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리아는 휑하고 활기가 없는 커다란 공간들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하지만 어떤 가을저녁이나 겨울저녁, 도시가 자욱한 안개에 휩싸이면 텅 빈 공간들이 사라지고 예기치 않던 벽면과 모서리와 모퉁이가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우유빛의 단조로운 배경으로부터 갑자기 나타난다.

알레산드리아는 '아름다운' 도시로 변한다. 알레산드리아는 자기를 감추려고 애쓰면서 어둑어둑해져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도시이다. 이 도시의 진면목은 햇빛이 아니라 안개속에서 찾아야 한다. 안개속에서는 누구나 천천히 걷는다. 방향을 잃고 헤매지 않으려면 길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도 마침내 어딘가에는 다다르게 마련이다. 안개는 저를 잘 알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충실하게 보답을 한다. 안개 속을 걷는 것은 눈위를 걷는 것 보다 더 아름답다. 안개는 아래쪽뿐만 아니라 위쪽에서도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또 안개는 사람이 지나간다고 해서 더렵혀지지도 않고 스러지지도 않으며, 우리 주위에서 살며시 흩어졌다가 우리가 지나가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안개는 질 좋은 담배처럼 우리의 허파를 채운다. 안개에서는 진하고 싱싱한 냄새가 난다.

안개는 우리의 뺨을 어루만지고 옷깃과 턱사이로 스며들어 목을 간지른다. 때로는 안개 속에서 유령이 홀연 나타났다가 우리가 다가가면 증기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허깨비 같은 실루엣이 코앞에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우리를 피해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애석하게도 안개가 저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건 등화관제가 있는 전쟁 때이다.

그렇다고 안개 때문에 늘 전쟁이 있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가질수는 없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 외부 세계를 피하여 자기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다. <안개가 낀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nebulat ergo cotigo>인 셈이다. 다행이도 알레산드리아 평원에 안개가 끼지 않는 아침 무렵에는 우리가 '스카르넵비아'라고 부르는 안개가 내린다. 부연 이슬과도 같은 이 안개는 초원을 환하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없애면서 우리의 뺨을 가볍게 적셔 준다.
안개가 끼었을 때와는 달리 시야는 지나칠 정도로 훤하지만, 풍경은 충분히 단조롭고 모든 것이 미묘한 잿빛을 띠기 때문에 눈을 어지럽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시간이면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빠져 나가 지방 도로 혹은 운하를 따라 곧게 뻗은 오솔길을 달려야한다. 스카프는 두르지 말아야 하고, 재킷 속에는 가슴이 젖지 않도록 신문지를 찔러 넣는 것이 좋다.

달빛에 젖은 마렌고의 들판, 보르미다 강과 타나로 강 사이에서 거뭇한 숲이 살랑대는 곳, 오래전 알레산드리아 사람들이 두 차례 승리를 거두었던 곳. 이곳에서는 기후가 우리의 원기를 북돋운다.

움베르토 에코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에서 [안개를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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