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요가 영상을 보았다. 화면속 요기니는 서서 후굴 자세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점점 뒤로 접다가 양 팔을 들어 뒤의 벽에 양손을 댔다. 그렇게 천천히 벽을 타고 내려가면서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완성하더라. 보통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는 누운 상태에서 팔을 머리 옆에 대고 하체를 이어서 상체와 머리를 들어올려 완성하기도 하는데, 내가 화면속에서 보는 요기니는 서서 완성하고 있었다. 요기니가 서있는 앞과 뒤가 모두 벽이었고 그 사이가 좁아서 아마도 안정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던 것 같긴한데,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내가 못하는 아사나인만큼, 저렇게 서서 뒤로 넘어가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었다. 참고로, 우르드바다누라아사는 바로 이 자세.
2월부터 요가센터를 가지 못하고 있고 이번 해에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성공시켜보자는 내 작은 목표는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집에서 틈날 때마다 누워서 내 머리를 들어올리려고 하는데 절대, 네버 들어올려지질 않는거다. 지난 주말에는 여동생네 가족이 왔었고 그래서 또 시도하면서 이거봐, 머리가 절대 안들려, 절대, 했더니 여동생은 복부에 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맞아, 내가 배에 살만 많지 힘은 없어...하고 시무룩하는데, 열한살과 여덟살의 조카들이 응? 그거 안돼? 하면서 갑자기 누워서는 번쩍번쩍 자기들 머리를 드는 게 아닌가! 야, 니네 뭐야, 니네 왜 연습도 없이 그게 돼? 했더니 여동생은 아이들은 유연해서 더 하기 쉽다는 거다. 조카들은 이게 이모 왜 안되냐고 내게 자꾸 물어서 나는 대답했다.
"이모가 머리에 되게 든게 많아서 그래. 똑똑해서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안들려."
조카들은 내 말을 무시하고......
각설하고,
내가 요가를 2년간 하면서도 사실 할 수 있는 아사나가 거의 없다. 그나마 되는게 나무자세랑 낙타자세인데, 낙타자세에서 잘하면 우르드바다누라 아사나를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낙타자세를 취하고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시도하려는데 영 팔이 뒤로 뻗어지지도 않고 어떤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아..이내 포기했는데, 그때 아, 이럴 때의 나를 봐주는 선생님이 있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후굴로 접근해 자세를 완성한다거나 낙타자세에서 완성할 때, 그렇게 하고자 할 때 누군가 옆에서 봐주면서 어 팔에 힘을 더 줘, 배에 힘 줘, 팔 더 내려와, 괜찮아 더 내려갈 수 있어, 같은걸 코치해준다면 나는 성공에 더 가깝게 가지 않을까. 내가 얼마만큼을 하는건지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건지, 혼자서 시도하면 언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 문제점 파악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파악 자체가 느리고 굼뜰것 같은거다. 이런 점에서 스승은 필요한거구나,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잘 나아갈 수 있을텐데 싶은 거다.
여성학에 대해서도 그렇다. 지금까지 80권 이상의 여성학 책을 읽어왔고 또 여러차례 강연도 들었더랬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대학원 생각도 해보게 됐었는데,
1. 등록금
2. 체력
이 두 가지가 너무 앞을 가로막는다. 사실 세번째 이유도 있는데, 그건 '내가 아무리 대학원 가서 공부한다고 해도 정희진쌤처럼 되겠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해지고 있다. 최근에 정희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학 선생님들의 글을 읽다가도 삐끗하게 되는 부분들을 맞닥뜨리는 바, 정희진처럼 되는건 불가해도 나는 그냥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거다. 놓지 않고 계속해서 여성학에 대해 알려들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나는 그저 내가 되었다. 그렇지만 대학원에 간다면, 그래서 선생님을 만난다면, 뭐랄까, 봇물이 터지지 않을까 싶어지는 거다. 나를 막고 있는 어떤 얇은 경계선 같은 것들을 스승이 끊어주지 않을까 하는 것. 그게 툭, 끊기면서 내 공부와 관심은 더 넓어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다. 더 많이 더 깊게 알고 싶다면 역시 이 점에 있어서도 스승은 필요하지 않은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꾸준히 읽고 꾸준히 쓰는 것은 분명 실력향상에 도움이 된다. 나는 알라딘을 통해 읽고 쓰기를 계속하면서 스스로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또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나를 오래전부터 지켜봐온 사람들도 내가 더 나아지고 있다고 어느 지점을 통과한 것 같다고 듣기 좋은 말들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가르침을 받는다면 뭔가 더 쭉쭉 뻗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거다. 그래서 문예창작과나 국문과를 갔어야 했던게 아닌가, 싶어지고 글을 잘 쓰는 누군가를 알게 되었는데 만약 그 사람이 국문과나 문창과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아, 역시 가르침을 받았어야 해, 내가 더 나아가지 못하는 건 가르침을 받지 못해서이다...라는 생각을 해버리게 되는거다. 어제 읽은 책에서는 이런 문장을 보았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주인공이 변하지 않은 소설은 재미가 없다." -'오사와 아리마사, 『소설 강좌 잘 나가는 작가의 모든 기술』, '엔조 도', '다나베 세이아' ,『책 읽다가 이혼할 뻔』에서 재인용
남편이 아내의 제안으로 읽게된 책, 『소설 강좌 잘 나가는 작가의 모든 기술』에서 저자인 '오사와 아리마사'가 한 말인데, 오, 저 문장이 너무 좋은거다. 그러니까 뒤통수를 치는 깨달음 같은게 확 왔달까.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주인공이 변한다는 것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성장'을 의미한다. 이랬던 주인공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렇게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은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면서 성장한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야기에 성장은 필요하지 않은가 싶었던 거다. 작가가 소설에 대한 강좌에서 역시나 쓸만한 가르침을 주었구나, 싶으면서, 아아, 그래 이런 가르침을 받으려면 역시 스승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이걸 내게 알려줘야 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물론 이렇게 책으로 어쨌든 알게 되긴 했지만, 이렇게 혼자 스스로 파고들어가 깨닫기 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결국은 만나지 못할 가르침이 될지도 모르잖아. 내가 잘하고 싶은 것,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물론 내 노력이 중요하지만,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이 필요한거야...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모든 지점에서 다 스승이 필요한데, 그러다 문득 오늘 아침 출근길에, '그런데 나는 왜 지금 직장일에는 스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이내 나왔다. 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생각 같은 게 없는 것이야..일은, 그저 나에게 밥벌이 수단이고, 밥벌이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것이지, 이것에 있어서 더 나아가고 싶다거나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방통대 국문과 편입할까..그렇지만... 또 자퇴하겠지, 나는....걍 책이나 열심히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