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만에 설에 집에 있는다. 집에 오신 할머니는 '너가 어쩐일로 집에 있냐' 라고 하셨고, 나는 할머니 보려고 아무데도 안갔어요, 했다. 그렇지만.. 친척들이 곧 들이닥쳐 번잡해질 게 또 너무 싫어... 조용함을 원한다. 어제부터 집에 있어본 결과 나는 오늘 식구들에게 말했다. '역시 명절엔 여행을 가야겠어, 다음부턴 여행 갈게' 했다. ㅎㅎ
아무튼 그래서 맥북과 책들을 가득 싸들고 집을 나왔다. 엄마, 밤에 들어올게, 하고 나와버렸어... 돼지갈비 잔뜩 먹고 나와 배고플 걱정 없으니 가져나온 책을 다 읽는게 목표인데, 그럴 수 있을까.
책읽기에 앞서 책 구매를 하려고 한다. (응? 왜?)
아니, 비연님도 책 구매 하셨고...(그게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0년에 다시 책구매 안하고 사둔 책만 열심히 읽으려고 했는데... 아니, 박완서 책을 사면 독서대를 준다는거다. 내가 딱히 굿즈 욕심 없는데, 독서대는 요며칠 계속 벼르던 아이템이다. 하나 사야겠어, 마음먹고 있었던 것.
집에 와 계시는 엄마가 매일 성경책을 읽으시는데 내 독서대를 사용하시는 거다. 그래서 내가 독서대를 사용하려고 하면 엄마 책을 내려두고 내껄 올려두고 다시 내껄 내려두고 엄마 책을 올려두고...해야 하는데 얼마나 성가신가...상당히 귀찮은 일이잖아? 독서대 하나 더 있는게 낫잖아? 그런 참에 독서대를 준다고 알라딘이 똭- 그러니까, 아, 또 신이 나를 사랑해 힘들게 책 읽게 하지 않으시려고...
페미니즘 도서를 여러권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읽는 그 당시에 당장 이해되는 게 아니어도, 나중에 다른 책을 읽다가 '아 그 때 그 책에서 말한 게 그런 내용이었구나' 하는 별안간의 깨달음이 오는 순간. 비단 페미니즘 책에서만 그런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그런 경험을 해서 너무 즐겁고 신났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내가 읽는 책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좋겠다. 갑자기 다른 책을 읽다가 훅- 하고 과거의 책 내용이 '아 이 내용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있어. 그렇다고 보면 책을 읽는 게 바로 내게 다 쌓이는 게 아니어도 어떻게든 내게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인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윤김지영 선생님의 역서.
알라딘 책소개: 그린비 몸문화연구소 번역총서 두 번째 책.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 엘자 도를랑이 제시하는 페미니즘적 혁명 윤리의 태동.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폭력의 활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몰수되어 왔는지, 왜 여성들에게 비폭력을 본질화해 왔는지를 역사적 소수자 운동의 계보를 통해 설명한다. 도를랑이 제시하는 호전적·전투적 자기윤리와 자기방어 전략은 지배자가 독점해 온 폭력의 구조를 깨뜨리고 다른 몸들을 발명해 내기 위한 혁명의 시론이 될 것이다.
내가 그간 읽어온 책들은 이 책을 읽는데 영향을 미쳐 이해를 도울 것이고, 또 이 책을 읽는다면 과거의 나의 독서를 끄집어내올 것이고 앞으로의 독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다. 책을 계속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전혀 다른 성질의 것들이라 해도 독서 근육을 키우는 일이다. 근육이 단단해지면 더 무거운 걸 들어올릴 수 있는 것처럼, 그간 읽지 못했던 분야의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여러분, 독서를 하자. 물론 알라딘에 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사실 독서는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페이퍼 제목은 '명절의 독서'지만, 아직 독서는 시작도 안했다는 사실... 오늘은 1월의 도서를 다 읽도록 하자. 해보자.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