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설을 상당히 오랜만에 읽었다. 사실 쳐다보지도 않고 안 읽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아무튼 예전부터 읽기를 미뤄온 작품 중 하나였다. 초반에는 안 읽혀서 혼자 씩씩댔다. 이유는 모르겠다. 집중력이나 이해력 부족 탓이겠지. 소설의 주인공에게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그가 쏟아내는 감정과 사고의 파편들이 더러 버겁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복합적인 존재인지 살면서 실감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내 안에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해서 그렇지 모순이 그득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재 살고 있는 모습이 지하인과 흡사하다. 큰 문제일까. 음울한 이야기에 맘이 움직인다. 한마디로 꼬인 인물이라서 저런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흐름이 있는 것이니까. 마냥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이런 인물 잘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난 멘탈이 건강하지 않기에 잘 받아들였다. 오락가락하며 스스로도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고민하면서도 통제되지 않는 자신이 한심하고 야속해지는 것이다. 이런 감정 익숙하다. 삶을 모르겠다. 직접 깨지며 부대끼며 살지 않아서. 그냥 소설을 보면서 자주 들었던 생각은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뭔가를 한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그 누군가엔 자신도 포함되니까. 떠올린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 젠장.행복한 캐릭터는 내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예의바른 캐릭터는 사양한다. 많이 비뚤어졌다 해도 단단히 꼬였다 해도 난 이런 주인공이 마음에 든다. 그게 거부할 수 없는 그의 매력인데. 그의 모순, 탄식, 어쩔 수 없음에 공감하는 바이다. 실제론 이렇게 절절하게 세게 적나라하게 표현을 못하니까 내면에 갈등이 쌓이는 거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전제 하의 수기라면 나도 한번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망한 글이라도 괜찮겠지. 비공개라면 안전하니까. 주인공 못지않게 두서없이 떠들 수 있다. 내면의 짐을 내려놓는 것도 짊어지는 것도 똑같이 필요하다. 내부든 외부든 억압이 없을 순 없다. 자유로울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