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이해하려는 의지가 더 크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막상 나에게 그 일이 닥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무리 그 입장이 되어보려고 해도 나라면 안 그럴 것 같은데, 하는 그런 일들.
'루시아 벌린'의 《내 인생은 열린 책》을 읽고 있다. 아주 짧은 단편들의 모음이라 수월하게 읽고 있는데, 아, 루시아 벌린은 작게 한 방이 있는 작가구나,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지하철안에서 읽은 단편은 <아내들>인데, '아내들'이 왜 '아내들'인고 하니, 정말 '아내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남자의 아내들. 하...
맥스 라는 남자의 아내였던 '데카'와 현재 아내인 '로라'가 앞으로 아내가 될 '카밀' 얘기를 하고 어쩌면 맥스와 근친상간 관계일 누나 '세라' 까지. 한 남자가 혹은 한 여자가 여러번 결혼하는 건 당연히 죄가 아니다. 그러나 맥스는 데카에서 로라에게 갈 때, 로라에서 카밀에게 갈 때 한 번도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은 적이 없다. 그냥.. 눈맞아서 달아나버려. 이야기속의 주인공 '로라'도 맥스가 데카의 남편이었을 때 만났는데 맥스랑 도망가버리는거다. 그러더니 지금은 맥스가 카밀을 찾는대.
로라와 데카는 한 남자를 시간차는 있을지언정 공유했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여자에게 뺏길 참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현재 데카와 로라는 언니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낸다.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둘다 아직도 맥스만한 남자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 윽. 아마 그런 남자 또 없습니다....의 바로 그 지점에서 맥스는 또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또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게 가능하겠지. 맥스는 데카가 젊었을 때 데카를 만나 함께 살았고 그러다가 젊은 로라가 나타나 함께 살았고 이제 다시 젊은 카밀이 나타나... 내가 이 아내들중의 한 명이라면 아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까지는 뭐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다고 하겠지만(그러고 싶진 않다), 그 남자를 '그런 남자 또 없습니다' 하면서 내내 사랑하고 그리워할 순 없을 것 같다. 그의 다른 아내이든 혹은 내 친구이든 누구에게든 개새끼지..쓰레기같은 새끼...... 사랑과 인내와 신뢰를 저버리는 씨방새...라고 할 것 같단 말이야? 그의 다정함과 그의 섹스..가 이 아내들에게는 치명적이었나보다. 그렇다고 해서 도대체 얼마나 치명적이길래, 나도 알고 싶다 같은 마음 절대 1도 안생기고.... 게다가 로라는 앞으로 맥스 부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데, 이 인류애는 대체 뭔지 모르겠다.
일전에 친구와 우리의 현재 애인과 헤어지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나는 친구에게 '이사람이 다른 사람 만나서 나한테 한것처럼 한다는 걸 상상하면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라고 얘기했었는데, 친구 역시 내게 그랬다. '나도 그 생각하는데. 이 사람이 다른 사람 만나서 이럴거 생각하면 잠이 안 와.' 라고. 지금은 우리 둘다 헤어졌으니, 아마 우리 둘의 전애인이었던 사람은 어디가서 우리에게 했던 걸 그대로 하고 있겠지. 아니면 더하거나. 인생...럽...라이프....인간은 왜 사는가...우리는 왜 사랑하고 사는가...사랑이란 무엇인가.....인생이란 무엇인가.......인생.....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
로라와 데카는 한 남자를 사랑했으므로 그 한남자의 다정함이나 섹스를 똑같이 경험했다. 으 싫어.. 로라와 데카는 만나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맥스와 새로운 그의 아내될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낼지에 대해 같이 상상한다.
"말 좀 해봐, 아카풀코에 있는 그들을 생각하면 진짜로 기분이 어때? 상상해봐. 지금 해가 지고 있어. 해가 초록빛 점으로 변하며 사라지고 있어. <해가 뜨거워질 때>가 연주되고 있어. 색소폰 소리가 고동치고 마라카스 소리가 섞이고. 아니, 음악은 <계피색 피부>로 하지. 그들은 아직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 여자는 일광욕과 수상스키로 하루를 보낸 뒤 땀을 빼는 에로틱한 정사를 치른 터라 곤히 잠들어 있어. 맥스는 여자의 등에 딱 붙어 자고 있고. 그러다 여자의 목에 키스를 하고 몸을 구부려 귓불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호흡을 불어넣는 장면을 상상해봐." (p.48)
맥스의 아내였던 데카가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자 로라는 아아...
로라는 새로 따른 술을 옷 앞자락에 흘렸다. "맥스가 언니한테도 그랬어?" 데카가 술을 닦으라고 수건을 건넨다. (p.49)
이게 뭐야 ㅠㅠ 너무 싫잖아. ㅠㅠ 에로틱한 정사라든가, 등에 딱 붙어 잔다든가, 목에 키스라든가, 귓불을 입에 넣고..같은거는 전형적인 섹스의 코스이므로(응?) 굳이 맥스가 아니어도 뭐 누구나 다 했을 법한 것들이긴 하지만, 아아, 굳이 '언니한테도 그랬어?'를 왜 물어. 와 진짜 강철심장이다. 그걸 어떻게 버티려고. 내가 짐작하는 거랑 실제 아는 건 그 충격의 크기가 다르다. 나 역시 저런 상황에서 속으로는 아아, 나한테만 그런건 아니구나, 라고 짐작은 당연히 하겠지만, 그렇다고 '너한테도 그랬니'를 물어볼 것 같진 않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의 나를 감당할 수가 없어. 물론 내가 맥스를 아직 사랑한다는 가정 하에 그렇다. 지금은 정나미가 떨어져서 개노므시키 .. 같은 감정이라면, 으윽, 언니한테도 그랬어? 어휴, 내가 그때 왜 걔랑 섹스했지, 진짜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다..같은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저렇게 물으니 우리의 데카 언니가 뭐라고 답했게요?
"이 양동이 궁둥이야, 세상에 너만 귓불이 있냐?" (p.49)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데카언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 쓰러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쵸, 귓불... 나도 있고 언니도 있고... 그러니 맥스... 내 귓불 물었다가 언니 귓불 물었다가 이제는 어딘가에서 다른 여자 귓불 물고 오물오물.....................
그만두자. 슬픔이여..슬픔의 새드니스... 비오네. 이 비는 하늘이 내 대신 흘려주는 눈물인가........ 나의 슬픔은 네가 대신 표현해주나. 하늘이여, 비여, 슬픔이여, 바다여, 강이여............. 그리고 귓불이여.................저도 귓불..참 좋아하는데요. 귓불....................누구에게나 성감대는 아닌 곳....................귓불..............그렇지만 나는 아랫배가 저릿저릿 해지는 곳...........귓불이여..............................비오는 날엔 섹스가 좋지........
너는 지금 어디에서 누구의 귓불을 물고있니. 아니, 생각해보니 그럴것 같진 않구나. 너는 귓불을 무는 사람은 아니었지...너는 귓불을 좋아하지 않았어.................넌 어딜 좋아했니? ........................그만두자, 이런 얘기.................
그런데... 나 슈리브포트에 아파트 있다?
피곤하구나.
오늘 저녁엔 피자를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