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경험이란 것이 분명 존재한다. 몇몇 사람이나 사건을 통한 만남이 그것일 텐데 프리모 레비에겐 수용소 생활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개인의 역사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이 증언이란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가 되어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 있게 된 이유가 분명 있다. 전쟁으로 인한 모든 망가짐과 파괴들을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책을 보며 비로소 그 끔찍함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았달까. 어디까지나 간접적이지만. 직접 겪은 사람의 이야기만큼 강력한 건 없는 것 같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란 시스템 자체는 한마디로 부조리한 놀라운 비극이다. 추위와 배고픔, 폭력과 노역생활도 참기 힘든 고통과 두려움이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삶의 희망과 의지가 꺾이고 포기해버리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버젓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싶다. 역사 속에서 배우지 못하고 망각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까.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났다. 증언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를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다. 특별히 역사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졌으니까.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해져야 할 의미를 가진 이야기를 접하는 건 중요하다. 다시금 배울 수 있으니까. 세계 곳곳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비일비재한 슬픔들. 부당하고 불편한 일은 외면하고 싶어진다. 맞닥뜨릴 용기를 가져야 한다. 과연 인간이란 본성이 무엇이길래 믿을 수 없을 만한 악을 초래하기도 하고 또 그 악을 딛고 선을 계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이토록 울분 없이 균형감 있게 진술할 수 있는지 놀랍다. 절대 사라지면 안 될 이야기 중의 하나를 들었다.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요한 게 남는 법이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기에 남아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