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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사람 마음과 정신을 뒤흔들 줄이야. 소설을 읽는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글을 읽음으로써 나는 보다 감정적으로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진다. 이 기분이 싫지 않다. 내게 낯선 곳과 익숙한 곳, 모르는 세계와 아는 세계. 그 어느 곳이라도 우리는 갈 수 있기에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만나야 할 자기 자신에 대해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만난 적이나 있을까. 이제껏 정말 자신과 마주하며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많은 시간동안 난 대체 뭘하며 지낸 걸까. 의미 있는 시간을 추구해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나이만 꾸역꾸역 먹었단 말인가. 한심하다.
어떤 우연한 계기를 통해 주인공은 자신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실체를 비로소 알게 됐을 때의 그 충격과 당혹감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용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난 그런 용가가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는 것 같다. 불현듯 떠오른 어떤 생각과 기억을 통해 뒤늦게 진실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불편하기에 꺼려진다. 난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었다. 나를 잘못 알았다. 이제 심각해질 일만 남았구나.
가식과 위선으로 위장한 삶이 깨어지고 무너질 때의 공포감이란 대단할 것이다. 제정신을 못 차릴 만큼.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꾸만 자문해보게 한다. 긍정적인 답변이 쉽게 안 나온다. 진실은 고통을 동반한다. 아프니까 우선 피하고 맘대로 왜곡시킨다. 그래야 내 맘이 편하니까. 남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진짜는 알지도 못하면서. 알아보려 시도하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나부터 제대로 알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우선인데 나부터가 거꾸로 살고 있다. 남의 이목이 여전히 신경쓰여서 머뭇대고 망설이는 일이 많다. 그러지 말아야지 만날 입으로만 그런다. 입만 살아서.
배우자도 자식도 없어서 모르겠지만 애정으로 선의로 잘 꾸려온 삶이라 자부한 자신의 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도 모자라 사라져버릴 순간에 놓여 있다면 나도 조앤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덜컥 겁이 날 테니까. 내면의 목소리 얘기를 자주 하지만 정작 듣기는 힘든 게 그 목소리다. 내가 먼저 들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하니까. 감춘다고 숨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침묵해버리는 내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는 나를 얼마나 잘못 알고 있을지. 또 얼마나 알고 있을지에 대해.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이해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 너무 타인 중심의 사고를 지향했던 오류가 있었지 싶다. 후회되고 바로잡고 싶은 오류들이 생각나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