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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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꿈꾸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렸을 적에는 남들처럼 살았으면 하는 부러움으로 인해 빚어진 상상이 많았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 먹은 만큼 상상조차 현실적으로 바뀌어가는 것도 같다. 조금은 모습을 달리하기도 하고 혹은 확장된 모습으로 우리가 자주 꿈꾸는 행복한 가정이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단란한 가정의 모습이란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모습이 꼭 연출되어야만 한다. 아이가 없으면 뭔가 이상한. 결핍 상태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물론 요즘은 많이 바뀌었고 점점 더 바뀌어가는 추세지만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사는 생활이 무엇인지 나는 전혀 모른다. 전혀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소설을 읽으며 깊은 공감까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공감이란 걸 떠나서 소설을 보면서 자연스레 내가 생각하고 희망하는 가정의 모습은 무엇인지 잠깐일지라도 소설은 내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었다.

굳건하게 자리잡힌 나의 가정에 대한 기대와 신념을 산산조각 내는 어떤 일이 본의 아니게 벌어진다면 난 그 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게 될지. 아니 받아들일 수나 있을지가 내 스스로가 의문스러웠다. 헤리엇과 데이비드는 진실로 행복 그 자체인 가정을 꿈꾸지는 않았던 것 같다. 표면적으로 흡족하게 만족 상태를 나타내는, 흡사 많은 행복처럼 보이는 많은 아이들을 원했을 뿐이었다. 아이에 대한 깊은 사랑은 외면한 채. 분명 그네들의 '다섯째 아이'는 다른 아이였다. 그들의 아이라고 상상하지 못할 존재.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아이가 발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전적으로 아이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겠는가. 다섯째 아이의 존재가 모든 문제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무리 귀한 존재라 해도 가정의 중심은 부부여야 한다. 그리고 각자가 품고 있는 가정에 대한 표본들이 다를 것이다. 단호하게 이것은 옳다고. 이것은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의 위험성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허상은 손쉽게 깨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평화로운 일상이 파괴되고 많은 부분 줄줄이 삶이 균열가더라도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인간의 적응력으로 또는 내면의 힘으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는 행복을 파괴시키는 존재로 장애아가 등장했지만 각자의 행복을 위협하는 존재 또한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중엔 돈, 건강, 조화, 신뢰 등등도 있을 수 있겠고. 일부분만 금가도 전체가 깨져버리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다시 생각해봐도 아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본질적이고 더 복잡한 문제는 부부 두 사람에게 있었으니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겉모습으로서의 가정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적으로 가족 간의 깊은 유대감과 돈독한 사랑이 있었으면 한다. 애석하게도 지금 나의 가정은 그런 모습이 아니기에. 훌륭한 소설과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어서 내겐 값진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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