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죽고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것은 우울에서 오는 게 아닌, 해결방법을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때 드는 생각인데, 어젯밤에 또 그랬다.


어제 내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해 엘레베이터에 타 4층 버튼을 눌렀는데 올라가다 말고 쿵- 소리와 함께 4층에 못미처 엘레베이터가 멈추는거다. 그러더니 안내 멘트로 '이상이 생겼습니다' 가 반복되는 게 아닌가. 나는 바깥에 계신 아빠랑 통화중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했고 아빠는 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일이냐 물으셨다. 아빠, 엘레베이터가 멈췄어, 끊어봐 상황 해결하고 전화할게,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비상벨을 눌렀다. 비상벨을 통해 물음이 들려오고 또 내가 상황을 설명하면서 내내 무섭고 떨렸다. 이대로 내가 죽을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 순간의 공포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렇게 상황 설명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뭔가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쿵- 거리더니 엘레베이터가 다시 내려가며 3층에 멈췄다. 3층은 내가 버튼을 누른 곳도 아니었는데 어쨌든 멈추고 문이 열린 게 다행이라 얼른 내렸다. 나를 내려놓은 엘레베이터는 다시 덜컹- 거리더니 빨갛게 <점검중>이라는 불이 들어왔다.


한 층을 계단으로 올라 집에 도착한 뒤 분리수거할 쓰레기를 가지고 얼른 계단으로 다다닥 내려왔다. 그리고 경비실로 뛰어가 엘레베이터 고장에 대해 얘기하려는데 경비아저씨는 누군가와 통화중이셨고, 119 얘기가 나왔다. 아, 내 얘기구나 싶어 통화 끝나자마자 경비아저씨께 '제가 갇혀있다 나왔어요' 했다. 아저씨는 그러면 안에 갇힌 사람 없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렇다 했다. 그렇게 119에 취소전화를 하고, 그 후에 나는 '엘레베이터 수리 기사님은 불러야 할것 같아요. 고장 안내문도 붙여야 하고요' 말씀드렸다. 아저씨는 불렀다 하셨다. 그리고는 어떻게 빠져나왔냐 물으시더라.


"자기 혼자 덜컹대더니 3층에 가 멈춰서 문이 열렸어요. 그래서 얼른 나왔어요." 했다.



경비아저씨는 안내문을 붙이겠다 하셨고, 그렇게 나는 분리수거를 하러 갔는데,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빠 나 나왔고, 경비 아저씨가 119 부르셨는데 그것도 취소했어, 아 너무 무서웠어, 했다. 아빠는 내가 엘레베이터안에 갇혀 비상벨을 누르고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는 동안에 우리 이웃집에 전화를 거셨다고 했다. 거기 우리 딸이 갇혀있으니 경비 아저씨한테도 말해달라고. 이웃집 아주머니는 우리 아빠랑 통화하고난 뒤 경비 아저씨께 말하고 119에 신고도 했다 하셨다.


"아빠 상황 다 정리됐어, 끝났어, 나 괜찮아." 라고 말했는데, 아빠는 "너 앞으로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아빠한테 전화해!" 하셨다.


응..



잠시후 엘레베이터 수리 기사님들이 오셨고 쿵쾅쿵쾅 뭔가 고치는 듯 큰 소리도 나고 그랬는데,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보니


'밤을 새워서라도 원인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오전 중에 꼭 고쳐놓겠다' 라는 안내문이 다시 붙어있었다.




어제 분리수거도 다 하고 집에 들어가 수박을 먹고 있는데, 잠시 후에 아빠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많이 놀랐지?"

"응 아까는 많이 놀랐는데 지금은 수박 먹고 있어."



나는 엘레베이터 안에 갇혔을 때 비상벨을 눌러 얘기할 수 있었고, 119에 전화를 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갇힌 상황에서 오는 공포가 커서 이 방법을 바로 생각해내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이 갇혔다면 이 상황에 어떡할까 생각하자 너무 무서워졌다. 어린 아기들이야 부모님과 함께 다니지만, 어린 아이들의 경우 간혹 엘레베이터 혼자 타는 일은 있는데, 이 때 핸드폰도 없고 비상벨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면 그 공포를 온전히 견뎌야 하지 않나. 설사 핸드폰이 있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119에 전화를 거는 걸 생각해내지 못했다면, 누군가 엘레베이터 고장을 발견할 때까지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그 안에 혼자 갇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생각을 하자 너무 무서웠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해보는데 나에게는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기계는 어디서든 언제든 고장날 수 있고, 그것이 나에게 닥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닥칠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닥칠 수 있는데, 그 아이들이 마주하게 될 공포가 너무 끔찍했다.



그러자 죽고싶다고 생각했다. 이 무서움, 이 걱정, 이 두려움으로 부터 벗어나려면 내가 죽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가끔 이렇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 앞에 이르면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럴 때 그렇다. 이건 우울증에서 오는 게 아니고 또 내가 실제로 죽음을 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는 것만이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전에도 아동 대상 범죄에 대해 걱정하다가, 내가 해결할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고통스러워지면서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사라지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세상 모든 범죄자를 없앨 수 없고, 모든 아이들의 뒤를 따라다닐 수도 없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다. 내가 살아가는한 이 끔찍한 걱정은 나에게 계속 찾아들 터, 이것은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어떻게든 그만두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무사하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네. 아 그러나 걱정된다. 이 걱정을 어떻게 해야 그만두지? 내가 죽으면 된다.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아-



자주 찾아드는 생각은 아니지만 어쩌다 이런 방법으로 결론이 날 때면 내가 나를 다독여야 한다. 이 순간 지나갈거야, 이 걱정 사라질거야.



나는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수시로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내 안에는 사랑이 많고 또 나는 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믿는다. 어제도 아빠가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전화해줬던 것처럼, 내 주변에는 나에게 사랑과 다정함을 주는 사람들도 많다. 내 앞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나는 내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낼 거라 생각한다. 나는 잘 견딜 수 있고, 이겨낼 수 있고,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죽어야 끝날것이다'라는 생각도 어제 내게 찾아와 나를 힘들게 했지만, 오늘은 지나갔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 혹여라도 어린아이들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어떤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 너무 답답해진다. 보통 깊게 생각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편이지만,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함이 느껴지면, 그 무력함으로 인해 고통스러워지면 '죽어야 끝날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걸까. 뭣 때문에 이러는걸까. 나는 내가 실제로 이런 일로 죽음을 실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안하고 싶다.



나는 충분히 건강하지 못한걸까?

뭘 더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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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05-0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얼마나 놀라셨을까. 글 읽는 내내 제 심장이 다 두근거렸어요. 그리고 다락방님의 느낌, 저도 요즘 자주 그래요. 특히 애들을 낳고 나서는 더욱 그래요. 모든 변수, 사고를 내가 통제할 수 없는데 덜컥 세상에 생명을 내어놓았던 건 아닌가, 왜 몰랐을까, 아무도 이런 면에 대하여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무언가 아주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결국 끝은 고통당하며 죽는 건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이런 생각하기 시작하면 삶 자체가 너무 잔인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토닥토닥. 이젠 우린 또 그런 시기를 지나가는 건가봐요... 슬프지만...나도 그렇다는 말을 덧붙여요. 이건 응원도 위로도 안 될까요...

그런데 틈새 공략. 이웃집 아주머니 너무 믿음직하네요. 저도 그런 이웃이 부모님 주변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비상 상황이 생기면 의외로 가까이 있는 이웃분들의 신고, 도움이 절실하더라고요.

다락방 2019-05-09 09:57   좋아요 1 | URL
블랑카님, 맞아요. 제가 통제할 수 없는게 당연한데도 이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아이를 내어놓으면 어쩌나, 그 다음을 내가 어찌 감당하나 싶은 마음에 저는 ‘나는 아이 낳아서 키울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여태 하거든요. 이걸 여동생에게도 말했는데 여동생이 그러더라고요. 본인도 그랬다고. 그런데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그 두려움이 극복되는 부분들이 있다, 더 강해졌다 라고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런 사건 사고에 맞닥뜨리면 ‘아이들이 이상황에 놓이면 어쩌지‘ 하고 걱정과 무력함에 고통스러워져요.


삶 자체가 이런 식으로 연속되는 걸까요? 제가 정신이나 마음 어딘가가 많이 아픈건지 혹은 이상한건지에 대해서도 또 열심히 생각해보거든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또 ‘내가 아이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너무 약자 취급하는걸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블랑카님의 댓글, 위로가 돼요. 아,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건 아니구나, 나만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이게 다른 사람들의 고민이기도 하구나, 싶어서요.

감사해요.

2019-05-09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9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5-0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참 철이 없는 것 같아요. 미간에 주름을 잡아가면서 읽다가 ˝응 아까는 많이 놀랐는데 지금은 수박 먹고 있어.˝에서 풉 터지고서부터는 도저히 심각하게 읽지를 못하고.......

되게 귀여운 대사잖아요 저게?? 나만 그런가?? 😣

다락방 2019-05-09 11:06   좋아요 0 | URL
아니야, 제가 생각해도 저 좀 귀여운 것 같아요. 확실히 이 구역의 귀여움은 제가 담당한듯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박은 자기전에 먹으면 자꾸 화장실 가려고 깨기 땜시롱 안먹어야 하는데... 먹어버리고 말았고, 역시나 자다가 깨고 그랬어요... 에휴.......

레와 2019-05-0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래. 나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문제나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땐 죽어야 끝날까, 죽으면 이런 걱정 안해도 되지 않나..
한동안은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 지금도 그렇고. 이런 생각이 들면 너무 우울해..

나도 그래...



멜론 먹고 싶다.

다락방 2019-05-09 14:36   좋아요 0 | URL
다음주에 만나서 멜론 먹자!
멜론 먹으면서 우리 살아야할 이유를 더 많이 만들자.

잠자냥 2019-05-0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베이터가 락방 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ㅋㅋㅋ 농담이고요. 많이 놀라셨겠어요.... 이렇게 읽다가 수박에서 다시 뿜었습니다. 그나저나 락방 님 가족은 참 다정한 것 같아요. 그 가족분들과 이 세상의 맛있는 음식들을 생각하며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날 것이다‘라는 생각을 물리쳐보세요! (하지만 그런 생각도 건강하기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9-05-09 17:48   좋아요 0 | URL
아아... 그래서 엘리베이터 수리 기사분들이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걸까요?!!

죽어야 끝날거라는 생각이, 건강하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인 걸까요? 제가 아직 충분히 건강하지 못해서 하는 건 아닐까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인데, 이런 생각을 하게될 때가 오더라고요. 빠져나가자, 빠져나가자 제가 저에게 말해요.

아무튼, 내일이 벌써 금요일이에요. 아오, 너무 좋아요. 주말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뿌링클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소떡소떡!! >.<

카알벨루치 2019-05-10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박 먹고있어....그래도 힘을 내야죠 “존버정신” 고생하셨어요...

다락방 2019-05-10 09:31   좋아요 1 | URL
저 때도 몰랐고 쓰면서도 몰랐는데, 저야말로 존버정신.. 을 갖추고 있었네요!!

카알벨루치 2019-05-10 09:41   좋아요 0 | URL
존버의 수박! 🍉 근데 엘리베이터에 갇히면 모두가 두려움과 공포에 몰릴 듯 합니다. 엘리베이터에 안에 갇혀 살인자를 찾아가는 영화가 있던데 그 영화 좀 소름이던데 제목을 모르겠네요 근데 그건 절대 안보시겠어요 ^^ 홧팅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