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서는 스웨덴어고 제가 읽은 판은 영문판이라, 결코 '원서' 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카테고리에 넣은 건 마땅히 둘 데가 없어서일 뿐입니다!


  0. 발란더네 동네 이름 Skåne의 발음은 쇼네보다 스코네가 맞는 것 같습니다. 스웨덴어 sk의 발음이 가끔 sh+x이기는 한데 모음 å앞에서는 아니지요. 위키페디아에 걸려 있는 네이티브 발음을 들어 봐도, 쇼네라고 못 할 것도 없지만 스코네에 더 가깝게 들리지요. 그나저나 공부한다고 듣기도 듣고 발란더 시리즈 영화도 보았는데, 스웨덴 어 억양에는 참 적응이 안 되는군요.

사실 제일 놀란 건 스코네의 영문명, 영어 형용사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Scania, Scanian. 하긴, 지도를 봤더니 꽤 큰 지역이더군요.

하나 더, 전에도 얘기했지만 Ystad는 위스타드가 맞습니다.

아울러, 스웨덴어 r은 어말에 온다고 영어처럼 잦아들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쿠르트 발란데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지만, 확정되기 전까지는 검색의 편의를 위해 발란더로 가겠습니다.

1. 위스타드 교외의 농가에서 농부 부부가 살해당합니다. 농부의 코는 잘려나가고 그 부인의 목 둘레에는 올가미가 걸려 있었지요. 전에없이 잔혹한 사건의 성격 때문에 센세이션이 일어나고...수사 과정에서 의외로 금전문제가 개입되어 있음이 밝혀집니다. 문제는 부인 쪽이 죽기 전에 남긴 말 한 마디("외국인")와 저 금전문제를 도저히 엮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어요.

2. 이 소설, 무지 찝찝합니다. 일단 저 사건의 축을 이루는 '잔혹함'에 대한 답이 끝까지 나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Faceless Killers]는 발란더 시리즈의 시작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나타나는 헤닝 만켈의 시각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옵니다. 이건 바로 쿠르트 발란더 개인이 현대 스웨덴(이라고 해도 이제는 벌써 10년도 더 전입니다만...) 범죄의 불가해성에 맞서는 시리즈가 아니었던가요. 그 시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해야 할 겁니다. 문학적으로도 [한여름의 살인]에 뒤지지 않고요. 발란더의 촘촘한 고뇌가 읽는 사람에게 손에 잡힐 듯이 전해져 오지요. =_=;

3. 저는 발란더 시리즈가 쿠르트 발란더 개인의 타락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갱생기잖아! 이 책의 발란더는 정말로 찌질합니다. 모나가 막 떠난 참이라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하고, 모나를 떠나게 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딸은 자기를 미워하고, 아버지는 노망나고, 음주운전하다 동료 경관에게 잡히고, 술 먹고 예쁜 유부녀 검사한테 치근덕대다 얻어맞고...아아.

후반의 전개가 거진 구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초반 상황이 비참합니다. 발란더, 참 많이 강해졌군요. 그저 무뎌진 건지도 모르겠지만.

4. 후반에서 너무 그립게 회상하기에 뤼드베리와 발란더 사이에 매우 다정한 무드라도 있었나...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건만. 그래도 저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아버지 대신 경찰의 동료이면서도 아버지 같고 스승 같은 뤼드베리에게 마음으로 의존했던 발란더' 같은 걸 좀 상상했는데...=_=; 매우 심심한 형태로 나오기야 합니다. 뤼드베리가 암에 걸렸다는 걸 알고 그제서야 화들짝 하고 달려가서 비비적거리는 게 그야말로 발란더답다고밖에...
저런 상상을 하면서도, 뤼드베리가 직접 등장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즉, 더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살아있습니다. 반면 스텐 비덴은 처음부터 과거의 사람이군요!

5. 날씨가 이토록 가혹한 곳에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사건은 1월에 시작됩니다만 아직 스코네에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눈만은, 눈보라만은. 거의 한 권 내내 '아직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 의 연속입니다. 지옥같이 내려 모든 것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눈이 언제 오려나, 불안해하는 발란더의 기분은 수사 상황과도 같아서...그들이 마침내 범인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얼마 후 그가 완벽히 무죄임을 깨달았을 때.
스코네에는 눈이 내립니다.
아, 이 절망감.

...그리하여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Still no snow. " 되겠습니다. 두 번째는, "위스타드로 돌아오는 길에 발란더는 토끼를 치었다" ...다시 한 번, 아, 이 절망감. OTL

6. 스웨덴어 소설을 영어 번역으로 읽다니 뭐하는 짓이냐는 생각이 중간중간 들었습니다만, 애초에 한국판이 중역임이 너무 명백해서요.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에 안 나오면 영문판으로 보겠습니다. (린다 발란더 시리즈는, 좀 생각해 보고요 :D)
저 재미없고 쓸쓸한 표지가 이 시리즈에는 꼭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판 표지는 좀 너무 예쁜 감이 있지요. ^^; (아, 물론 한국판 표지도 좋아합니다. 초 아스트랄한 표지 그림 셀렉션...너무 좋아요.)

7. 깜박하고 말 안 했는데 이 소설의 발란더는 참 탐정 같습니다. =_=;
잠복...미행...카 체이스...세상에나.

8. 그리하여 뤼드베리가 범인을 쫓아 가혹한 밤을 보내고 얼굴이 말이 아니게 된 발란더에게 "자네 펀치드렁크가 온 복서 같군" 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저는 배우 Brendan Gleeson의 얼굴을 떠올리고 낄낄 웃었습니다. 예전에 친구랑 발란더 시리즈 가상 캐스팅 놀이를 했을 때 친구가 대뜸 발란더 역에 저 배우를 추천했었거든요. 저도 상당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지널 발란더' 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 영화판의 Rolf Lassgård는 좀 너무 잘생긴 감이 있지요. :D

9. 딴 작품 얘기입니다만 폴 버호벤 감독으로 [한여름의 살인] 영화화가 계획됐다가 주저앉은 적이 있답니다. 우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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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8-04-1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ppie님 리뷰가 정말 ㅎㄷㄷ 입니다.
이 책의 원서는 스웨덴어고 제가 읽은 판은 영문판이라, 결코 '원서' 가 아닙니다→이 무슨 겸손의 말씀이십니까.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영어도 원서일걸요.
저도 영어만 되면 원서로 읽고싶은 책들이 많은데 실력이 안되서 오로지 국내에서 번역되기만을 기다리는 책이 다수인데 언제 출간될지 모르겠네요.ㅠ.ㅠ
좋은 리뷰 많이 부탁드립니다^^


eppie 2008-04-24 13:13   좋아요 0 | URL
저도 번역이 안 되는 책들 중에 너무 읽고 싶은 게 많아서 한 페이지에 열번씩 사전 찾아가며 읽고 있습니다. ㅠ_ㅠ 이것도 한번 시작하니 나중에는 속도가 붙고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역시 제가 보고 싶은 작품이 번역되길 기대할 수 없는 제 수상쩍은 취향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