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티에 라탱
사토 겐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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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시대가 느껴지지 않아.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지역색이 있다면 일본이요, 시간대가 있다면 20세기일 겁니다. 이런 종류의 기술을 당대 사람의 '회고록'의 번역이라고 우기려는 시도는 어불성설이에요. 너무나 무모합니다. 이 작가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전공자의 함정' 에 빠져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대사각하의 요리사]에 의하자면 프렌치 요리사가 하는 요리는 다 프랑스 요리라지만 역사 전공자가 쓰는 소설이 다 역사소설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16세기 파리의 디테일을 엄청나게 늘어놓고도 이렇게 시대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니 이것도 나름대로 재능입니다. 저같은 디테일 마니악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것도 굴욕이고요! ;ㅁ; 뭘 하고 싶었는지, 작가의 의도는 알겠어요. 하지만 그걸 제대로 받쳐주기에 이 소설은 너무 가볍습니다.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은 비단 유머 탓만도 아니지만, 저런 식으로밖에 *유머*를 창출해낼 수 없는 작가라면 해서는 안 될 시도 같기도 하군요.


실존인물 1, 프랑수아 1세 (1494-1547)
소설에서는 엄청난 미남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 초상화를 아는 사람은 좀 당황스럽습니다.

 가장 문제는 역시 캐릭터입니다.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는 데 실패했기에 그들의 행동 동기에 대해서도 한없이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게, 한 명을 제외하고는 설정이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인 것도 아니라고요! '이해할 수 없는 놈' 설정이 붙은 건 딱 한 명인데 그 놈은 또 너무나 빤하단 말입니다. 저는 '한없이 초인에 가까운 캐릭터에게 인간적 흠결이랍시고 알량한 약점을 덧붙이려는 시도' 를 너무나 싫어하는데 그게 말이 되는 경우를 그리스 비극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약점이라는 게 '여자에 약하다' 수준일 경우에는 정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를 모르겠어요. 이 책의 마지스테르 미셸은 의도상 그런 초인이 분명한 캐릭터입니다만 결과는...흠, 요즘 말로 하자면 비웃깁니다. 뻘쭘해서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어요. 제가 소설에 대해 '시파 못 봐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의 8할이 '남자 주인공이 역겨워서' 인 걸 감안하면 이번엔 정말 길게 참았습니다. 코로나corona한 캐릭터가 멋져 봐야 얼마나 멋질 수 있겠느냐는 못돼처먹은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실존인물 2, Saint Ignatius of Loyola (1491-1556)


실존인물 3, Saint Francis Xavier (1506-1552)
'조각난 남자'

화자 드니 쿠르팡을 제외한 나머지 '실존인물' 캐릭터들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두서없이 성격과 일화를 들이밀기는 하는데 너무 가볍고 피상적입니다. 등장할 때마다 거의 매번 '그 이름도 유명한' 수준의 수식어를 다는데, 앓느니 죽지. 그들의 논쟁이라는 것의 연출도 정말 미간을 부여잡을 수준이고,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습니다. 다만 드니 쿠르팡 캐릭터는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형식에는 조금 문제가 있지만 감정의 변동이나 사고 레벨은 아마 저 시대 사람들 평균을 훌륭하게 구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_-; 이름값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얕은 속셈이 보인달까,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너무 생각이 부족합니다. 세계에서 찾아온 지성들이 모인 카르티에 라탱의 이야기인데도, 제가 사랑하는 달콤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의 흔적조차 없고 말이죠.

Trivia
1. [바로크 사이클]에도 등장했던 소시지 케이싱이 당연히 여기서도 등장. 방종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역사가 길고도 길다?!
2. 일본어판 표지 하나.

뭐든 저 한국판 표지보다 나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표지는 정말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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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작년 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가져옵니다.)

-이 책에 대해 가장 간단히 설명하는 법은, '엘리스 피터스 추모단편집 [독살에의 초대]에 들어 있는 매혹적인 단편 [오빌리오? 클로디어!]과 같은 작가의, 같은 탐정이 등장하는 장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흠, 별로 간단하지도 않네요. 하지만 이 작가의 장편이 하나도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

 


이 이야기의 배경은 로마 시대, 막 황제가 후계자로 티베리우스를 지명하네 마네 하는 때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_=; (**) 암살과 쿠데타에 관한 규모가 크고 화려한 음모가 펼쳐지고 거기에 황제와 의원과 이민족 용병과 클라우디아가 얽혀듭니다. 우리의 클라우디아 세페리우스는 어떤 여자인가...빈민가에서 자라 부유한 포도주 상인과 결혼한 클라우디아는, 남편 세페리우스가 죽었을 때(***) 그가 매우 골때리는 방식으로 부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동산이며 포도주 사업체며 많이 있지만 클라우디아는 그걸 팔 수 없어요. 그녀가 조금이라도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방식은 어쨌든 와인 매매를 잘 굴려서 이익을 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럴듯한 남자한테 그녀(와 세페리우스 포도주 사업)를 통째로 넘기는 대신에 클라우디아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업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위험한 음모에 클라우디아를 끌어들입니다.이야기는 그녀가 무역 사절단에 끼어 알프스를 넘으려는 데부터 시작합니다. 유니우스라는 이름의 켈트 족 보디가드와 드루실라라는 이름의 이집트 고양이를 데리고, 마차에서 흔들리면서 알프스 근처까지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 지독해지는 기후에 불평하면서. 그런데 신비로운 방식으로 낙반 사고가 일어나 일행은 고갯길에 갇혀 버리고, 그 와중에 클라우디아는 명백히 일행 중에 사고 이외의 방식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전형적인 '범인은 우리 중에 있어' 상황입니다만, 대체 왜? 그 이유는 여기서가 아닌 멀리 떨어진 로마에서 찾아야 합니다.

한편 로마에서 우리의(...라는 말 여기는 붙이기 싫다 -_-;)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오르빌리오는 '대체 왜 그녀가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걸까'를 뇌까리며 클라우디아 닮은 여자(...)랑 붙어먹고 있습니다-위에 언급한 단편을 보시면 클라우디아와 오르빌리오에 대한 간략한 설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귀족이고 비밀 경찰이며 키가 크고 탄탄한 체격에 검고 윤기있는 고수머리에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로, 클라우디아 세페리우스에게 끊임없이 껄떡댑니다.
...그런데.

제가 단편을 보면서 확연히 잘못 생각했던 게, 껄떡대는 건 오르빌리오 쪽이고 클라우디아는 그냥 귀찮아할 뿐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게 아닙니다. 그녀는 오르빌리오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지. 간신히, 아주 간신히 제가 싫어하는 둔한 여자 클리셰를 피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 내가 왜 이러지...아, 아냐 그럴 리 없어! '만큼 싫은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많지만. ) 이유가 있으면 괜찮습니다. 엄마를 죽게 한 철천지 원수인데다 라이벌 기획사의 사장이라든지 하면 괜찮습니다만 '친구니까' 는 이유로 카운트하지 않습니다. ㄱ- 클라우디아한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요. : 그는 경찰이니까.

그래도 이 이야기는 굳이 말하자면 할리퀸 로맨스에 가장 가깝습니다. 네, (클라우디아가 오르빌리오의) 벗은 가슴을 쳐다보다가 '핫, 내가 지금 뭐하고 있담' 씬조차 등장합니다. 작가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압니다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양키센스' 였습니다. 느끼합니다. 게다가 또 에브리씽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모든 것이 다 등장합니다 : 키 크고 잘생긴 검은 머리 귀족, 근사한 체격의 켈트 노예, 소년 티를 벗지 못한 군인, 오드아이, 푸른 눈이 날카로운 은발의 켈트족 사냥꾼, 비운의 죽음을 맞는 빨강머리의 켈트 소녀, 단정한 이목구비인데도 아름답다기보다 매섭다는 느낌이 드는 속물 로마 부인, 어디를 봐도 말랑말랑 폭신폭신하고 사랑스럽게 흐트러진 고수머리의 우리의 클라우디아, 그리고...크레타 인(아, 마이 스위트 일리오나 T^T).

차이점이라면 글쎄...이야기는 상당한 액션을 포함하고 있지만 오르빌리오는 클라우디아를 구하러 직접 달려가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는 로마인이니까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라면 역시 이 [Black Salamander]를 다 읽은 거라고 해야겠습니다. 한 줄에 세 개씩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비감한 사태를 휴대용 전자사전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 극복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읽은 보람은 과연 있었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이 시리즈야말로 번역되기를 강렬히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재미는 있는데 이 짓을 앞으로도 몇 번이나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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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단편의 클라우디아에 매혹된 사람이라면 아마 장편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텐데, 어째서 시작이 첫권인 [I, Claudia]가 아니라 [Black Salamander]였나 하면...간단합니다. 그냥 앞 두 권이 품절이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표지가 제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다시 봐도 정말...아...이건 좀 곤란합니다. OTL 읽긴 읽을 거지만 혹시 딴 버전 있나 좀 찾아봐야겠습니다. T^T


(**) 로마 정치에 관한 한 무감각, 방향성 없음을 차라리 자랑으로 삼고 싶어하는 제가 그나마 이 정도를 기억할 수 있는 건 다 래리 고닉의 훌륭한 책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새로 나오고 있는 것 같더군요. 지난 번 번역이 좀 더 못되처먹은 게 마음에 들지만 나왔을 때 사 두도록 합시다. =_=;



 

 

3권은 결국 원서를 샀습니다. 이제는 4권을 살까 말까 고민 중인 eppie.

(***)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나이는 'at the tender age of twenty-four' :]

(****) 사실은 달려갑니다.

Trivia
사실 제일 재미있었던 표현은 'nothing meatier than horseradish' 였습니다. 우와, 이 사람들 진짜로 '고기하다' 는 형용사를 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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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푼도 더도말고 덜도말고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5
제프리 아처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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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팬이라면서 이걸 아직까지 안 읽었느냐, 혹은 제프리 아처 팬이라면서 이걸 아직까지 안 읽었느냐는 말에 대한 변명 : 전 코지 미스터리도 아니면서 사람 안 죽는 걸로 유명한 미스터리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 =_=; 한창 미스터리 기분일 때는 분명히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그러니 요즘처럼 완전히 나사가 풀려 있을 때 볼 수밖에 없어요. 코미디는, 오히려 컨디션이 나쁠 때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특히 자신과 너무 비슷한 종류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유명한 작품이니 새삼스레 줄거리 요약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사기에 사기로 갚아 주겠다는 발상을 해낸 것부터가 좀 걱정스러운 데다, 아무래도 일이 너무 얼렁뚱땅 잘 돌아가는 경향이 있지만 애초에 이 '계획'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작가에게도 관심 밖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방법을 택하는 대신 이 방법을 책으로 쓰는 쪽을 택한 걸로 봐서 더더욱. )

캐릭터와 돌발상황의 재미가 중요시되는 전형적인 '아무개의 몇 명' 이야기입니다만, 그 캐릭터라는 것이...냉철한 두뇌와 대담한 심장으로 임무를 쓱 해치우는 프로페셔널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며칠 전에 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르웰린 모스와 너무 대조되어서 가슴이 다 아플 정도입니다. 주모자인 스티븐 브래들리Stephen Bradley 교수부터가 이전에 이런 일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책상물림인데다, 나머지 세 사람도 결코 이런 일에 능하다고 볼 수 없는 종류의 경력과...배짱을 갖고 있습니다. -_-; 그 결과 프랑스계 화상 장-피에르 라망Jean-Pierre Lamanns은 긴장에 못이겨 토하고 '쓸모없는 귀족' 제임스 브릭슬리 경Sir James Brigsley은 피를 보고 쓰러지고 긴장이 갑자기 풀려 쓰러지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과연, [보트를 탄 세 남자]의 전통이 이런 식으로 살아 있는 거군요.
한마디로 이 놈들 정말 너무 못 미덥습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본문의 전개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 이야기의 최강 캐릭터는 (이 네 명 중에 있을 리 만무한 거야 당연하고), 이들에게 사기를 친 하비 메트카프Harvey Metcalfe가 아니라 브릭슬리 경의 애인인 앤 서머턴Anne Summerton입니다. 이 캐릭터에 비하면 하비 메트카프는 오히려 어리숙한 정도라고 해야 할 겁니다.

 당연하게도, 이들의 사기 행각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소설은 정말로 재미가 없어집니다. (애초에 내용의 배치 자체가, 그렇게 안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80-90년대 국내에서 이 작품을 소개한 미디어는 늘 치밀하고 기발한 사기행각에 중점을 맞추곤 했었는데, 그러니까 별로 기발하지도 치밀하지도 않다고요. 필사적으로 노력은 했지만 역시 못 미더운 인간들의 허술한 계획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제대로 즐기려면, 제프리 아처의 몇몇 단편들처럼 이 귀여운 인물상을 즐기는 쪽으로 소비해야 합니다.

Trivia
팬아트를 그려봤습니다.

...만, 실은 저는 로빈 오클리 의사가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생겼을 거라고 추정되는 방향은 너무나도 그리기 싫은 방향이라...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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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8-04-2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프리 아처 - 한푼도 더도말고 덜도말고는 오래전에 읽은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eppie님 리뷰를 읽어보니 다시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근데 아래 그림은 직접 그리신건지지요???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eppie 2008-05-08 15:16   좋아요 0 | URL
네, 취미로 가끔 그릴 때가 있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D
 

-작년 이맘때 읽고 블로그에 올렸던 리뷰를 꺼내옵니다.


  감상부터 말하라면 '뭐 이런 책이 다 있담' 입니다. 잡게 되면 이거 휙휙 넘기느라 다른 일을 전혀 못 하게 되기 때문에, 그걸 피하기 위해서 하루의 마지막에 아껴 보게 돼요.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3시, 4시를 넘기는 일이 왕왕 발생했으니...요 며칠 생활 리듬이 흐트러진 건 다 이 책 탓입니다. :(

구명뗏목에 실려 위스타드 해안으로 떠밀려 온 시체에서부터 출발한 사건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시체들의 국적은 라트비아인이었고,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온 진지하고 성실한 라트비아인 리에파 소령과의 만남이 발란더를 결국 라트비아의 리가로 이끕니다. 이번 책에서 발란더는 훌륭한 스파이입니다. 영화로 만들었을 때 대중적으로 가장 어필할 작품은 (제가 좋아하는)[Steget Efter]같은 변태물(...)이 아니라 이 [The Dogs of Riga]가 아닐까 생각해요. :D

따라서 마틴손이나 스베드베리 등 동료들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적고 발란더의 라트비아 스파이 액션이 주를 이룹니다. 그래도 가끔가다 나오는 마틴손의 언행은 그 마틴손 캐릭터가 여기서부터 정립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뜸들러에 포에머에...^ㅁ^;) 가장 놀랐던 건 후의 작품에도 종종 언급되는 발란더의 이 라트비아 여행이 모든 동료들에게 비밀이었다는 점인데 하긴 경찰관이 가짜 여권으로 남의 나라에 가서 미행당하고 차 훔치고 사람 패고 총격전 일으키고 경찰서에 잠입했던 걸 어떻게 말하고 다니겠어요. 그래도 나중에 안-브리트한테는 말해 줘도 좋았을 텐데...말했던가?!

그 다음으로 놀랐던 건 리에파 소령이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점이었습니다. 근시에 작고 구부정한 헤비스모커라고 묘사되는데 왠지 [Steget Efter]의 영화판에서 스베드베리 역을 했던 사람이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 좋을 것 같더군요. 리에파 소령은 성실함이 매력이 되는 종류의 캐릭터로 그의 성실성의 대상은 바로 라트비아와 라트비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 성실함이 그의 죽음을 불렀지요. 이 이방인에게 자신도 모르게 홀딱 반한 발란더는(...) 그의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라트비아로 가서 리에파 소령의 아내를 만납니다. 이후에 계속 발란더의 걸프렌드로 등장하는 바이바 리에파와의 첫 만남인데, 솔직히 이후의 언급이 없었더라면 매번 하나씩은 등장하는 '이번 권의 여자' 중 하나(본드걸이냐...)로 생각할 뻔 했습니다. 계속 반했다고 껄떡거리기는 하는데 발란더...앞 권에서 아네트 브롤린 검사한테는 안 그랬냐...ㄱ-

그래도 바이바 리에파는 이론의 여지 없이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이 시리즈의 특성상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마음의 눈으로 보면...^_^; 실은 발란더가 안-브리트 회그룬트의 타입에 질색하는 걸 보고 발란더 취향은 포동포동한 브루넷이구나 생각했었는데, 바이바 리에파가 두 번째 등장해서 '모피 모자'를 벗었다는 묘사가 등장하는 순간 어째서인지 메건 멀랠리Megan Mullally(라기보다 제가 그 순간 떠올린 것은 [윌 & 그레이스Will & Grace]에서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 캐런 워커입니다)가 떠올라 버려서 이후로 내내 좀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진지한 버전의 메건 멀랠리라면 좀 비슷할 거 같기도 한데...테크니컬 라이터이자 엔지니어를 연기하는 메건 멀랠리를 생각하며 하악하악 하는 건 저뿐인가요? 설마.

에...재미있었습니다. 정말로. 발란더가 처하는 곤란함의 강도도 높고(*) 상황의 혼란함도 장난이 아닌데도 의외로 선악의 구별이 확실한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드물게 끝이 상쾌했습니다. 발란더야 바이바 리에파한테 크러쉬하든 말든. (...) 다른 캐릭터들도 무척 매력적이고 헤닝 만켈은 대체 인간을 어디까지 관찰하고 다니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키리노 나츠오 이상으로 피하고픈 사람. -_-;


지도를 찾아봤더니 라트비아는 스웨덴에서 정말로 '바다 건너 바로' 로군요. 그런데 비행기로 가려면 헬싱키까지 갔다가 갈아타야 하다니...OTL 리가는 Baltic States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하는데 사진을 대강 보면 동유럽 구시가 특유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발란더가 혼란스러워 했던 대로 대학도 실제로 여러 개 있다고 합니다.

위키페디아에 의하자면 리가는 일본의 고베, 미국의 프로비던스와 자매결연 도시라고 합니다. 스웨덴은? 스톡홀름과 노르쾨핑.
한국과 라트비아 사이에는 미미한 국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웨덴 대사관이 라트비아쪽 업무까지 보고 있는 것 같군요. 외교통상부의 정보에 의하자면 라트비아에는 재외동포 7명, 구소련계 고려인은 약 200명 거주중이며 한국식당이 있다고 합니다. (...)

(*) 우리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다들 발란더가 뭔가에 말리는 걸 보려고 이 시리즈 보는 거 맞죠? ;ㅁ;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일상적인' 난감함에 처하게 하는 시리즈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까멘스까야나 모스 형사도 잡을 폼은 다 잡는데...척 팔라닉은 한 권씩이기라도 한데...T^T
솔직히 경찰서 문서실에서의 그 장면은 정말 좀 그랬습니다. 발란더...어디까지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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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서는 스웨덴어고 제가 읽은 판은 영문판이라, 결코 '원서' 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카테고리에 넣은 건 마땅히 둘 데가 없어서일 뿐입니다!


  0. 발란더네 동네 이름 Skåne의 발음은 쇼네보다 스코네가 맞는 것 같습니다. 스웨덴어 sk의 발음이 가끔 sh+x이기는 한데 모음 å앞에서는 아니지요. 위키페디아에 걸려 있는 네이티브 발음을 들어 봐도, 쇼네라고 못 할 것도 없지만 스코네에 더 가깝게 들리지요. 그나저나 공부한다고 듣기도 듣고 발란더 시리즈 영화도 보았는데, 스웨덴 어 억양에는 참 적응이 안 되는군요.

사실 제일 놀란 건 스코네의 영문명, 영어 형용사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Scania, Scanian. 하긴, 지도를 봤더니 꽤 큰 지역이더군요.

하나 더, 전에도 얘기했지만 Ystad는 위스타드가 맞습니다.

아울러, 스웨덴어 r은 어말에 온다고 영어처럼 잦아들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쿠르트 발란데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지만, 확정되기 전까지는 검색의 편의를 위해 발란더로 가겠습니다.

1. 위스타드 교외의 농가에서 농부 부부가 살해당합니다. 농부의 코는 잘려나가고 그 부인의 목 둘레에는 올가미가 걸려 있었지요. 전에없이 잔혹한 사건의 성격 때문에 센세이션이 일어나고...수사 과정에서 의외로 금전문제가 개입되어 있음이 밝혀집니다. 문제는 부인 쪽이 죽기 전에 남긴 말 한 마디("외국인")와 저 금전문제를 도저히 엮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어요.

2. 이 소설, 무지 찝찝합니다. 일단 저 사건의 축을 이루는 '잔혹함'에 대한 답이 끝까지 나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Faceless Killers]는 발란더 시리즈의 시작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나타나는 헤닝 만켈의 시각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옵니다. 이건 바로 쿠르트 발란더 개인이 현대 스웨덴(이라고 해도 이제는 벌써 10년도 더 전입니다만...) 범죄의 불가해성에 맞서는 시리즈가 아니었던가요. 그 시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해야 할 겁니다. 문학적으로도 [한여름의 살인]에 뒤지지 않고요. 발란더의 촘촘한 고뇌가 읽는 사람에게 손에 잡힐 듯이 전해져 오지요. =_=;

3. 저는 발란더 시리즈가 쿠르트 발란더 개인의 타락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갱생기잖아! 이 책의 발란더는 정말로 찌질합니다. 모나가 막 떠난 참이라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하고, 모나를 떠나게 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딸은 자기를 미워하고, 아버지는 노망나고, 음주운전하다 동료 경관에게 잡히고, 술 먹고 예쁜 유부녀 검사한테 치근덕대다 얻어맞고...아아.

후반의 전개가 거진 구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초반 상황이 비참합니다. 발란더, 참 많이 강해졌군요. 그저 무뎌진 건지도 모르겠지만.

4. 후반에서 너무 그립게 회상하기에 뤼드베리와 발란더 사이에 매우 다정한 무드라도 있었나...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건만. 그래도 저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아버지 대신 경찰의 동료이면서도 아버지 같고 스승 같은 뤼드베리에게 마음으로 의존했던 발란더' 같은 걸 좀 상상했는데...=_=; 매우 심심한 형태로 나오기야 합니다. 뤼드베리가 암에 걸렸다는 걸 알고 그제서야 화들짝 하고 달려가서 비비적거리는 게 그야말로 발란더답다고밖에...
저런 상상을 하면서도, 뤼드베리가 직접 등장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즉, 더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살아있습니다. 반면 스텐 비덴은 처음부터 과거의 사람이군요!

5. 날씨가 이토록 가혹한 곳에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사건은 1월에 시작됩니다만 아직 스코네에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눈만은, 눈보라만은. 거의 한 권 내내 '아직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 의 연속입니다. 지옥같이 내려 모든 것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눈이 언제 오려나, 불안해하는 발란더의 기분은 수사 상황과도 같아서...그들이 마침내 범인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얼마 후 그가 완벽히 무죄임을 깨달았을 때.
스코네에는 눈이 내립니다.
아, 이 절망감.

...그리하여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Still no snow. " 되겠습니다. 두 번째는, "위스타드로 돌아오는 길에 발란더는 토끼를 치었다" ...다시 한 번, 아, 이 절망감. OTL

6. 스웨덴어 소설을 영어 번역으로 읽다니 뭐하는 짓이냐는 생각이 중간중간 들었습니다만, 애초에 한국판이 중역임이 너무 명백해서요.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에 안 나오면 영문판으로 보겠습니다. (린다 발란더 시리즈는, 좀 생각해 보고요 :D)
저 재미없고 쓸쓸한 표지가 이 시리즈에는 꼭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판 표지는 좀 너무 예쁜 감이 있지요. ^^; (아, 물론 한국판 표지도 좋아합니다. 초 아스트랄한 표지 그림 셀렉션...너무 좋아요.)

7. 깜박하고 말 안 했는데 이 소설의 발란더는 참 탐정 같습니다. =_=;
잠복...미행...카 체이스...세상에나.

8. 그리하여 뤼드베리가 범인을 쫓아 가혹한 밤을 보내고 얼굴이 말이 아니게 된 발란더에게 "자네 펀치드렁크가 온 복서 같군" 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저는 배우 Brendan Gleeson의 얼굴을 떠올리고 낄낄 웃었습니다. 예전에 친구랑 발란더 시리즈 가상 캐스팅 놀이를 했을 때 친구가 대뜸 발란더 역에 저 배우를 추천했었거든요. 저도 상당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지널 발란더' 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 영화판의 Rolf Lassgård는 좀 너무 잘생긴 감이 있지요. :D

9. 딴 작품 얘기입니다만 폴 버호벤 감독으로 [한여름의 살인] 영화화가 계획됐다가 주저앉은 적이 있답니다. 우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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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8-04-1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ppie님 리뷰가 정말 ㅎㄷㄷ 입니다.
이 책의 원서는 스웨덴어고 제가 읽은 판은 영문판이라, 결코 '원서' 가 아닙니다→이 무슨 겸손의 말씀이십니까.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영어도 원서일걸요.
저도 영어만 되면 원서로 읽고싶은 책들이 많은데 실력이 안되서 오로지 국내에서 번역되기만을 기다리는 책이 다수인데 언제 출간될지 모르겠네요.ㅠ.ㅠ
좋은 리뷰 많이 부탁드립니다^^


eppie 2008-04-24 13:13   좋아요 0 | URL
저도 번역이 안 되는 책들 중에 너무 읽고 싶은 게 많아서 한 페이지에 열번씩 사전 찾아가며 읽고 있습니다. ㅠ_ㅠ 이것도 한번 시작하니 나중에는 속도가 붙고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역시 제가 보고 싶은 작품이 번역되길 기대할 수 없는 제 수상쩍은 취향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