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에버트라는 이름만 얼핏 알았지 사람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작년에 타계했을 때 관련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알고 싶어졌다. 유명한 영화평론가라던데. 글을 쉽게 잘 쓰는. 읽어보니 과연 그러했다. 난생 처음 누군가의 회고록을 읽어봤다. 기억 속에서 지나간 일을 천천히 길어 올려 생각하며 적은 기록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남겨질 만한 의미와 추억이 컸기에 긴긴 시간을 이겨내고 기억으로 자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진정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된다.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 한 사람의 인생 내력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시작된 삶이 누군가의 친구로 가족으로 끝나는 이야기. 이런 책을 보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 이런저런 경험이 많은 게 최고라는 거다. 정말 부럽다. 말할 내용이 끊이지 않으니까. 영화와 관련된 일화들을 통해선 글쟁이란 직업인으로서 로저 에버트를 알 수 있었다. 알지 못했던 다양한 감독과 배우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영화가 좋아지면서부터 영화판이나 그 언저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가졌기에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 같다. 병마 때문에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었지만 성숙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서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보통 솔직해서는 이런 글이 안 나올 거 같다. 자신을 마주하고 오래 들여다봐야 쓸 수 있는 글이란 게 따로 있으니까. 글은 내가 전혀 모르는 멀리 있는 사람과 시공간을 떠나서 대화하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연결시킨다. 그것이 가능하게 한다. 그의 영근 생각을 엿볼 수 있고 그 생각으로 하여금 자극받고 감정으로나 정서로나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돼서 만족스럽다.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말과 생각들을 보며 특히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랄까. 꼭 영화에 국한해서 볼 것이 아니라 인간 로저 에버트에 대해 한번 알고픈 마음이 생겼다면 고민 없이 그냥 읽어나가면 덤으로 삶에 대해서도 새로 생각하고 배우고 얻는 바가 있으리라 확신한다. 부쩍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인지 재능도 인내도 없으면서 이런 호감가는 글을 나도 한번 쓰고 싶다는 욕망만 자꾸 품게 된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뭘 바라는 건지. 안 될 소리란 거 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여러모로 유익했다.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