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작년 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가져옵니다.)
-이 책에 대해 가장 간단히 설명하는 법은, '엘리스 피터스 추모단편집 [독살에의 초대]에 들어 있는 매혹적인 단편 [오빌리오? 클로디어!]과 같은 작가의, 같은 탐정이 등장하는 장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흠, 별로 간단하지도 않네요. 하지만 이 작가의 장편이 하나도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
이 이야기의 배경은 로마 시대, 막 황제가 후계자로 티베리우스를 지명하네 마네 하는 때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_=; (**) 암살과 쿠데타에 관한 규모가 크고 화려한 음모가 펼쳐지고 거기에 황제와 의원과 이민족 용병과 클라우디아가 얽혀듭니다. 우리의 클라우디아 세페리우스는 어떤 여자인가...빈민가에서 자라 부유한 포도주 상인과 결혼한 클라우디아는, 남편 세페리우스가 죽었을 때(***) 그가 매우 골때리는 방식으로 부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동산이며 포도주 사업체며 많이 있지만 클라우디아는 그걸 팔 수 없어요. 그녀가 조금이라도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방식은 어쨌든 와인 매매를 잘 굴려서 이익을 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럴듯한 남자한테 그녀(와 세페리우스 포도주 사업)를 통째로 넘기는 대신에 클라우디아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업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위험한 음모에 클라우디아를 끌어들입니다.이야기는 그녀가 무역 사절단에 끼어 알프스를 넘으려는 데부터 시작합니다. 유니우스라는 이름의 켈트 족 보디가드와 드루실라라는 이름의 이집트 고양이를 데리고, 마차에서 흔들리면서 알프스 근처까지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 지독해지는 기후에 불평하면서. 그런데 신비로운 방식으로 낙반 사고가 일어나 일행은 고갯길에 갇혀 버리고, 그 와중에 클라우디아는 명백히 일행 중에 사고 이외의 방식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전형적인 '범인은 우리 중에 있어' 상황입니다만, 대체 왜? 그 이유는 여기서가 아닌 멀리 떨어진 로마에서 찾아야 합니다.
한편 로마에서 우리의(...라는 말 여기는 붙이기 싫다 -_-;)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오르빌리오는 '대체 왜 그녀가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걸까'를 뇌까리며 클라우디아 닮은 여자(...)랑 붙어먹고 있습니다-위에 언급한 단편을 보시면 클라우디아와 오르빌리오에 대한 간략한 설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귀족이고 비밀 경찰이며 키가 크고 탄탄한 체격에 검고 윤기있는 고수머리에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로, 클라우디아 세페리우스에게 끊임없이 껄떡댑니다.
...그런데.
제가 단편을 보면서 확연히 잘못 생각했던 게, 껄떡대는 건 오르빌리오 쪽이고 클라우디아는 그냥 귀찮아할 뿐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게 아닙니다. 그녀는 오르빌리오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지. 간신히, 아주 간신히 제가 싫어하는 둔한 여자 클리셰를 피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 내가 왜 이러지...아, 아냐 그럴 리 없어! '만큼 싫은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많지만. ) 이유가 있으면 괜찮습니다. 엄마를 죽게 한 철천지 원수인데다 라이벌 기획사의 사장이라든지 하면 괜찮습니다만 '친구니까' 는 이유로 카운트하지 않습니다. ㄱ- 클라우디아한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요. : 그는 경찰이니까.
그래도 이 이야기는 굳이 말하자면 할리퀸 로맨스에 가장 가깝습니다. 네, (클라우디아가 오르빌리오의) 벗은 가슴을 쳐다보다가 '핫, 내가 지금 뭐하고 있담' 씬조차 등장합니다. 작가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압니다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양키센스' 였습니다. 느끼합니다. 게다가 또 에브리씽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모든 것이 다 등장합니다 : 키 크고 잘생긴 검은 머리 귀족, 근사한 체격의 켈트 노예, 소년 티를 벗지 못한 군인, 오드아이, 푸른 눈이 날카로운 은발의 켈트족 사냥꾼, 비운의 죽음을 맞는 빨강머리의 켈트 소녀, 단정한 이목구비인데도 아름답다기보다 매섭다는 느낌이 드는 속물 로마 부인, 어디를 봐도 말랑말랑 폭신폭신하고 사랑스럽게 흐트러진 고수머리의 우리의 클라우디아, 그리고...크레타 인(아, 마이 스위트 일리오나 T^T).
차이점이라면 글쎄...이야기는 상당한 액션을 포함하고 있지만 오르빌리오는 클라우디아를 구하러 직접 달려가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는 로마인이니까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라면 역시 이 [Black Salamander]를 다 읽은 거라고 해야겠습니다. 한 줄에 세 개씩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비감한 사태를 휴대용 전자사전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 극복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읽은 보람은 과연 있었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이 시리즈야말로 번역되기를 강렬히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재미는 있는데 이 짓을 앞으로도 몇 번이나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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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단편의 클라우디아에 매혹된 사람이라면 아마 장편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텐데, 어째서 시작이 첫권인 [I, Claudia]가 아니라 [Black Salamander]였나 하면...간단합니다. 그냥 앞 두 권이 품절이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표지가 제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다시 봐도 정말...아...이건 좀 곤란합니다. OTL 읽긴 읽을 거지만 혹시 딴 버전 있나 좀 찾아봐야겠습니다. T^T
(**) 로마 정치에 관한 한 무감각, 방향성 없음을 차라리 자랑으로 삼고 싶어하는 제가 그나마 이 정도를 기억할 수 있는 건 다 래리 고닉의 훌륭한 책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새로 나오고 있는 것 같더군요. 지난 번 번역이 좀 더 못되처먹은 게 마음에 들지만 나왔을 때 사 두도록 합시다. =_=;
3권은 결국 원서를 샀습니다. 이제는 4권을 살까 말까 고민 중인 eppie.
(***)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나이는 'at the tender age of twenty-four' :]
(****) 사실은 달려갑니다.
Trivia
사실 제일 재미있었던 표현은 'nothing meatier than horseradish' 였습니다. 우와, 이 사람들 진짜로 '고기하다' 는 형용사를 쓰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