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필요한 일이 살면서 얼마나 될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원하는 일은 종종 일어나지만 그러나 그것이 필요할까? 어떤 사람들에겐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겐 필요로 누군가를 원하는 일은 좀처럼 없을것이다. 나의 경우엔 필요하다는 걸 사람에게 잘 쓰지 않는 편인데, 필요라는 것은 메모를 해야 할 때 펜이 필요하고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이 필요한 것.. 정도가 아니던가.
그러나 나 역시도 아주 가끔, 정말이지 아주 가끔은, 아주 소박하게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어떤 절박함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가끔 튀어나오는 외로움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에는 며칠전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그 때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럴 때는 누군가 필요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 소식을 듣자, 누군가 내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그러니까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 소식을 접하고는 어? 락방이가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이 나왔네, 알려줘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는 쪼르르 나에게 와서 "마사 누스바움 신간 나왔던데, 알았어?" 하고 말해주는 순간이 필요한거다. 그러면 뭐랄까 인생의 소소한 행복이 찾아올 것 같았어.
그렇지만 그런 순간은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훅- 하고 사라졌다. 내가 아니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온 거, 내가 이렇게나 잘 아는데 뭘. 게다가 마사 누스바움 책은 집에 여러권 있는데 쌓아두고만 있다. 무릇 독서인생이란 그런것이 아니던가...
아무튼 그런 순간이 내게 있었음에...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 또 평온한 날들을 살다가, 바로 어제, 어젯밤에, 아, 너무 누군가 필요해서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건, 내가 자기전에 이 책을 다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어제 이 책 너무 읽고 싶어서 내가 요가도 안갔다. 월요일도 안갔는데 화요일도 안갔어. 일요일도 안갔고 토요일도 안갔는데.... 아무튼 어제 어쨌든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침대로 훌쩍 뛰어 올라가(응?)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가도 안갔겠다, 일찍 자야지, 열시.. 아니 늦어도 열시 반에는 자자. 책읽기 똭! 멈추고 그 때 자는거야.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하는 사람이니까... 하고 읽었지만, 아아, 우리는 알잖아요. 책이 너무 재미있으면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고, 열한시가 넘어버리고 말았고, 그러면 책장을 덮자마자 바로 잤느냐 하면, 또 그게 안됐어.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덮고 슬픔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기 때문이다. 그 감정이 나를 너무 후려패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내가 요가 대신 독서를 하기로 선택했던 순간을 후회했다. 차라리 요가를 갈걸, 이 책을 자기 전에 끝까지 읽지 말걸, 이게 지금 뭐야, 나 어떡해.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너무 아파서. 아프다. 슬프다고 썼는데 아프다고 읽어야 해. 트윗에서도 이 책을 친구들에게 추천했고, 그리고 이 공간에서도 그러했고, 나는 역시 샤론 볼턴을 사랑하지만, 이 책이 너무 아파서 지금은 추천하지 않겠다. 여러분 읽지 마요, 슬픔과 아픔이 여러분을 후려갈긴다.
어제 그 감정에 너무 허우적거려서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을 때처럼, 아, 이 책을 읽고난 뒤의 나에게 누군가 필요하다. 누군가 옆에서 나를 좀 다독여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어쩔 줄을 몰라 침대위에서 허우적거리고 뒤척거리는 나의 어깨를 좀 다독다독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괜찮다고 책일 뿐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볍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아, 누군가 필요하다, 절실해졌다.
그러나 그 감정도 이내 훅- 가버렸다.
이 책을 읽은 것도 내가 혼자 한 일이고, 그러니 이 슬픔과 아픔도 나 혼자만의 감정이다. 누가 옆에서 쓰다듬어주고 다독여준들 그 슬픔과 아픔은 시간이 지나야 나을 것이었다. 누가 나를 만져준다고 해서 응 슬픔이 뿅하고 사라졌어, 하게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온전히 내몫이었다. 견뎌내야 할 내 몫. 이건 누가 나눠가질 수도 없고 대신해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누가 대신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잠도 못자는 감정을 어떻게 누군가에게 대신 해달라고 해. 게다가 이걸 나눠가지다니, 말도 안된다. 나 하나로 족하다. 충분히 허우적대고 뒤척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야. 내가 읽은 책으로 내가 힘든데 누가 어떻게 나를 달래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해줄 일이 아니었다. 내가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어. 나는 내 안의 이 감정을 침대의 내 옆자리에 누울 사람에게도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아 여러분, 이 책을 읽지 마세요.
샤론 볼턴의 소설 속 배경이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이 소설의 배경 역시 한적한 시골이다. 이 시골에 목사와 한 가족이 새로 이사왔다. 이곳 역시 대부분의 시골들이 그런것처럼 이 지역 전체를 가지고 있다해도 좋을만한 부자가족이 살고 있다. 이 지역의 실세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비는 거기에서 조금 차타고 가면 있는 동네의 정신과 의사이다. 그녀는 자신의 옆마을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엄마 '질리안'과 상담 중이다. 시간이 지나도 질리안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게 있는 것 같고 좀처럼 질리안에 대해 명확히 무언가 잡히질 않아 질리안이 사는 동네에 말을 타고 가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마을에 새로 부임한 목사 '해리'를 마주치게 되고,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해리의 부임 얼마 전에는 플레쳐 가족이 이사를 왔다. 플레쳐 가족에게는 톰,조,밀리 라는 삼남매가 있다. 톰과 조는 어느날부터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소녀를 본다고 말하고 그녀가 자신들의 귓가에 계속해서 말을 한다고 얘기한다. 톰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혹시나 조현병인걸까 의심하는 톰의 엄마는 이비에게 톰을 보내 치료를 받게 한다.
톰은 '밀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행동한다. 실제로 누군가 데려가려는 밀리를 구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의 무덤이 붕괴하면서 묘지가 파헤쳐지고 그곳에서 영아 세 명의 시신이 나온다. 무덤은 하나인데 시체가 셋. 게다가 다 어린 소녀들이다. 경찰들은 신원 파악에 나섰고, 그 세 명이 몇해에 걸쳐 사라졌거나 화재로 잃었던 어린 여자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톰과 조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소녀를 본다는 것, 해리 역시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기척을 느낀다는 것, 한 무덤에 시체가 셋이라는 것들은 모두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런 초자연적인 이야기로 이 소설이 시작되고 진행되지만, 나는 그간 샤론 볼턴의 책을 읽어왔던 사람이라, 이것이 초자연적인 것은 아닐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이것은 현실적이고 또 실제적인 누군가가 관련된 일일것이다. 유령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샤론 볼턴은 그런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일로 시작하지만, 그러나 인간이 그러한 것이라고 계속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책도 그러할 거라는 걸 짐작하며 읽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시체라는 점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만, 그러나 이정도의 스포일러는 괜찮겠지, 책을 읽는 동안에는 어린아이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이게 샤론 볼턴에게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물론 시체도 있었고 그 시체들이 왜 발생했는지도 말하지만, 소설속의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지 않게 해줘서. 살아있게 해줘서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게다가 '여자아이'들이라는 것 때문에 짐작되는 고통이 있어 그게 너무 아팠다. 샤론 볼턴의 책을 읽다보니 나는 초반부터 '아마 범인은 이들일 것이다'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된건지, 왜 그렇게 된건지 그 사연은 모르지만, 분명 이들이 관련되었을거야, 생각한것이다. 샤론 볼턴은 항상 그런 얘기를 해왔으니까.
내가 읽어온 샤론 볼턴의 전작 《뱀이 깨어나는 마을》,《희생양의 섬》과 이 책이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맨스였다. 해리와 이비의 달달한 사랑의 투닥거림 때문에 나는 미치는 줄 알았네? 샤론 볼턴이 어쩐 일로 로맨스를 넣었을까, 뭔가 생뚱맞지만, 그런데 너무 로맨스 잘 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막 좋아하면서 읽었단 말이야? 아아, 이것은 여느 로맨스 소설보다 더 좋다, 아니 이렇게 로맨스 잘 쓰는데 왜 그렇게 항상 쿨싴했나요, 샤론 볼턴님. 히죽히죽 하면서 읽었는데, 아, 샤론 볼턴이여.. 나한테 이러기 있긔없긔...
샤론 볼턴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면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해리와 이비의 이야기가 흐르면서 이 마을의 사건이 같이 흐르는 것.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는가. 내가 쌍으로 슬퍼하는 일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슬펐던 것은, 이 책의 살인범 때문이었다. 살인범이 살인범이 된 이유가, 물론 그런 이유로 그렇게 다 영아살해범이 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아파서 울고 싶었다. 그 사람이 살아왔을 시간들은 .. 생각해보려고 해도 이미 너무 아파서 내 몸을 한껏 쭈구리고 싶어지는 거다. 그런데 ㅠㅠ 이비 때문에, 해리 때문에도 내가 아파야 했어. 슬퍼야 했다. 아니, 샤론 볼턴 이렇게 잔인하면 어떡하나...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고 살인범 때문에 아프고 이비 때문에 아프고 해리 때문에 아프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결국 졸라아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렇게 되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눙무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난번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샤론 볼턴은 희생양의 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쎄,
이곳에선 적응을 잘 못한 것 같고,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말이 맞아요. 이곳 섬들은 작지만 강력한 패거리가 다스리고
있거든요. 체격이 큰 금발의 남자들 말이죠.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스코틀랜드 대학을 다녔고, 노르웨이 부족의 침략이
있던 시절부터 가족끼리 서로 알고 지낸 사람들 말이에요. 토라, 생각해봐요. 병원의 아는 의사들이나, 학교의 교장이나, 경찰이나
치안판사, 또 상공회의소, 지역 시의회까지, 그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요."
그 점에 관해서는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꽤 많은 섬 주민들이 눈에 띄게 비슷한 외모를 지녔다는 사실을 나도 이미 여러차례 실감한 터였다. (p.249)
뱀이 깨어나는 마을에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고.
˝어머니가 술을 드셨어요. 아주 오랫동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요. 음악가셨던 어머니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시골의 성직자와
결혼하면서 경력을 포기하셔야 했죠. 나중에야 성직자 아내로 사는 게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셨고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숀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둠이 더욱 짙어진 까닭에 나는 그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도 힘드셨겠죠. 치료도 받으시고, 몇 년동안 병원도 다니셨죠.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몇 달을 버티기도 했는데,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하셨어요.˝- p.424
그리고 이 책, 《피의 수확》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이비, 남자들은 수천 년 동안 부와 권력을 위해 딸들을 팔아왔어요. 20세기가 되었다고 그게 멈출 것 같아요?" (p.532)
그렇다. 남자들은 수천 년 동안 딸들을 팔아왔고 여자들을 팔아왔다. 어제 점심 식사 하면서 들은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꿈의 제인> 편에서는 온라인채팅앱에 대해 이수정 박사님이 공공연한 미성년자 성매매 통로라는 얘길 하셨다. 남자들은 유료이지만 여자들은 무료라는 것. 남자들이 돈내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급되는' 여자가 많아야 했다. 이건 클럽 문화와 마찬가지다. 나는 버닝썬 때문에 클럽에서 여자들이 돈을 내지 않고 심지어 맥주가 무료로 제공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됐다. 클럽에 자주 가는 동료가 '물 좋은 곳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런 클럽이 많다'고 얘기해준 거다. 나는 그걸 들으면서 너무 이상했다. 그건 불공평하잖아? 한 쪽은 돈을 내고 한 쪽은 돈을 안내? 이거 너무 이상하잖아? 아, 그건 클럽에 남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자들이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참... 이렇게 여성의 성을 팔고 있는 거였다. 샤론 볼턴이 자신의 소설을 빌어 말한것처럼, 20세기가 되었다고 그게 멈추지 않았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폭넓게 진행되고 있을 뿐.
샤론 볼턴은 이렇게, 해야할 말들을 늘 하고 있었어.
소설 읽고 어떻게든 수습이 안되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보부아르 언니가 랩하는 책, 《제2의 성》2권을 들고 왔다. 지하철에서 꺼내 읽기 시작하는데, 마침 이런 구절이 보인다.
전보다 더 불안정하고 더 불확실한 현대생활의 조건 때문에 젊은 총각의 결혼 부담은 매우 가중되었다. 반대로 결혼의 이득은 오히려 감소되었다. 남자는 쉽게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고, 성적 만족도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결혼하면 물질적 만족-'음식점보다 자기 집에서 먹는 쪽이 더 낫다'-과 함께 성적 만족-'남자는 집에 상주하는 매춘부를 갖게 된다'-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개인은 고독에서 해방되고, 가정과 아이를 얻음으로써 공간과 시간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것은 그의 생존을 위한 결정적인 목적 수행이다. 그렇지만 역시 전체적으로는 결혼을 바라는 남성의 요구가 청혼을 기다리는 여성의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다. 아버지는 딸을 준다기 보다 치워버린다. 남편을 구하는 젊은 처녀는 남자의 부름에 응하는 식이 아니다. 남자를 성적으로 부추기는 것이다. (p.540)
젊은 처녀는 완전히 수동적이다. 그녀는 부모를 통해 혼담이 '이루어져서' 신부로 '주어진다.' 총각은 결혼'하'고 아내를 '얻는다. (p.537)
여자를 사고 파는 남자들, 그러나 그 돈은 여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여자는 그저 여성성을 가진 수단으로 존재할 뿐.
첫째,
지참금은 신부가 아니라 신랑 가족에게 전달된다. 시부모는 지참금의 분배에 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는다. 둘째, 내가 아는한,
토지는 절대 지참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여성에겐 재산이 없다. 이른바 그녀의 재산으로부터 아무런 부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젠더에 따라 특정된 성격이 만들어진다. 남자들은 국가 경제에 공헌하고 생계비를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하며, 자녀양육과
가사에 몰두한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지참금 마녀 사냥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다. (p.231-232)
딸을 팔아치우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건 딸만 팔아치운걸까? 인간이기를 팔아치운 것이기도 하다. 돈에 딸을 넘기고, 자신의 영혼을 넘긴것이나 다름없다. 단언하건대, 그런 남자의 영혼은 딸의 육체보다 가치가 없다.
이렇게 나를 아프고 힘들게 만든 책이지만 언제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희생양의 섬도 다시 사서 재독해야지. 끝까지 읽으면서 너무 아팠지만, 아, 역시 샤론 볼턴은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구나,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 이비랑 해리 때문에 아프게 할것까진 없잖아요. ㅠ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잖아요? ㅜㅜ 세상은 역시 장밋빛이 아닌것이야.. ㅠㅠㅠㅠㅠ
더 슬픈 건 내가 정확히 이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비의 끌리는 마음, 그리고 '그러나 이것은 이러면 안되는거야' 라며 스스로를 자제하려는 마음, 지킬 것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 윤리적으로 옳은 걸 선택하려고 자기의 욕망을 애써 죽이려는 그 마음이, 내게는 정말이지 생생하게 손에 잡힐듯해. 서른한살 그 날의 내가 꼭 이랬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이 책을 읽지 마세요. 슬픔과 아픔이 여러분을 후려갈길겁니다.. ㅠㅠ
"여긴 웬일이시죠?" 그가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뺐다. 대화가 시작된 지 십 초만에 그는 벌써 에비 작전까지 꺼내 들었다. "이거, 당신건가요?" 그가 물었다. 파란색 돌로 장식된 작은 은팔찌가 빛에 반짝 빛난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뇨." 고개를 흔들며 그녀가 대답했다. 관자놀이 주변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축축했고 승마 모자에 눌려 머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가 손을 머리로 올려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얼굴은 분홍빛이었다. 닷새 전에는 낙마로 창백했던 얼굴이었다. "길에서 찾았나요?" "아뇨. 이틀 전쯤에 로튼스털 시장에서 제가 산 겁니다." 그가 실토했다. 뭐, 조금 많이 위험한 고백이었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여자 입가의 꿈틀거림이 미소에 가까울 정도로 커졌다. "조금 성급하셨네요. 당신하고는 색깔이 안 맞는 것 같은데." "맞는 말씀입니다. 저는 뭐랄까 연한 레몬색이 더 스타일에 맞는 남자죠. 하지만 구실이 필요했어요." 됐다! 미소였다. 확실히 그랬다. - P99
해리는 제니를 따라 옛 양치기의 벤치로 갔다. 이비와 함께 앉았던 그 벤치. 그녀는 아직도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 P184
두 사람이 경사 지대의 정점에 다다를 무렵, 해리는 이비가 지쳐가는 걸 느꼈다. 말수가 줄었고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여기까지 차로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어째서 못 하게 한 걸까. 잠시 멈춰서 쉬자고 제안하면 화를 낼까? "잠깐 앉아서 쉬어도 될까요?" 이비가 물었다. 다람쥐처럼 귀엽고 당나귀처럼 고집스럽다. 정말로 골칫거리인 여자였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느껴도 되는 걸까?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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