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을 드디어 읽었다. 책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도 책 제목만큼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관용어처럼 친숙해진지 오래다. 정말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제목이 아닌가. 제목이 끝내준다는 생각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다. 뭐, 나만의 생각이 아닌 공통의 생각이겠지만. 뒤늦게 소설을 직접 경험해보니 비로소 제목의 참뜻을 이해한 듯한 기분이 든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등장해서 내가 읽기에 버거운 소설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난해한 대목들이 있긴 하지만 문제 삼을 정도는 전혀 아니라서 다행이지 싶었다.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 네 남녀의 이야기. 삶 자체를 이런 내용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역량도 놀라웠지만 이야기를 빌어서 인간 존재의 모순이란 것에 대해 새삼 깊이 있게 사고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가벼움'이 아닐까. 참을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그대와 나의 가벼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긍정적인 것이 가벼움일지 무거움일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개인과 상황에 따라 항상 변할 수밖에 없기에 언제까지나 완전하게 정의내리지 못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유려한 글솜씨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극단의 모순적인 문제들을 작중 인물들의 관계와 그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테레사의 '공격적인 허약성'이란 표현이 진한 인상을 남겼다. 욕망이든 사랑이든 문제는 너무 가벼워질 수 있는 소지가 내재되어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우연이란 운명의 목소리는 다를까. 다를 거 같지도 않다.  

p.144 :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각각의 인물들의 관점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감수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토마스를 곁에서 바라보는 입장이 된다면 나도 테레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할 듯 싶었다. 철학적, 현학적,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문학적인 매력을 잃지 않은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뭐랄까. 책을 보면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깨달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막상 글로 쓰려니까 간결하고 의미 있게 표현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겐 어떤 의미가 된 소설이기는 하다. 분명히.  

p.280 : 저주와 특권, 행운과 불운, 사람들은 이런 대립이 얼마나 서로 교체 가능한지를, 인간 존재에 있어서 양극단 간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를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멋지고 인상깊은 대목들이 많이 있지만 이 대목이 특히 인상깊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보다 넓어지고 싶고 보다 깊어지고 싶은 나지만 때때로 너무 얄팍하고 가벼운 내가 싫고 감당하기 어려운 심정이 될 때가 있다. 내가 지니고 있는 가벼움도 이런데 하물며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지닌 가벼움을 내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허락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책을 봤더니 이런저런 두서없는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한번만 읽고 말기에는 소설의 깊이가 상당하다. 텀을 두고 다시 읽어봐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두번째 감상은 또 달라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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