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들러의 언급으로 대실 해밋이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됐다. 전집이 나왔을 즈음 기사를 접하고 내심 반가웠다.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드보일드를 많이 접해보진 않았지만 충분히 알 수는 있었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흥미를 느끼는지를 말이다. 의문의 사건이 느닷없이 벌어지고 그 사건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탐정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사실상 거부하기가 불가능하다.붉은 수확을 통해 하드보일드의 원형을 보았다. 여기가 시작점이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흥미로운 게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기 전후의 사정을 밝혀내는 복잡한 과정 안에서 목격하게 되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흥미로운 것이다. 모두가 반듯하고 깨끗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실에 전혀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야기의 바탕은 현실에서 기인한다. 각각의 욕망과 입장이 다르기에 충돌할 수밖에. 적나라해서 불편하고 혐오스럽지만 그런 세상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니까.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없으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추악하고 어둡고 비참한 세상 속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을 생각해본다.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잘 알기에 섣부른 기대나 희망은 전혀 없다. 적절히 사람들을 사용할 줄 알고 이용할 줄 안다. 감정이란 군더더기는 최대한 배제한 채 묵묵히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일을 진행시킬 뿐이다. 멋지다. 누굴 만나도 당당한 그 자신감과 그 재치 넘치는 말솜씨. 역시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말을 잘해야 해. 누군가에게 받은 진한 인상이나 영향 중에 '말'만큼 직접적이고 강력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소설 속 대화 장면을 보며 톡톡히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남자가 얼마나 배짱이 두둑하고 여유가 있고 안이 단단한 인물인지 대사를 보면 드러난다.탐정 소설을 읽는 목적에 알맞은 책이었다. 내가 바라던 바를 충족시켜준 이야기. 간결한 문장이 포착한 세계와 인간은 냉담하고 거칠었지만 난 그런 세계 속 이야기가 전혀 싫지 않다. 세계와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들이니까. 이상한 위안을 얻는달까. 소설은 실제보다 더 도드라지게 그린다는 게 다를 뿐이다. 차이를 이용할 줄 아는 똑똑한 매력적인 탐정 사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신, 마음에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