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의 질주 - Running on Empt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호감을 품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 누군가가 꼽은 영화가 내게도 동일한 정도의 깊이와 의미로 다가왔다면 그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호감이 약간 작용한 이유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니까 알 것 같다. 왜 이 영화를 추천해주었는지를. 왜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했는지를 말이다. 

소위 '운동권' 부모가 등장한다. 미국사회든 한국사회든 분명 겉모습이야 다른 모습이지만 겪고 있는 상황이 같으면 하는 생각이나 사는 모습도 비슷해지나 보다. 도망자 신세가 된 부모들의 운명은 곧 아이들의 운명이 되었다. 가족이란 일정 부분 같은 운명을 타고 나는 사람들이니까. 기약없이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 그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 자식들의 삶마저 옭아매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부모가 겪을 마음고생은 또 어떠할지.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 느낌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영화는 충분히 그 생활의 어려움과 팍팍함을 전달한다. 

비밀과 거짓말의 차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난 아리송해진다. 비밀을 가지고 싶어서 가진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기 힘들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분명 있을 테니까 말이다. 대니(리버 피닉스)의 이런 딜레마가 너무나 공감이 가는 건 나 또한 그런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대니는 줄리어대에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학에 간다는 건 곧 가족과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접는다. 완강한 아버지를 설득시킬 수도 꺾을 만한 용기도 대니에겐 없다. 하지만 숨겨온 진심이 드러날 때, 그 마음을 따르지 않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대니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선택을 처음으로 내렸다. 그 결정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지만 별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겐 애당초 헤어짐이란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엔딩 신의 이별하는 장면을 보며 표현 못할 감정에 휩싸였다. 아아, 독립이란 저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이젠 서로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이 달라진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벌어지는 일 때문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소중한 무엇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라면 깊은 관계를 맺으려면 진실해져야 하고 진실해지려면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대니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내가 가야할 길을 스스로 정했다면 어딘가로부터 떨어져나와 막막하고 답답한 감정에 빠져보는 경험을 피할 방법은 없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하나씩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겠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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