 가슴을 쳤다. 성경에 적힌 것들은 우리 엄마 얘기로는,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거기에 대한 해석을 해주는데 그러다보면 다 이해가 된다는 거다. 나는 신앙인이나 종교인으로 교회 안에서 해석을 읽는게 아닌, 내가 읽고 내 스스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아마도 괴로움이 더한거겠지만, 오늘도 그렇게 가슴을 치면서 아아, 불완전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성경 바깥인 지금 여기도 불완전한 인간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하고 있다. 그렇게 여전히 창세기인데 요한계시록까지 어떻게 가나.. 잘 갈 수 있겠지... 그래.....
여행 프로그램을 볼 때 먹고 싶은 것이나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반다나 시바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일들이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중의 하나이기도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하면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반다나 시바를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반다나 시바 부분을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살자, 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살아, 라고 상대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들어봐, 반다나 시바는 이런 행동을 하고 있어, 이렇게 생각한대' 하면서 읽어주고 싶어졌다. 내가 읽어주고 상대가 들었을 때, 그 후에 우리의 삶이 극적으로 아니 조금이라도 변화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고 상대와 반다나 시바의 생각과 행동과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알고 싶은 것이 자꾸 많아지는 것, 관심을 갖는 것이 늘어나는 것은 삶을 지속하는데 번번이 마땅한 이유가 되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