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어톤먼트'를 보기 전까지 '이언 매큐언'이란 작가를 알지 못했다. 영미권에서 알아주는 영국작가인데 나는 뒤늦게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론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인상깊었기에 영화와는 또다른 원작소설로도 한번 보고 싶었다. 영화든 소설이든 나름의 재미와 차이는 존재하는 것이니까. 영화에서 모두 표현해내지는 못했던 부분들을 원작의 행간을 통해 채우고 싶었다.

브리오니, 세실리아, 로비 세명의 중심인물을 필두로 주변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속죄]는 한마디로 해서 하나의 오해가 빚어낸 비극적인 이야기다. 문학적인 재능과 열망에 사로잡혀 오만한 기질을 가진 사춘기 소녀 브리오니는 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연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멸시켰다. 서로에게 끌림이 있었지만 동시에 감정표현에는 서툴렀던 세실리아와 로비. 그러나 신분상의 차이란 장애물도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해나 거짓말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사람의 오해라는 것이, 근거 없는 확신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인지는 소설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날.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분수 앞의 한 장면. 그리고 그날 밤에 벌어진 또하나의 사건이 세 사람의 운명을 만들었다. 오해의 소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해도, 그 당시 브리오니는 어렸다고 해도, 사춘기라는 시기를 겪고 있었던지라 감정상태가 극단적으로 흐를 요소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브리오니를 마냥 두둔할 수만은 없다. 브리오니의 감정을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정말 인정할 수는 없겠다. 어떤 합리화를 시도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변명을 하고 구실을 붙여도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증언을 한 것도 모자라 누명을 씌워 무고한 사람을 감옥으로 보냈고,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시켰으니까. 죗값을 받은 건 당연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자신을 마주하고 반성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브리오니 모습은 나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들었고, 많은 생각과 복잡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했다.

노년이 되어서까지, 아니 죽는 날까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매여 자유하지도 못한 채 처절하게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할 브리오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미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브리오니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이기적인 시선으로 타인을 제 마음대로 판단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가 하고 자문했다. 속죄하며 살아야 할 시간과 뒤늦게 찾아올 후회가 무섭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나 정서, 세밀한 묘사 특히 작중인물들의 심리묘사는 탁월하다. 이야기의 주제나 구성력에 마음을 빼았겼다. 원작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문학적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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